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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봄날, 우도에서 / 전성옥

부흐고비 2021. 4. 26. 12:48

연노랑 옷을 입고 완만한 밭 언덕을 몇 시간째 걷고 있다. 웬 낯선 여자가 혼자서 저리 밭둑을 걸어갈까, 노란 눈들이 술렁댄다.

언덕 주인 유채는 나를 동색으로, 동료로 인정해 줄 모양이다. 유채의 보호자인 긴 돌 담장도 적의가 없다. 오히려 끝없이 같은 말을 반복해 주고 있다. '지켜줄게, 지켜줄게, 지켜줄게….'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분다. 바람의 손길에 순순히 풀이 눕는 것도 여전하다. 그러나 풀을 지배하고 나를 밀어내던 지난해와는 다른 바람 다른 풀이다. 이제 그들은 내 뺨을 보드랍게 쓸어주며 함께 말을 한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얕은 언덕에 앉은 나는 바다의 사랑을 지켜본다. 다가오면 안아주고, 다가와서 안아주는 그들의 몸짓을 오래오래 지켜보고 있다. 한결같은 사랑이다. 저들의 깊은 신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길래 저렇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서로를 포옹해 주고 있는 것일까.

봄이 되면 도지는 방랑벽 탓에 다시 제주를 찾는다. 이번에는 혼자다. 겁 많고, 운전 잘 못하고, 셈도 흐린 데다, 꽃이 부르면 꽃이 부르는 데로 나비가 부르면 나비가 부르는 데로 발밑 확인도 없이 덮어놓고 홀려버리는 나다. 그런 내가 혼자 떠난다고 했으니 근심하는 눈들이 당연히 생겨난다. 게다가 얼마 전 여자 관광객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로 나라가 시끄러웠던 터라 근심의 도는 한층 높아진다. 오래된 친구 하나는 말 안 듣는 나를 두고 마음이 숯이 되고 있다. 키와 체격이 크고 활동적인 그녀는 언제나 나의 보호자였다. 어디를 함께 갈 때면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다녔고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너 때문에 내가 못산다며….

지난해 봄, 흐리고 비가 뿌리던 날, 나 때문에 못산다던 그 친구를 제주에서 만났다. 첫날, 내 이름으로 차를 빌린지라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가 얼마 못 가 빼앗기고 말았다. 친구는 말했다. "오~메! 옆에서 보자니 속에 천불이 나서 못 쓰겄다."

우여곡절 끝에 이틀의 일정을 마치고, 친구는 늦은 오후 배편으로 먼저 떠났다. 그리고 나는… 제주항에서 친구를 배웅하고 공항으로 오는 그 짧은 틈에 결국 문제를 만든다. 느릿느릿 차를 몰고 오는데 길옆에 있던 관덕정이 나를 홀린다. 차를 세우고 쭈욱 빠져든다. 봄날까지 살아남은 노란 하귤, 아이 머리통만 한 그 열매를 쓰다듬느라 시간을 날리고, 길게 뻗은 누마루 지붕에 넋을 날려 버렸다. 그날 나는 비행기를 놓쳤다. 이를 어쩌냐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자, 친구는 자기가 떠나자마자 문제를 일으킨 나를 어이없어하며 타고 있는 둥실배 속에서 애를 태웠다. 그날 나는, 그녀의 세련된 전라도식 욕 한 바가지를 오지게 덮어썼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번에는 온전히 혼자 가겠다하니 말리는 사람을 말릴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완벽하게 자유롭고 싶다. 또 이런 부실한 나를 챙기고 다녀야하는 타인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다. 항공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차를 빌린다. 승용차와 지하철, 비행기와 배, 그리고 나의 두 발, 인간이 고안한 온갖 이동수단을 다 동원한 끝에 우도에 닿는다.

