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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파비아의 새벽 / 김아인

부흐고비 2021. 4. 26. 12:42

봉무공원 ‘구절송’에 올랐다. 금호강줄기를 따라서 형성된 도심을 내려다보며 가쁜 숨을 고른다. 직립한 아파트 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집이 어디쯤일까, 단지를 가늠하는 사이 마침 여객기 한 대가 이륙하는 중이다. 공항 근처로 이사 와서 자주 보는 광경인데도 새롭다. 비행기가 낮잠에 든 지붕을 깨우며 고도를 높인다.

아이들로부터 욜로YOLO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You Only Live Once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인생은 한 번뿐’이란 의미를 지닌다. 비슷한 개념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도 있다. 현재를 즐겨라, 오늘을 붙잡아라, 등으로 풀이된다. 말하는 사이에도 우리를 시샘하는 세월은 서둘러서 간다지 않던가. 인생은 한번뿐이니 현재를 즐기는 것,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겠다. 한편으론 무분별하게 소비 욕구를 부추긴다는 부정적 측면의 염려소리도 들린다. 허나 각도를 조금 달리하면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자각하자는 진지한 삶의 태도가 담겨있지 않을는지.

14박 16일 일정으로 서유럽 열 개 나라를 돌고 왔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욜로’ 정서나 그 문화를 흉내 내려던 것은 아니다. 패키지여행 상품의 특성이 갈겨쓴 문장과 비슷하다 할까. 남편의 퇴임 기념으로 다녀온 동유럽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식이었다. 하지만 아들딸이 환갑 맞은 제 아빠한테 선물해준 뜻깊은 시공간 아니던가. 딴 부모들처럼 넉넉한 지원으로 뒷바라지를 해주지도 못했는데 의외의 고가高價 선물이 가슴을 눌렀다.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해도 이미 계산을 마쳤다면서 한사코 물러서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사양하는 척, 형식적 시늉뿐이었다. 벼르던 참에 내심 반겼는지 모른다.

죽을 만큼 피로하거나 견딜 만큼 피로할 때 입속으로‘욜로’를 되뇌었다. 흔한 기회가 아니니 즐기자, 스스로를 다그쳤다. 자식들이 마련해준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낸다면 더 미안한 일이 될 테니까. 다소 끼니가 입에 맞지 않고 몸이 고단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일정에 맞추려고 애썼다. 새벽 5시 기상, 6시 식사, 7시 출발 혹은 5시 반 기상, 6시 반 식사, 7시 반 출발의 반복이었다. 10대부터 70대까지 전국에서 모인 서른여덟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고도로 훈련된 여행객의 자세랄까. 마치 고급과정의 관광 교육이라도 받고 온 사람들 같았다. 나는 힘에 부칠 때마다 다리 떨릴 때 다니지 말고 가슴 떨릴 때 다니란 말의 의미를 되새겼다.

날마다 국경을 넘느라 다섯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는 건 기본이었다. 엉덩이가 배기고 좀이 쑤셨다. 이번 여행의 인솔자는 개그맨 수준의 재담꾼이어서 그나마 덜 지루했다. 우리가 5억 원짜리 차를 언제 타겠느냐며 차멀미도 즐겨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여행의 핵심은 무조건 많이 보는 것이 ‘장땡’이라면서 줄달음치듯이 끌고 다녔다. 하루 만 보 이상은 기본이었다. 에너지가 완전 고갈된 상태로 숙소에 들어가면 곯아떨어지기 바빴다. 자웅동체처럼 붙어있던 불면증이 도망을 쳤다. 대사증후군 관리를 시작하고부터 빵과 면을 자제해왔지만 어쩔 수 없이 먹었다. 미래의 건강도 중요하나 당장의 체력을 보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저녁마다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가 열쇠를 들고 무작위로 방 배정을 했다.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데 어떤 방이든 상관없었다. 11일 차 이탈리아였다. 승강기 바로 옆방이 주어졌다. 다음날 일정이 새벽 다섯 시 기상이었다. 알람을 듣고도 누워서 꾸물거리는 남편한테 몇 번의 채근을 했다. 피로가 누적된 데다 태생적 습관이 그리 쉽게 고쳐질 리 있겠는가. 이동 버스가 지정석이 아니었기에 원하는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들이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문간방이다 보니 캐리어 바퀴 구르는 소리가 고요 속에서 전동차 소리처럼 들렸다. 불안감을 조성하기 충분한 그 소란함이 늑장 부리던 그이를 조급하게 만든 격이었고 결국 사고를 쳤다.

이국의 변두리 새벽 공기가 한 사발의 보약처럼 상큼했다. 청량감을 맛보며 버스가 정차된 곳을 향해 캐리어를 끌고 기분 좋게 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불렀다. 돌아보니 키 큰 서양 남자가 일행들 틈에 섞여 헐레벌떡 따라오는 게 아닌가. 뭔가를 들고 마구 흔들어대면서. 어둠 속의 어렴풋한 물체가 왠지 낯익다 싶더니 뜻밖에도 우리 가방이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여권과 여행 경비가 든 남편의 소지품 백이었던 것이다. 남은 일정이 꼬일 것은 당연하고 하마터면 한국대사관까지 방문하는, 원치 않는 영광을 누릴 뻔했다.

하나의 진실에 여러 개의 변명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게다. 환갑 맞은 남편 덕에 환상을 품었던 서유럽 땅을 밟았지만 정작 남편은 아내의 놀림조 바가지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선량한 호텔 직원을 만났기 망정이고, 버스가 출발하기 이전에 갖다 줘서 천만다행이지 않았던가. 딸애 앞에서 일화랍시고 늘어놓는 지금도 온몸의 신경세포가 곤두선다. ‘욜로’가 아니라 여차하면 ‘골로’ 갈 수 있었던 대사건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고맙다는 인사조차 전할 겨를 없이 왔다. 파비아의 어둑새벽, 친절했던 이탈리언의 희미한 실루엣을 한동안 잊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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