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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새를 찾습니다 / 박금아

부흐고비 2021. 6. 9. 12:28

회색 몸체에 주황색 볼. 꼬리 10㎝, 몸통 15㎝. "깐난아!”하고 부르면 옵니다.
신동아 아파트 근처에서 잃어버렸습니다. 관악산 주변에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사례금 100만 원

새를 찾는다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걸어 다니는 인간이 날아간 새를 찾을 수 있을까? 조금 더 가니 새를 찾는 전단이 또 있었다. 골목을 다 걸어 나오는 100여 미터 사이에 열 개도 넘는 전단이 붙어 있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간절함이 전해져 왔다.

산목숨을 잃어본 사람은 그 간절함을 가늠할 수 있다. 나도 딱 한 번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다. 세 살 적에 시장엘 데리고 갔다가 물건 사는 데에 정신이 팔려 손을 놓아버렸었다. 겨우 삼십여 분을 찾아다녔을 뿐인데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뜩해진다. 새를 잃은 주인도 엄마의 심정이었던가 보다. 오죽했으면 날아간 새를 찾을까.

길이 끝나는 곳에서였다. 빗물 웅덩이에 전단 한 장이 떠 있었다.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물에 빠진 새를 건지듯 얼른 주워들었다. 모서리에 점성이 떨어진 셀로판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벽에 대고 꾹꾹 눌렀더니 빗물 때문인지 테이프 때문인지 붙었다. 내 마음에도 그때 그 새가 한 장의 전단으로 붙여졌던 걸까. 우산 속으로 비가 들이치는 것도 모르고 새에게 빨려 들어갔다.

왕관 앵무새였다. 흑백사진이었지만 명암의 세기로 새를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다. 힘주어 치켜 올린 앞머리와 잿빛 연미복을 받쳐 입은 듯한 반듯한 몸새가 첫눈에도 어험스러웠다. 꽁지깃에서는 함치르르한 윤기가 흘렀다. 명상에 잠긴 눈빛으로 올올히 앉아 있는 모습이 성년에 이른 새였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새가 보고 싶었다. 눈망울을 마주 하고 싶고 코와 부리, 발톱까지 만져보고 싶어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둑한 고시촌에 한 가닥 빛줄기가 비쳐드는 것 같았다.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믿지 않는 세상에 날아 가버린 새를 찾다니…. 모두가 허망해할 것을 간절함으로 기다리는 한 사람이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몸이 따뜻해졌다. 우산 그림자가 큰 날개 새가 되어 두둥실 밤하늘을 날아오르게 했다. 거세진 빗줄기에 치맛자락이 다 젖었지만 달뜬 채로 한참을 걸었다.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스마트 폰에 담았다. 카톡 창에 포로롱!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전단의 새가 자라기 전의 아기 새 같았다. 막 알에서 나온 듯한 노랑연두 깃털과 오렌지 색 볼, 사람의 어깨에 달라붙다시피 앉아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애송이 새였다. 목덜미에서 주인의 쓰담쓰담한 손길이 느껴졌다.

프로필 배경 화면을 눌러보았다.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전단에 실린 새를 안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맑고 선한 눈빛이 새를 똑 닮았다. 그도 어쩌면 한 마리의 순수한 새를 꿈꾸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새가 주인을 닮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도 몰래 기도가 새어 나왔다.

‘깐난이가 꼭 돌아가기를 바랄게요.’

다음 날 아침이었다. 베란다에 서서 숲을 살폈다. 새 소리가 전에 없이 요란했다. 전날 일이 떠올랐다. 새로 온 깐난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무리 속에 깐난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새를 부르고 싶어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얼어붙기라도 한 것인지 당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새를 부르려니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몇 번의 헛기침 끝에 간신히 용기를 내었다.

“깐난아!”

“…….”

아무렴, 내 목소리가 새들에게 닿았을 리 만무했다. 나는 새들의 세상에서 너무 멀리에 있었다. 새들은 내 속을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도 없으면서 내가 깐난이를 부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실을 담아 이름을 불렀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거짓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다. 새를 부르지 않은 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새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카톡 창을 열어 새의 주인에게 물었다. ‘깐난이가 돌아왔나요?’ 그는, 아직 안 돌아왔다며 마음 써주어 고맙다고 했다. 용기를 내어 다시 새를 부르기로 했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진실한 새의 울음을 간직하고픈 한 사람을 응원해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부터 베란다에 서거나 관악산 근처를 지날 때면 깐난이를 불렀다. 지나는 사람들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마음 두지 않았다.

그만으로도 화답한 것일까. 깐난이를 부르고 조금 있으면 구름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아가는 비행기도 날개를 움칫 움직여 하늘을 열어주는 듯했다. 관악산도 품을 열어주었다. 울새와 쏙독새, 물까치 떼가 칡넝쿨이 우거진 숲을 날아오르며, “치찌찌!”, “쏙쏙쏙!”, “쿠이, 꾸이!” 하며 대답을 보내왔다. 깐난이를 만나면 얼른 주인아저씨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전하겠다는 언약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허튼 상념들이 칡넝쿨처럼 얽혀 있던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내 속에서도 “깐난아! 깐난아!” 하는 진실한 새의 울음이 들려왔다. 산 너머에 살고 있다는 주인에게도 닿을 수 있으려나. 오늘 아침에는 더 큰 소리로 새를 불렀다.

“깐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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