섬은 완벽한 봄이다. 푸른바다, 하얀바다, 검은바다, 초록바다가 연이어 나타나고 사라진다. 해변 길을 걷자니 주위가 너무 요란하다. 쉴 새 없이 사람과 차가 지나다닌다. 사람을 피해 언덕을 오른다. 언덕이라고 해봐야 정말 소 한 마리 누운 듯 나지막하고 평평하다. 제대로 경작을 하는 밭은 채 절반도 안 돼 보인다. 나머지는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 피고 싶은 곳에 꽃이 피고, 자라고 싶은 곳에 풀이 자란다. 밭 자락에 누운 뒤꼬리가 긴 무덤에는 보랏빛 제비꽃이 화관처럼 둘러싸고 있다. 저 무덤의 주인은 생전 어떤 사람이었기에 무덤조차 화관이 씌워졌을까.

바람돌로 쌓아놓은 돌담장을 보니 마음이 아리다. 저리 허술한 것이 저렇게 어설프게 쌓여 긴 세월 담지기 노릇을 하느라 얼마나 수고스러웠을까. 힘없고 빈틈 많고… 어찌 저리 나를 닮았을까. 닮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해 주려나 싶어 돌담장에 기대앉는다. 바람이 지나간다. 돌담장 사이로 크고 작은 바람들이 제 길인 양 지나다닌다. 그렇구나, 허술해도 무너지지 않는 건 바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기 때문이구나. 그랬구나, 곧잘 설렁거리던 내 마음도 그래서 그랬구나. 그때마다 바람이 지나갔고 그 바람구멍 덕분에 여기까지 견디고 온 것이구나. 긴 숨이, 긴 바람이 내 가슴에서 빠져나온다. 나는 한결 가볍다. 뱃속에 든 게 없어 더더욱 가볍다.

편식이 심하고 비위가 약한 나는 한 번씩 호된 홍역을 치른다. 신경 쓸 일이 생기거나 신체균형이 흔들리면 일종의 거식증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평소 무리 없이 먹던 음식들도 잘 삼키지 못하고 어떤 음식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가 되곤 한다. 요즘 나는 그 유사거식증의 절정기다. 하지만 여행을 왔고 오래 걸어야 하니 무엇이라도 먹어야 한다. 이것저것 시도해 봐도 구역질을 하며 되뱉어 낸다. 도무지 삼켜지지 않는다. 컵라면을 먹다 실패한 해녀편의점에서 물끄러미 냉장고를 들여다보다 캔 맥주를 하나 집는다. 평소에도 음료라고는 물과 커피 외에는 잘 먹지 않을뿐더러 더더욱 술은 거의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의외의 선택이다.

봄날, 노랗게 핀 유채밭둑 사이로 연노랑 옷을 입은 여자, 손에 캔맥주를 하나 들고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며 걸어간다. 춘광녀가 따로 없다. 살다 보면 한 번씩 딱 미쳐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던가. 쌈지에 꼭꼭 눌러 두었던 그 마음을 여기 이 자리에서 연기처럼 날려 보내는 중이다. 나는 점점 바람을 탄다. 풀처럼 유채처럼 바람을 탄다. 그 바람과 함께 완만한 곡선으로 언덕을 감고 넘는다. 머리께로 날아가는 종다리의 꼬리털도 손만 뻗으면 잡을듯이 자유롭고 가볍다. 나는 바람이다.

섬바람이 된 나는 굳은 땅으로 사진들을 전송한다. 이곳으로 마음을 보냈노라는 어떤 이는 내 발자국만 외줄로 찍힌 사진을 보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포스라운 밭 얼굴에 폭폭 찍힌 발자국을 보니 내 무게보다 무거운 무엇이 함께 오긴 왔나 보다. 말해 주어야겠다. 내내 담고 다니느라 가슴 저렸다고.

허공에다 말을 던진다. 지금 나는, 노랑 유채와는 동색이고 검은 바다와는 보색이라고, 한 철을 살고 가는 유채는 놀라지 말라고 토닥이고, 천만 년을 살아온 바다에게는 나도 버텨보겠노라 주먹을 쥔다. 언제나 나의 살이에는 노랑 유채와 검은 바다가 함께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섬마을 바람돌처럼 숭숭 뚫린 가슴으로 긴 담장을 이으며 이렇게 멀리까지 오지 않았는가. 이만하면 혼자 여행할 만큼 "나 용감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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