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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 부검은 원장 몫이었지만 원장이 자리를 비운 탓에 외과의사인 내가 사체의 배를 가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준 종합병원에서 외과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부검실은 병원 지하 영안실 옆에 붙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왜소한 사체가 덩그마니 놓여 있었다. 잔뜩 비틀린 마른장작 같은. 말이 부검실이지 비좁은 창고나 다름없었다.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며 혼자 사는 할머닌데, 괴한에게 봉변을 당한 듯합니다. 딱히 다른 상처는 없고 두개골만 깨진 걸로 보아 넘어지면서 생긴 뇌출혈이 사망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검은색 정장의 젊은 검사가 부검에 앞서 간단한 브리핑을 했다. 그 옆에는 오십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점퍼 차림의 형사가 수첩을 든 채 뭔가를 받아 적을 태세였다.

“그럼, 시작하시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의사가 사체의 머리에 전기톱을 들이댔다. 인근에서 개원하고 있는 신경외과의사였다. 요란한 굉음을 내며 전기톱이 사체의 두개골을 파고들자 뼛가루가 톱밥처럼 사방으로 튀었다. 잠깐 사이에 두개골이 갈라지고 생선 내장이 엉겨 붙어 한 덩어리를 이룬 듯한 모양새의 뇌가 드러났다.

좌측 뇌에 시꺼먼 피가 엉겨 붙어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외상으로 인한 경막외혈종, 이게 사망 원인이네요.”

신경외과의사가 드러난 뇌를 내려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지루한 표정으로 서있던 검사와 형사가 사체의 머리맡으로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수첩을 들고 있던 형사는 뭐라 적어야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외상으로 인한 경막외혈종!”

신경외과의사가 다시 한 번 또박또박 발음해주자 그제야 알아들은 듯 형사는 재빨리 수첩에 뭔가를 옮겨 적었다.

“둔기에 맞아 생긴 혈종인지 아니면 바닥에 넘어지면서 생긴 혈종인지도 알 수 있을까요?”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도 만족하는 것인지 검사는 팔짱을 낀 채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물었다.

“그것까지야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죠.”

왜 그런 것까지 자신이 판단해야 하냐는 듯 신경외과의사는 다소 못마땅한 투였다.

소임을 마친 신경외과의사는 서둘러 자리를 떴고, 다음은 내 차례였다. 환자, 아니 사체의 복부에 메스를 들이대자 물컹하며 누런 진물이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생명이 거주하는 인체가 온 근육을 수축시켜 메스에 저항하는 것과 달리 사체의 몸뚱이는 메스를 들이미는 족족 으깨진 두부처럼 속수무책이었다. 탄력이나 저항이라고는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복부를 가르고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출혈이나 외상의 흔적은 없었고, 배 안 깊숙이 손을 찔러 넣고는 비장이며 간 등을 만져보았지만 장기(臟器)들 역시 말짱하기만 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검사와 형사는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여행객이라도 되는 양 팔짱을 낀 채 한가로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어디서 음식냄새가 나는 게 벌써 점심땐가 봅니다.”

“시원한 냉면 어떻습니까?”

부검실 벽 너머의 영안실 식당에서 날아온 음식냄새가 내 코끝으로도 전해졌고, 나 역시 살짝 허기를 느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움찔 몸을 뒤로 뺐다.

‘파리!’

어디서 날아든 것인지 파리 한 마리가 사체에 내려앉더니만 잠시 쉬는가 싶더니 이내 내 얼굴 쪽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갑작스런 파리의 출현에 검사와 형사 역시 잡담을 멈추고는 두 눈으로 파리를 쫒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체를 헤집고 다니던 파리가 내 얼굴이며 옷에 내려앉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출혈이나 손상된 장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그만 끝내시죠.”

“그나저나 웬 놈의 파리가 부검실에…….”

슈퍼를 찾은 수다쟁이 아줌마와 이웃집 새댁 욕을 퍼부었을지도 모를, 도회지로 나가 고생하는 자식 생각에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며 늦도록 가게 문을 열어둔 채 손님을 기다렸을지도 모를, 내일 아침 손자 녀석 등록금을 부쳐야겠다며 침침할망정 흐뭇한 눈으로 모아둔 돈을 세어봤을지도 모를, 어느 놈이 남의 가게 담벼락에 오줌질이냐며 눈을 부라렸을지도 모를………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그날 우리가 본 건 파리뿐이었다.

 

 

[건강칼럼] 대장암 3~4년에 한 번 들여다보면 예방 가능

남호탁천안 예일병원 원장 오늘날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주범은 전쟁도, 교통사고도 아닌 암이다. 지금도 수많은 환자들과 환자의 가족들이 암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신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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