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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생기면 산으로 간다.

번잡하고 피곤한 세속에서 잠시 비켜나고자 함이다. 산으로의 떠남은 항상 긴장과 설렘이 먼저 온다. 몇 차례 가본 산일지라도 미리 지도를 들여다보고, 어디서 올라가 어디로 내려가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처음 가보는 산은 더욱 지도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가슴이 설레는 행복한 순간이다. 백두대간 구간종주나 지리산 종주의 경우, 올라가야 할 산아래 마을에서 민박을 한다. 설렘과 흥분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저녁 반주부터 마신 술의 힘을 빌어 잠을 청한다.

아직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행장을 수습하고, 대충 밥 먹고, 도시락과 간식을 챙겨 출발한다. 오늘 하루 열 시간쯤 산길을 오르내리고, 그래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그 산길 걸어가는 일에는 세상의 잡다한 일들이 끼어들지 못한다. 오직 산과 나, 더러는 산과 사람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이름 모를 나무·꽃·숲·바위·바람소리 때로는 비바람과 눈보라들을 살피며 대화하는 ‘나’의 영혼을 내가 보면서 간다.

내가 나를 보는 일이 산에서처럼 분명한 곳은 다른 데에 없다. 산은 나의 과거·현재·미래까지를 발가벗겨 놓고, 오직 한사람의 관객인 나에게 그것들의 분석과 해석, 그리고 결론을 요구한다. 도시에 있을 때와는 달리 이상하게도 나는 명료해져서, 나를 분석하거나 수습하는 데 익숙해진다.

산에 오르는 일을 자기성찰의 기회라는 말에 내가 동의하는 까닭이다.

오랜 시간 동안 오르락내리락을 계속하다보면 육체가 먼저 지치게 된다.

나중에는 의지나 정신력이라는 것도 지치게 되어 한시 바삐 산을 내려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눈·비·강풍 같은 악천후 속에서의 강행은 더욱 그러하다. 어려운 여건에서 장시간 러셀을 하거나 막영을 할 때도 그렇다.

산이 지겹고 무섭고 지긋지긋해진다. 마침내 세속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계획했던 대로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육신을 눕힌다. 그러나 마음은 흐뭇하다.

그 어려움 속을 오랜 시간 동안 뚫고 나왔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온몸이 개운하다. 새로운 활력이 내 몸에 충전되어 있음을 느낀다. 다시 도시 속으로 들어간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산에서 돌아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아 다시 또 산이 그리워진다. 그 지겹고 지긋지긋했던 산에서의 기억들이, 아름다움으로 솟아올라 나를 손짓한다. 떠남에의 유혹이 나를 다시 설레게 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도시에서 산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과, 산에서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되풀이됨으로써, 이율배반적인 생生이 성숙을 얻는다. 일탈과 귀소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본능의 선택이다. 일탈은 어떤 점에서 자유를, 귀소는 어떤 점에서 구속을 뜻하기도 한다. 떠남-일탈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모험심의 발로이자, 야성·원시성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돌아옴-귀소는 곧 안식과 안정이면서 동시에 매너리즘을 경고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떠남과 돌아옴의 이 되풀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의 도道에 이르게 된다.

속리산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는 이 시는 나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신라 말 최치원의 글이라고도 하고, 조선시대 백호 임제의 글이라고도 한다. 누구의 글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깊게 음미해 보아야 할 구석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도는 어떤 종교적 의미라기보다는, 사람이 마땅히 노력하고 연마하여 깨달음을 얻는 경지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 경지는 신선이나 귀신이 도달하는 세계가 아니라, 사람의 공부를 통해 사람이 얻게 되는 세계다. 따라서 도는 사람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여 자꾸 이것을 멀리하는 것 아닌가.

산도 마찬가지다. 산이라는 것도 어차피 세상(세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하나일 뿐이다. 그 산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깨닫게 된다.

산에 더 높이 올라가고 더 깊이 들어감으로써 나를 성찰하고 새로운 세계의 의미를 터득한다. 사람들은 이 일이 어렵고 힘들고 무섭다고 생각하여 자꾸 산을 피하거나 떠나는 것 아닌가.

고려 때 사람 김부식의 시 ‘감로사차운甘露寺次韻’의 한 구절이다. 산이 사람에게 주는 세계는 앞의 두 행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사람의 뜻과 생각을 맑게 하는 곳이 산이다. 뒤의 두 행에서 화자는 스스로의 살아온 길을 되돌아본다.

넓고 맑게 트인 산상에서, 스스로의 옹졸하고 어리석은 삶을 뉘우치는 것이다. 산은 이렇게 사람에게 생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속세라고 한다. 산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나 마을 바깥에 가까이 또는 멀리 솟아 있다. 솟아 있기도 하고, 소의 등처럼 믿음직스럽게 누워 있기도 해서, 사람들 사는 세상을 굽어본다.

속세의 잡다한 일들, 사람 사는 일들을 내려다보는 산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산으로의 떠남은 바로 그 산의 마음을 읽기 위한 고행일지도 모른다. 높고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 산에 가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 산을 향해 걷다 보면, 멀고 아득하기만 했던 그 산이 어느 사이 가까이 있다. 땀흘리고 숨 헉헉거리며 된비얄을 오르다 보면, 그 높고 큰 산봉우리 위에 올라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산으로의 떠남과 집으로의 돌아옴이 되풀이되는 생, 그래서 사람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더 풍요로워진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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