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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여행 상수 / 방민

부흐고비 2021. 4. 12. 06:04

걷는다, 배낭을 등에 매단 채. 발은 앞으로 향하고 눈은 주위를 살핀다. 코로 들이쉬는 공기에는 해초 냄새가 은근하다. 바닷가 모래밭이라 발이 쑥쑥 빠진다. 속도가 느릿하다. 해파랑 길을 걷는 중이다.

길을 안내하는 리본이 마을을 지나서 차도로 향한다. 차도와 나란히 이어진다. 가로등 기둥에도 리본이 달려 있다. 얼마쯤 걷다가 산길이나 마을길로 이어질 것이다. 찻길도 바닷길과 산길이 막힐 때 돌아간다. 차와 나란히 걷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불편하고 바로 옆을 스치는 차량도 불안하다. 다른 길이 없으니 잠시 따라 걷는다.

차가 앞에서 왔다 사라지고, 뒤에서 나타나 달아난다. 차창으로 누군가 힐끗 보는 것 같다. 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을 휘저으며 걸어가는 우리를 보는 그는 무슨 생각할까 잠깐 궁금하다. 차를 타지 않고 왜 걸어갈까 의아해 할까, 차에서 내려 한 번쯤 걸어볼까 상상하며 부러워할까. 헛짓이라 흉을 볼까. 알 수 없는 채로 차를 맞이하고 보내며 걷는다. 저 앞 전신주에 리본이 펄럭이고 마을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걷는 시작점까진 차를 탔다. 버스도 탔고 열차도 이용했다. 택시도 타면서 걷는 곳까지 왔다. 목적지까지 다 걸어가면 역시 또 차를 이용해 집에 돌아갈 것이다. 먼 거리는 여전히 차를 타고 도로 위로 이동하며 짧은 거리는 걸어 다닌다. 지금은 걸으며 보고 들으며 냄새도 맡아가며 여행 중이다.

길로 다닐 때 사용하는 편리한 도구를 인간은 여럿 발명했다. 자전거와 자동차, 배와 열차를 넘어서 항공기와 우주선까지 만들었다. 이동에 편리하고 오가는 속도를 높이려고 거듭 발달해 왔고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속도로 가면 얼마나 대단한 것이 또 나타날지 알 수 없다. 하늘로 혼자 날아다니는 것도 나올 것이고 공중을 나는 자동차는 실용화가 멀지 않아 보인다.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은 기었다. 다음엔 걸음마를 거쳐 걷기를 익혔고 더 빨리 옮기는 달리기도 학습했다. 이동하는 형태는 다르지만 타고난 몸 일부를, 전신을 써가며 공간에서 이동했다. 땅에선 걷지만 물에서는 헤엄칠 줄도 알게 되었다. 새처럼 날지는 못하나 비행기를 만들어내 새보다 높이 멀리 빠르게 날기에 이르렀다. 걷는 것보다 이동하기에 좋은 탈것은 많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인간의 기본 이동 수단은 걷기다. 원시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발로 옮겨 다녔다. 두 발을 사용하는 인간이 있고, 네 발을 쓰는 짐승도 있고, 날개를 파닥여 하늘을 나는 짐승, 지느러미로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제자리에 붙박힌 식물과 다르게 동물이라 불리는 생명체는 모두 이동하며 산다. 이동하지 못하면 죽은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움직임 곧 이동이 생명과 다르지 않다.

나에겐 생존수단이었던 걷기가 지금은 생활 수단을 넘어 실존 수단으로 변했다. 걸으면서 여행하고, 여행하면서 실존의 생생함을 찾는다. 걸으며 몸으로 전해오는 움직임을 느끼고 살아서 꿈틀대는 충만감을 맛본다. 다른 어떤 행위를 하는 것보다 걸으며 세상을 대할 때 더욱 살아있다는 실감에 빠진다. 살아있기에 움직이고 발을 옮기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온몸에 흐른다. 가장 강렬하게 삶을 만끽한다. 걷는 순간엔 인생 허무를 몰아낼 수 있다. 전신으로 피가 돌고 내뿜는 숨결에서 미련이 날아가고 걱정도 털어지며 두뇌도 맑아진다. 온전한 생의 환희에 빠져든다. 살고 있음 그 자체다.

문명 발달로 조금 더 편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수단이 있다. 그것을 이용하는 여행도 한다. 사람들 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여행도 하고, 다른 여러 교통수단으로 더 빨리 더 멀리 더 많이 여행한다. 분명 걷는 것보다 그런 도구를 이용하면 편리 하고 좋은 것을 알지만 걷는 것보다 선호하지 않는다. 걷기 이상의 좋은 여행이 없으니 말이다.

몇 해 전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었다. 자전거로 그 길을 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순례 길을 완보完步하고 받는 인증서 발행도 걷기와 자전거만 인정한다. 최소 도구를 이용한 여행이라 그런지, 가장 오래된 이동 수단이어 그런지, 인간이 스스로 힘을 써서 그런 것일 거다. 괴나리봇짐을 메고 다녔던 선조처럼 전통적 여행 수단을 높이 평가해 그런지도 알 수 없지만 그런 방식을 인정하는 것에 맘껏 동의 박수를 보낸다.

걸으며 공간을 이동하고 확대하는 경험은 차보다 느리지만 천천히 지나치며 남다른 사물과 더 깊이 교감하게 한다. 몸의 감각 기관을 둘러싼 외부 존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한다. 사물과 인간, 양자 대면이 외면의 형식상 스침이 아니라 내용적 스며듦을 만난다. 다른 두 존재의 진실한 울림이 오간다. 그런 과정이 좋고 그런 순간이 기쁘다.

누가 뭐라 해도 상수上手는 걷기 여행이다. 자전거 여행도 준 상수로 생각한다. 자동차로 여기저기 지점으로 이동하여 주변을 둘러보는 여행은 하수下手다.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이 방식은 여행 진수를 맛보기 어렵다. 흉내일 뿐 진실한 여행 참맛은 맛보기 어렵다. 걷기 여행은 내가 선택한 최고 방식이다. 그래서 오늘도 여기 해파랑 길을 걷는다.

 




방민 수필가. 문학평론가.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하여 수필집 『방교수, 스님이 되다』(2014), 『미녀는 하이힐을』(2015), 『용서의 언덕 너머-카미노 데 산티아고』(2016)가 있다.

 『동양문학』에서 평론 신인상(1991)을 받고 비평집 『중용, 혹은 삼류 문학의 길』(2002)을 출간했다.

수필 창작론 『수필, 제대로 쓰려면』(2017), 『수필, 이렇게 써보자』(2017)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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