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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짝이 되고 친구가 된다. 그렇게 만나도 어느 시점에선가, 나와 다른 상대의 생각에 움칫 놀란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려고 친구와 나란히 섰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는 시가 있다. 자연스럽게 하얀 글씨에 눈이 갔다. 친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것도 시(詩)라고... 시시하다’고 했다.

같은 순간, 다른 생각을 했으니 잠시 멀어짐을 느낀다. 평소 스크린도어의 시를 자주 읽는다. 주변에는 답답하다고 지하철타기를 꺼리는 사람이 꽤 있다. 메마른 일상에 위로가 되길 바라며 문화예술을 지하철에 끌어들였다. 어느 누구도 시에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다. 한술 더 떠 옆의 빈 유리에 영어로 번역해서 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이다. 문화예술이 제일 쉽게 외국인의 마음을 울린다. 그들도 우리들의 정서를 느끼고, 이웃에 전할 텐데... 친구에게 내 생각을 말하고 나니, 서로 머쓱했다.

친정처럼 자주 드나드는 곳이 있다. 11월의 은행잎을, 그곳에서 한 움큼 담아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그 곳은 덕수궁이다. 전생에 궁에서 살았나 할 정도로 그곳은 편안하다. 누구는 은행잎으로 친환경 약제를 만든다고 한다. 벌레를 없앨 겸, 나는 늘 예쁜 은행잎을 몇 군데 놓아두며 가을을 마무리한다. 그 곳, 덕수궁을 갈 땐 공광규시인의 ‘가을 덕수궁’을 읊는다. 물론, 이 시도 지하철에서 만났다.

<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나란히 서서/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고 물들이다가/ 땅에 내려와 몸을 포개고 있다 / 은행나무와 모과나무 잎도 그렇고/ 병꽃나무와 생강나무 잎도 그렇게 단풍으로 달아오른 몸을 포개고 있다/ 허리가 없고 배가 나온 초로의 남녀가/ 가을나무아래 팔짱을 끼고 간다/ 물든 마음을 서로 포개고 있을 것이다 >

이렇게 읊으며, 돌담길 옆 나무를 보았다. 올해는 왜 아직 나무에 털옷을 안 입혔지? 걱정하자 나도 으스스 추워졌다. 몸을 옴츠리며, 정동길을 계속 걸었다. 예쁜 카페 ‘르풀’에서 커피로 몸을 녹였다. 도순태의 ‘팽나무사랑’, 강찬모의 ‘평상심’, 이재숙의 ‘나목’, 김국래의 ‘열무단’등의 시가 좋다. 이외에도, 지하철의 좋은 시는 차고 넘친다.

얼마 전 11월 하순에 한반도의 최남단 진도(珍島)에 다녀왔다. 밭에는 배추와 파밭이 주종을 이뤘다. 그곳은 김장이 다른 데보다 보름정도 늦다고 했다.

쭉 뻗고 힘찬 모습의 파밭은 차창을 스쳐 한없이 지나갔다. 밭마다 나란히 서 있는 파의 모습을 보며, 홍일표의 ‘파꽃’을 떠올렸다. 2017년 시민공모작이다.

‘파꽃’은 핸드폰으로 찍어 내가 저장한 시이다.

< 촌스런 계집아이처럼/뾰조름 내민 수줍은 얼굴은/ 서릿발 풀린 하얀 달빛에 빚은 꽃/ 오뉴월 솜털 솟은 텃밭에 허수아비 반겨/삼삼히 묻어나는 엄니처럼/퇴약볕에 종일 흰 수건 덮어 쓰고는 풍년들 거라 기도하는/ 이제 껍질을 벗어 서걱거리는 치마폭 담아낸 속내/ 봉우리마다 웃음으로 벙그는 /아침 같은 생큼한 파꽃입니다 >

지하철의 시로는 내가 최고로 꼽는 시 ‘파꽃’.

시에 쓰여 있듯 하얀 파꽃은 오뉴월에 핀다. 11월의 성성한 파에선 흰 수건 덮어쓴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나 혼자 퍼런 파에 흰 수건을 덮어씌우고 있었다.

하얀 꽃이 핀 나만의 파밭이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지하철 시가 준 감동이 진도에서 감성의 꽃이 피었다할까... 문학적 힘의 확장성이 이런 것일까...

진도에 숱하게 펼쳐져있는 아름다운 섬들에 넋을 잃었어도,

건져져 녹슨 채 서있는 세월호의 모습에 가슴이 시렸어도,

모든 것 중에 성성하고, 당당하게 흰 수건 덮어쓴 채 서 있는 파의 모습.

푸른 파 위에 내가 얹어준 흰 수건.

그 모습이 진하게 잔영으로 남아있다.

뉴질랜드 그 넓은 초지를 덮어버린 양떼의 모습처럼 하얗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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