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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것을 보고 있으니, 문득 운주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작은 절. 몇 년 전 국문과 학생들과 함께 떠난 답사 여행 때 처음 그곳을 보았다. 늦은 봄날이었다.

광주 지나 화순 시골에 버스가 섰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가랑비로 변한 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논두렁 길을 조금 가니 운주사가 보인다. 길가 산자락에 작은 돌부처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아니 이게 뭐야?" 놀라서 부처들을 다시 본다. "세상에 이런 부처들이 있다니…." 운주사 계곡에는 못생긴 돌부처와 돌탑들 천지다.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본 부처들이 준 충격, 특히 미적(美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사찰을 가 보아도 대웅전에 모신 부처는 모두가 이목구비가 수려한, 얼굴에서 빛이 나고, 위엄도 있는 대자대비한 모습이다.

그러나 운주사 계곡에 앉아 있던, 산자락에 기대고 서 있던, 혹은 벼랑에 부조로 박혀 있던, 산 위에 누워 있던 부처들은 하나같이 눈, 귀, 코, 입은 물론 신체도 정상적인 균형을 갖춘 게 하나도 없었다. 코만 크거나 얼굴이 길거나, 윤곽만 있는 얼굴이거나, 아니면 윤곽조차 흐릿한 얼굴이거나, 한마디로 '괴짜' 부처들이다.

이건 얼굴이 아니다. 이건 부처가 아니다. 운주사 돌부처들이 보여주는 만들다 만 얼굴들, 그러나 미소 짓는 얼굴들이 암시하는 것은 많다. 이 세상의 상식과 인습을 뒤집어엎는 이 괴짜 부처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제발 잘난 척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 것 같다.

괴짜들은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다. 그래서 좀 못난 구석이 사랑스럽다. 괴짜들이 많은 세상은 행복한 세상이다. 특히 예술계가 그렇다. 뒤샹은 남성용 변기에 '샘'이라는 표제를 달아 전시회에 출품하고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괴상한 행위가 현대 미술을 혁신하고 있다. 앤디 워홀은 건물 40층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8시간 동안 촬영을 했다. 그 결과는 사무실에 전등이 켜지는 모습, 저녁이 되어 전등이 하나둘씩 꺼져가는 모습, 마침내 건물 전체가 어두워지는 모습이 전부다. 이런 괴짜 예술가들에 의해 인습적인 예술이 변하고, 새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상상력이 나오고, 예술이 발전한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이런 괴짜들이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모두가 평준화된 상상력, 인습적인 상상력만 판친다. 뉴턴은 학생들이 하나도 없는 강의실에서 혼자 강의를 했다. 어떤 일본 시인은 바닷가에서 파도를 향해 자신이 쓴 시를 낭독했다. 우리는 이런 괴짜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일까.

'괴짜'라는 말도 범인(凡人)들이 만든 것일 뿐이다. 위대한 선승들은 대체로 괴짜들이었다. 이들의 괴이한 행위는 일상적 사유(思惟)를 벗어난 무애행(無碍行)이고 천진행(天眞行)이다. 중국 선승 단하는 한겨울 법당에서 나무부처를 끌어내 불을 땠다. 보화는 무덤에서 자고 일어나면 거리로 나가 요령을 흔들며 걸식을 했다.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며 '괴짜'에 목말랐다. 모두 실력도 있고 공부도 잘해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이다. 그러나 주관식 시험 문제를 내면 쩔쩔매고, 강의도 토론식으로 진행하면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모두들 모범 답안만 찾는 눈치다. 문학과 예술에 모범 답안이 어디 있을까. 창의적 사고, 독창적 사고는 '평준화'를 벗어난 괴짜들의 영역인 것 같다.

이게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는 결코 우리식 모범생은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세계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

올겨울엔 사는 게 답답해서 삭발을 하고 지낸다. 삭발한 김에 스님들이 쓰는 털모자를 쓰고 운주사에 가고 싶어진다. 그때 가랑비를 맞으며 서 있던 못생긴 부처들, 그 놀라운 부처들은 눈 속에선 어떤 모습일까. 내 모습을 보고 웃어주실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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