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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거리 / 최선자

부흐고비 2021. 8. 19. 09:11

부천신인문학상 당선작

복숭아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며칠 후 꺼내 보니 서로 살이 맞닿은 부분은 썩어가고 있다. 서로를 너무 깊이 알아버린 탓일까. 아니면 살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모른 탓일까. 복숭아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나 보다. 짓무른 상처에서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복숭아를 보면서 거리를 생각해 본다.

나는 예순이 코앞인 나이에도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한다. 아직도 설익은 눈으로 한 올의 의심도 할 줄 모른다. 그 덕에 가끔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실망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설마, 하는 믿음이 변하지 않을뿐더러 바닥이 빤히 보이는 내 사유로는 상대와 유지해야 하는 거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거리는 살을 맞대고 썩어가는 복숭아의 거리였다. 적당한 거리는 모른 채 틈새도 허용하지 않았다. 남편이니까 매사 당연히 알고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전제를 달고 나면 야속했다. 그러다 보니 상처는 늘 아물 틈이 없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하지 못한 내 이기심이었다.

항상 내 곁에 있으면서도 멀리 있었던 사람, 나는 남편이 먼 길을 떠날 때까지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남편도 애증에 시달리다 갔으니 나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삼십오 년을 살고도 서로를 다 알지 못했으니 우리 부부의 사랑이 부족한 탓이었으리라. 대가는 혹독했다. 복숭아의 과즙처럼 서로의 상처에서 뚝뚝 떨어지는 진물을 닦아낼 새도 없이 이별을 맞았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칼날이 되어 가슴을 난도질했다. 한동안 들판의 억새가 돼 흔들리며 정처 없이 떠돌았다. 내 아픔을 안다는 듯 가을도 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자야 한다고, 먹어야 한다고,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번뇌에 사로잡혀 나중에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눈빛만 봐도 안다는 사랑을 역설적이게도 그의 사후에야 보고 있었다.

나는 복숭아의 살처럼 주저앉아버렸다. 다행히 내 곁에는 죽비 아닌 죽비를 든 세 자식이 있었다. 아이들은 나의 마음을 죽비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모든 일상을 엄마 위주로 바꾸려고 애를 썼다. 아빠와의 이별에 힘든 상처를 내색하지 않았다.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함께 여행을 가주고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살펴주고 마음을 써주었다. 어느 날 죽비에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이 가장 힘들었을 때 감싸주지 못하고 내가 짐이 됐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했다. 아이들의 정성에 다시 일어섰다.

그때 내 사고의 거리를 실감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히려 아이들과 엄마의 역할이 뒤바뀐 꼴이었다. 아이들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하고 슬픔의 골에서 허우적거리고만 있었다. 언제나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사려 깊은 어른으로 자라 있었다. '악처가 효자보다 낫다.'라고 했으니 아이들과 남편의 거리가 나보다 더 멀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가 있었으니 복숭아처럼 썩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빠와의 이별은 아이들에게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한 획일 게다.

가족들과의 거리를 따진다면 남편과 자식 중 누가 더 근거리에 있을까. 예전에는 분신이니 자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달라졌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다 보니 자식들에게 쫓겨나다시피 집을 나와 한 칸짜리 방을 구하는 노인들을 종종 만난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노후 준비를 못 한 노인들이 끼어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현실을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노인들은 늙으면 당연히 자식들이 부양해줄 것으로 믿었을 게다. 자식에게 아낌없이 퍼준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손녀가 다가와 허리를 껴안는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해서 신바람이 났다.

“할머니 있잖아, 오늘 선생님은… 내 친구 강주는… 수영이 생일 선물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죄다 말해준다. 별들이 사는 손녀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틈새 없는 거리다. 나는 이야기 속에 빠져 잠깐 천국에 다녀온다. 손녀와의 거리에는 바람도 지나가지 못한다.

우정의 거리에 가끔 가슴이 뭉클할 때가 있다. 삶에 쫓기다 보니 친구들과의 교류도 원만하게 못 했다. 그런데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아주 가까이 다가와 준 친구들이 있다. 지면에 실린 내 글을 보고 많이 울었다는 친구는 내가 어려서 공부를 계속하지 못한 것을 두고 어느 날 나보다 더 서러워했다. 작년 연말이었다. 새해 인사 문자를 보내면서 한 친구가 느닷없이 통장을 확인해 보라고 했다. 다리를 다쳐서 한동안 가게에 못 나가고 있었더니 걱정됐다며 백만 원을 보내왔다. 딸이 엄마도 여유가 있다면 친구처럼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솔직히 못 한다고 대답하고 부끄러웠다.

가도 가도 아득한 막막했던 거리. 내가 가야 할 거리도 사람 사이의 거리도 가늠하지 못하다 보니 뒤돌아보면 회한으로 얼룩진 삶이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틈새가 전혀 없는 거리는 상처뿐이었다. 흉터는 몸 안에 옹이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다시 복숭아를 본다. 물러진 살 아래 차돌 같은 씨앗에서 싹이 돋아난다. 연분홍 복사꽃이 활짝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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