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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칼은 내 운명 / 허해순

부흐고비 2021. 3. 31. 14:54

오후 세 시는 나에게 있어 박자를 갖지 않는 매끄러운 시간이다. 차 한 잔과 자두 두 개 정도로 충전하며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을 어루만져 본다. 아버지가 장어 대가리에 대못을 치고 껍질을 벗기던 날선 칼 동작이나 단수수 마디 내리치던 울 할머니 식칼 든 모습을 떠올린다. 가리사니가 없던 내 성장기에 유독 까탈지게 굴던 내 미각 때문에 한여름에 애물단지 노릇해도 지혜롭게 먹여주신 그 정성을 생각한다. 식은 밥이라고 굶고 잤다가 아버지에게 혼쭐이 났지만 식도락가인 아버지를 닮았으니 도마에서 칼질하는 소리만 요란해질 수밖에, 그러나 그 덕에 어렸을 때부터 길들여진 그 맛을 지금도 온몸의 내 세포가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육회비빔밥을 좋아해서 강철로 만든 식칼을 숫돌에 물을 뿌려가며 갈아 두곤 하였다. 우둔살을 칼날 뒷부분으로 얇게 저민 다음 칼 가운데 부분으로 채를 쳐서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 설탕, 마늘, 파로 버무려 잣가루를 넣어 비벼 먹는데, 내 몫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지만 그 맛을 기억하고 있으니 묘하다. 술 빼고 아버지가 드시는 것을 나는 다 좋아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엄마하고 일제강점기에 드셔본 것을 말씀했는데, 어린 내가 두 분이 혼인도 하기 전인 그때의 일식을 먹어봤다고 끼어들었다. 아버지가 드셔본 것은 나도 다 먹어본거나 마찬가지라고 해서 좌중을 웃겼다. 민물고기 낚시에 데려가고 장어구이나 육회비빔밥을 먹여주셨는데도 아버지가 나만 미워한다고 생각했으니 사춘기 때의 아들이 나를 닮은 거 맞다. 그 녀석이 나 닮았다는 남편에게 한사코 아니라고 우겼지만, 잘못한 거 혼내고 바로 맘 쓰려서 칼질 소리 요란하게 음식 장만하던 나를 아들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줬다고 기억하지나 않을까.

삼 대째 이어오는 대장장이가 만든 강철 칼 두 자루를 갖고 있다. 아파트 부엌 가구에는 날렵한 명품 스테인리스 주방 칼이 구색이 맞아 보이겠지만, 입식 식탁에 앉아서도 주식은 국이나 찌개랑 먹는 밥이고, 거무튀튀한 그 칼로 김치를 썰고 무를 채치고 오징어를 모양내어 솔방울 썰기로 반찬을 만드는 멋이라니…, 멋이 있으면 맛이 있다. 큰 칼은 도끼같이 생겼지만 등과 날이 칼끝으로 향하면서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 폭이 좁은 부엌칼과 닮은꼴이다. 묵직하고 투박한 큰 칼은 토막을 치거나 통으로 자르거나 숭덩숭덩 썰어, 조리거나 찌거나 고아서 먹을 재료에 제격이다. 당근에 골을 내어 국화꽃을 만들고 죽순을 어슷하게 썰어 빗살모양을 낼 때, 무엇보다도 얄팍 썰어 채칠 때 리듬감을 주는 부엌칼은 아무래도 내 손과 함께할 운명을 타고 났나 보다. 나도 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손에서 칼을 놓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 성장기에는 도시락과 간식과 식사 준비로 손에서 칼 놓을 날이 없었다. 아이들이 떠나고 단출해진 살림에 남은 재료 모아서 비빔밥 만들어 먹게 될 날이 많아질 것이다. 웃기와 고명으로 온갖 꽃이 피어 있듯이 담아놓은 비빔밥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세 가지 ‘천부인’ 중 하나에 왜 칼이 들어있는가 이해하게 해주는 음식이다. 손에 익은 칼로 자르고 썰고 다져야 오방색 재료들이 비로소 우리 입에 당도할 터이다. 아름다운 꽃밥을 먹고 우주의 기운으로, 멍들고 지친 일상에서 다시 일어나 생기 있게 살아갈 것이리라. 나는 남원 산 이 칼에 영천 산 소나무 도마로 짝을 지어주었으니 천생연분이고, 청포묵과 미나리, 숙주, 쇠고기, 황백지단, 김으로 탕평채를 만들어 기념하였다.

창 너머 몽실몽실 가볍게 떠 있는 구름에 마음을 주다 칼끝에 손을 베었다. 산사에 피어 있는 꽃무릇의 붉은 꽃물처럼 선혈이 퍼진다. 베인 상처에는 그 꽃의 비늘줄기로 해독한다 하였다. 식구들 에너지 주는 데 공이 큰 이 물건은 시퍼렇게 날이 서서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불에 달구고 두드리고 물에 집어넣어 담금질 된 이 물건은 음식을 만들 때만 자신을 허용하지 먹을 때 상 위에 오르는 일은 절대 없다. 한동안 나는 칼이었던 적이 있었다. 칼 같이 규칙과 약속을 지켜야 하고 비위가 상하면 관계를 끊었다. 아이들을 내 맘대로 조각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모기 보고 칼을 빼듯 약간의 실수에도 어리석은 훈계를 일삼았을 것이다. 나는 어설픈 칼로서 주변에 얼마나 자주 얕게 또는 깊게 상처를 냈을까. 담금질을 견딜 만큼 견뎌 자존심이 센 이 칼도 방심하면 공격한다. 지상에 허물없는 것이 어디 있으리.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용서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 오후 세시의 태양빛은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맛을 음미하라고, 그리고 타인의 허물에 칼 빼지 말라고 속삭이며 아주 부드럽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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