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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꽃부처 / 윤경화

부흐고비 2021. 5. 4. 12:57

잠든 꽃의 모습은 순금이다. 손전등 아래 나나니처럼 부드러운 숨결로 쉬고 있는 각시붓꽃은 온전한 금으로 보인다. 성철 스님의 '*순금'을 몰랐다 하더라도 내 눈에는 그리 보였을 것이다. 꽃이란 명사 앞에 사람들은 '아름다운' 또는 '예쁜'이란 형용사를 즐겨 붙인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꽃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식물이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일은 고행을 동반하는 구도의 길이거나 새로운 우주의 탄생에 견줄 만한 사건이다. 사람들은 진정 식물의 지난한 성장과정을 헤아려 그런 찬사를 올리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꽃은 당연히 아름답고 예뻐야 하는 당위성 같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사월과 오월의 꽃 정보란을 장식하는 금낭화는 최고의 색깔과 모양으로 보는 이마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에 가슴 벅차게 한다.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조건을 고루 갖춘 완벽한 이미지의 야생화다. 그러나 꽃도 겉보기엔 생존이란 명제 앞에 치열한 생로병사로 한 생이 점철된다. 그럼에도 환하게, 예쁘게, 향기롭게, 때로는 매혹적으로, 춤추며 웃는 것은 존재 방식의 숙명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밤이면 조용히 꽃을 방문한다. 화불花拂의 모습으로 입정에 든 듯 맑음과 고요가 흐르는 '순금'이 된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꽃이란 말만 들어도 구족한 선물 같다. 이슬 한 방울도 쉽게 앉아 쉬지 못할 만큼 고운 살빛을 가진 고귀한 존재. 하지만 나로서는 이 '아름다움'의 일반적인 개념에 동의할 수 없다. 볕이 좋은 오전 열한 시경부터 오후 서너 시까지 금낭화의 도도록한 엉덩이에는 꿀을 따려는 일벌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살점이 뜯겨 너덜너덜할 때까지 몇날 며칠을 두고 꽃과 벌은 일생일대의 중대사를 치른다. 그렇게 야단법석으로 막을 내린 꽃의 아름다움은 적막한 태양의 침묵 속에 잠겨 익어간다. 그처럼 뜨거운 공존 방식이 아름다움의 근원이라면 '아름답다, 예쁘다'는 말의 무게는 가늠하기 쉽지 않으리라. 어쩌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미 꽃을 통해 순금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비단 식물에서 피어나는 꽃 앞에서만 높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말에서도, 표정에서도 꽃을 마주하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겨울에 구순에 이른 고종 시누님을 모시고 친척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말이 시누이일 뿐 구순의 시누이는 시어른처럼 느껴지는 연륜이라 자꾸만 마음이 갔다. 친정어머니 연배인 시누이 앞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게 조심스러울 법도 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녀의 유쾌한 화술에 빠져들었다. 말씀이 많거나 난삽한 것도 아니면서 젊은 사람들(60~70대)의 대화 중간에 양념처럼 한마디씩 던지는 유머는 즐거움을 주었다. 구순에도 사람이 그토록 향기 나고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사실이 좌중을 기쁘게 했다.

백합 같은 백발과 이월의 수선화 같은 주름진 얼굴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식사가 끝나고 조금은 나른한 기운이 도는 시간, "밥도 맛있게 먹었으니 내 시 하나 낭송하께." 김춘수 시인의 '꽃'이 구순 노인의 입에서 곱게 피었다. 행간의 미소는 달밤의 박꽃이었다.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 너거 집에 가서 저녁 먹었제? 그때 참, 좋더라." "형님, 그때도 참, 아름다우셨어요."

"아이고, 그랬나? 고맙다."

일찍 남편을 보내고 자식들과 꾸린 인생은 굴곡이 많았을 테지만 세월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선물했다. 건강한 가족과 가정, 무엇보다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여 꽃이 되게 한 것이다. 웅성거리는 이야기 속에 마주 앉아 한마디씩 하는 말씀은 모두 꽃으로 피었다. 구순의 노인은 아름다운 마무리도 잊지 않으셨다. 일어서기 직전에 부른 김성한의 '인생'이라는 노래는 꽃다발 선물이었다. 마지막 소절은 의미심장했다. '돌아본 인생 부끄러워도 지울 수 없으니 / 나머지 인생 잘해봐야지' 순식간에 벌어진 떼창은 꽃밭이 되었다.

'나머지 인생 잘해봐야지!'

《장자》의 내편 <소요유>에 나오는 장자와 혜자의 대화가 떠오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은 구순의 노인은 너무 커서 쓸모없는 '박'의 쓸모를 찾아 그 맛을 음미하고 있는 듯했다. 시누님은 상상할 수 없이 큰 시간의 박 위에 올라 쓸모없음의 쓸모의 진수를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이야말로 순금으로 다가와 환했다.

말은 꽃이다. 만난 적 없는 사람이라 해도 몇 마디 인사를 나누다 보면 상대의 향기를 짐작할 수 있다. 꽃을 보며 식물의 근본을 짐작하듯 말은 그 사람의 세계를 담고 있다. 굳이 미사여구나 학식이 풍부할 필요도 없다. 그냥 따뜻하고 진심이 담기면 간단한 말도 그 울림은 상대를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한다. '응, 그래, 맞다. 그렇구나. 내 니 해낼 줄 알았다. 니는 그게 매력이다. 모두 니 덕분 아이가.' 너무나 평범해 존재감마저 없을 것 같은 이런 말에 우리는 감동하고 내 편일 거라 믿으며 용기를 얻는다.

이처럼 예사로운 말 한마디가 꽃이 되게 하는 사람, 적막한 태양의 침묵 속에서 꽃의 전설을 만드는 식물, 그 일생은 이미 욕심과 욕망의 경계를 넘어 '순금'의 경지에 이른 꽃부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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