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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창꼬치 증후 / 장호병

부흐고비 2021. 10. 3. 11:16

"네가 본 게,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강변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경우는 예외라 생각하기 쉽다. 환경이나 생태계의 요구에 따라 수컷이 암컷으로, 또는 암컷이 수컷으로 성전환을 하는 어류나 식물이 있고 보면 경험의 맹신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더 신비한 것은 비단잉어의 일종인 코이의 경우이다.

코이 치어를 책상 위 작은 어항에 넣으면 3∼8cm 정도로 자란다. 하지만 수족관에 넣으면 30cm 정도, 연못에 넣으면 70∼120cm 정도까지 자란다고 한다. 자신이 생존하고 활동하기 좋을 만큼 DNA를 스스로 조율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있다. 물론 제주도나 서울은 단순히 지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세계를 의미한다. 세상을 보는 안목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우니 더 큰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란 뜻이다.

창꼬치에 관한 이야기 또한 묘하다.

뾰족한 입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몸길이 50㎝ 정도의 사나운 물고기이다. 적응력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이 작은 물고기가 들어 있는 투명 어항을, 창꼬치가 들어 있는 수족관에 넣었다. 예상대로 창꼬치는 어항 속 물고기들을 향해 돌진했다. 주둥이가 당나발이 되고, 자신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공격을 포기했다.

다시 연구자들이 어항 속 작은 물고기들을 어항 밖 수족관에 풀어주었는데도 창꼬치는 더 이상 이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전에 학습한 지식이 새로운 환경에서 전혀 쓸모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창꼬치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경을 헤쳐 나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체험이나 지식을 맹신한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려 하지도, 타협하려 하지도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체험이나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서 문제가 불거진다.

잘난 저마다의 주장으로 우리 사회가 혼란한 것은 보다 넓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전문가에게 귀 기울이기보다는 바뀐 상황은 제쳐두고 자신의 체험과 지식만을 고집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 창작활동은 골방, 반 평도 되지 않는 좁은 책상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작품 속에 우주를 품고도 남을 지혜를 담을 수 있는 것은 수많은 경우의 수를 조합해낼 수 있는 ‘상상’이라는 무한에너지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코이는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어항이나 수족관 혹은 연못에 머물 것인지, 강이나 바다 혹은 우주로 나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미 쓸모가 없어진 어제의 체험과 지식에 발목이 잡히는 창꼬치는 되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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