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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3점의 갈등 / 류영택

부흐고비 2021. 6. 7. 14:13

인터넷 고스톱은 돈을 딴들 주머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잃어도 내 주머니에서 나가지도 않는다. '옹산화병'(甕算畵餠) 그야말로 헛배만 부르고 실속 없는 게임이다.

하지만 막상 게임을 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처음에는 잃어도 그만 따도 그만 그저 장난처럼 시작지만 하다보면 패 한 장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행여 싸지나 않을까. 싸놓은 패를 상대가 가져가면 어쩌나. 별 소득도 없는, 그림의 떡을 놓고 독장수셈을 하고 있노라면, 마치 마주 앉아 있기라도 한 듯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콩닥콩닥 뛰고 있는 심장박동 수까지 느껴져 온다.

나는 고스톱 전문 꾼이 아니다. 대충 흐름은 알고 있을 뿐 고스톱을 쳐보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고스톱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 것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에 빠져있는 아내와 다투다 보니 수만 늘은 것이다.

"얌체 같지 않아요?" 패를 내놓기 바쁘게 싹쓸이를 해버리는 상대가 얄밉다며 아내는 입을 삐쭉거린다.

나는 아내가 지고 있을 때는 끼어들지 않는다. 운이 좋아 뒤집어씌울 패가 들어오면 모를까 고를 부르던 스톱을 하던 칼자루는 이긴 쪽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이기고 있을 때는 다르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나는 만원을 잃는 것보다 단돈 천 원을 따는데 더 치중을 하는 편이다. 잃는 돈은 능력 밖이지만 내 손에 들어올 돈은 관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천원을 열 번 잃어도 한 번에 만원을 가져오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3점을 두고 자연히 입씨름을 할 수밖에 없다.

"스톱 안 하고 뭐하노!" 게임에 빠져 있는 아내보다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더 안달을 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돈에 눈이 멀어 게임인지 화투판인지 분간을 못 하는 내게 아내는 인터넷 고스톱은 피박이 없다며 약을 올린다.

아니나 다를까. 점수가 나지 않아 한 바퀴를 더 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이지고 만다.

"뭐라 카더노, 스톱하라 안 카더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방안을 빙빙 돌고 있는 나를 향해 아내는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며 핀잔을 준다.

"안 그러면 좁쌀영감 아니랄까봐!" 보란 듯이 아내는 또 다시 고를 부른다.

"여태 살림 징긴 게 용하다!" 쓴 소리를 해대지만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뜰채를 들고 서 있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하다.

아내는 승부사 기질을 타고난 것 같다. 못 먹어도 '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콩나물 가격을 비교하던 평소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한 번은 현찰이 오고는 고스톱 판을 벌릴 적이 있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꾸리머름 한 걸 보니 심상치가 않았다. 금세라도 장대비라도 내릴 것만 같았다. 오늘 같은 날씨에 설마 놀러 가자고는 하지 않겠지. 나는 베란다에 앉아 먼 산을 바라봤다.

"어서 서두르세요?" 아내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며 좋아했다. 뭐가 좋아 난리람, 아내가 삐치기라도 할까봐 대놓고 불평을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는 그저 방안에 가만히 드러누워 부침개나 붙여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쳐 옷도 다 챙겨 입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라는 전화였다. 때맞춰 태우러 오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니 이보다 더한 호강도 없겠지만 밖으로 나다니는 것은 죽기보다 싫으니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가자며 옷을 끄잡아 당기는 아내의 성화에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일요일만 되면 가만히 놔두지를 않는 친구를 생각하면 이건 죽마고우가 아니라 원수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줄기 할 것 같은데." 차에 오르며 날씨 걱정을 하자. 친구는 싱긋이 웃었다.

"잔뜩 폼만 잡았지 대구 날씨가 예전 같나." 친구는 비가와도 대책을 세워놓았다며 걱정을 말랬다. 그 말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그의 아내가 화투 한모를 내보였다.

'이게 다 친구 집 가까이로 이사 온 내 잘못이다.' 참으로 대단한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비가 올지 몰라 다리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닭백숙 할 찜통을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니 놀지 못한 조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굶어 죽은 조상이 있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이제 술까지 끊고 무슨 낙으로 사노?" 빗줄기가 뚝뚝 떨어지니 달리 나다닐 곳도 없고, 한쪽 머리에 물러앉아 있는 내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고스톱 치던 친구가 쩌쩌 혀를 찼다.

초장부터 아내는 돈을 잃었다. 천 원짜리가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만 원짜리가 나왔다. 나는 태무심하려고 엉뚱한 곳을 바라봤지만, '고' 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구멍 난 자루에 쌀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가슴 한구석이 허해져 왔다.

'왜 저리 패가 안 풀리지'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속이 타들어 가는데 아내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하긴, 초장 끗발 개 끗발이라 하지 않던가.' 자꾸만 굵어지는 빗줄기만 바라보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빈이네는, 기리가 영 협조를 않네?" 고양이 쥐 걱정하듯, 자신들만 선을 잡는 게 미안했던지 친구아내가 오히려 앓는 소리를 했다.

"고돌이 칠 일이 있어야지……." 희멀건 웃음을 내놓았지만 아내는 콩나물을 살 때 그 모습이 아니었다. 끗발은 돌고 돈다. 여유가 묻어났다.

"흔들었다." 친구아내의 말을 무색하게 하기라도 하듯 아내의 손에 이내 큰 게 걸려들었다.

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화투판을 곁눈질 했다. 아내의 손에는 코주부도 들려있었다. 잘만하면 대박이 날 것 같았다.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아내는 집에서 하던 대로 고를 외쳤다. 내가 간섭을 못하니 눈치 볼 일도 없었다. 고, 고를 외치던 아내는 결국 두 번째 고에서 잡히고 말았다.

양 박에, 거기다 흔들었으니 도대체 점수가 얼마야! 생각할수록 속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저놈에 여편네!' 마음 같아서는 아내의 머리를 한방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쓰린 속을 감추느라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다.

화투판은 자리에서 일어서봐야 안다. 아내는 그날 만 사천 원을 땄다. 아내는 2대1로 싸워 돈을 땄으니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냐며 자랑을 늘어 놓았다.

"대단한 것 좋아하네!" 조마조마 속을 끓인 것을 생각하면……. 3점에 스톱을 한 것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게임이든 현찰이 오가는 화투판이든 일단 판에 뛰어든 이상 이겨야 한다. 친구 간에 재미로 노는 화투판일지라도 다르지 않다. 돈을 잃고도 별 내색을 않는 사람이 매너 좋게 보이지만, 그 보다는 '얼마 잃어나?' 잘 놀았다며 딴 돈을 다 내놓는 친구가 더 멋있어 보인다. 돈 잃고 기분 좋을 사람 없다.

방법은 다르지만 아내와 나도 다르지 않다. 이기기 위해, 나는 점수가 나면 스톱을 원하고 아내는 고를 부른다. 그 일로 아내와 나는 서로 갈등을 빚는다. 마치 칡과 등나무처럼.

칡과 등나무의 공통점을 위로 뻗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르는 방법이 다르다. 칡은 왼 쪽으로 줄기를 감아 오르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틀어 오른다.

"뭐라 카더노, 스톱하라 안 카더나!" 오른쪽과 왼쪽, 결코 같은 쪽으로 방향을 틀지 못하는 칡과 등나무처럼, 3점만 나면 아내와 나는 고와 스톱을 두고 언쟁을 벌인다. 한 번도 아내의 고집을 꺾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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