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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영해만세시장 / 김도현

부흐고비 2021. 11. 12. 08:57

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일백오십 리쯤 가면 ‘영해 만세시장’을 만날 수 있다. 옛날 예주고을로 불렸던 곳으로 소싯적에는 가장 큰 동네로 여겼던 곳이다. 십 리 떨어진 우리 집에서 밤에 보면 전깃불이 휘황찬란한 마을이었다. 산골 호롱불 아래서만 살던 문중 어른이 우리 집에 다니러 와서 밤에 그 불빛을 보고 ‘저 동네는 별이 참 낮게도 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 말기에 물물교환의 터전으로 각 면에 각각의 장마당이 펼쳐졌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 인근의 병곡, 창수, 축산은 장마당이 폐쇄되고 영해로 모이게 되었다. 현재 영덕군에는 아홉 개의 읍면이 있는데 영덕(4일, 9일), 영해(5일, 10일), 강구(3일, 8일)에만 상설화된 5일장이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해만세시장이 규모도 가장 크고 장꾼도 가장 많다. 영해장을 만세시장이라고 하는 데는 특별한 뜻이 있다.

영해지역은 구한말부터 많은 의병이 결성돼 일본에 무력 대항했다. 평민의병장으로 벽산 김도현 선생과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이 영해지역에서 일본군에게 공포와 전율을 주었다. 그 대를 이어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 만세운동의 기운을 받아, 3월 18일 영해시장에서 2,400여 명의 지역주민이 만세운동으로 궐기하여 영해, 병곡, 창수의 일본군 주재소를 무력으로 점거하는 등 투쟁을 펼쳤다.

그해 만세운동 현장에서 일본군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많았고, 잡혀가서 7년 징역을 산 사람과 90대의 매를 맞고 순국한 애국지사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영덕군 영해다.

이러한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뜻과 넋을 기리고 후세들의 구국 정신 함양을 위해 주민들이 뜻을 모아 1983년에 3.1의거탑을 건립하고 ‘영해관광시장’을 ‘영해만세시장’으로 개명하였다.

취학 전,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으면, 필요한 모든 것이 있고 갖고 싶은 모든 것이 고루 갖춰진 곳이라고 생각된다. 꼭 가 보고 싶은 곳이었으나 차비도 없고 차도 탈 줄 몰라서 마음대로 갈 수가 없던 동경의 곳이었다. 어쩌다가 어른들 몰래 마을의 또래끼리 신작로를 피해 무작정 걸어서 다녀온 적 있는데, 그 기억을 꺼내면 환갑 진갑 다 지난 지금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무얼 사 먹은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기웃거린 일밖에 없는데, 아주 큰일을 해낸 것 같았다.

거기는 별천지였다. 온 동네 소를 다 끌어 모아도 모자랄 우시장, 풀무질로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망치로 내리치는 대장간, 허연 광목 천막 아래 차려진 잡동사니가판대, 줄을 이어선 뻥튀기 가게 앞은 가관 그대로였다.

고등어, 꽁치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어물전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생선이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이름도 모르고 생김새도 희한한 생선 앞에서 발을 뗄 줄 몰랐다.

아이스께끼 통을 멘 아이도 있었고, 늘어진 고무줄 파는 아저씨도 있었으며, 삶은 고구마가 담긴 함지박을 앞에 놓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오던 길 걸어 집에 오니 난리가 났다. 그래도 그것이 나의 첫 나들이여서 깊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후엔 고등학교시절 새끼돼지와 복숭아를 팔러 나간 적이 있다. 집에서 키운 돼지가 새끼를 낳아 젖을 떼면 시장에 내다 팔았다. 한번은 아버지가 따 온 복숭아를 팔러 갔다가 값이 안 맞아 하나도 못 팔고 도로 싣고 온 적이 있다. 그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별의별 험한 소리를 듣기도 했다.

오늘날의 영해만세시장은 예전의 그 난전(亂廛) 위주의 장터가 아니다. 상설건물이 들어서고 장옥형 점포가 만들어져서 연중 쉬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등록된 상가가 218개소다. 또한 5일과 10일에만 고정적으로 전을 펼치는 장돌림이 1,000여 명이라고 상가 회장이 귀띔한다.

영해시장은 예로부터 안동시, 영양군, 청송군 등지의 내륙지역에 수산물을 공급해왔던 전통 깊은 시장이다. 광복 후 근현대 문물이 들어오면서 1965년 2월에 5일장으로 정식 개장하여 2002년도에 시장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설시장 겸 5일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축산항과 대진항에서 들어오는 풍부한 수산물, 병곡 창수지역의 농산물과 임산물은 시장 내의 주요 볼거리 살거리 먹거리다. 시장의 특산물은 대게와 문어, 물가자미와 곰치, 시금치와 부추, 꽁치젓갈과 매가리젓갈, 자연산 송이와 각종 자연산 버섯, 도라지와 더덕, 영덕복숭아, 사과와 배를 꼽는다.

특히 시장 안의 장옥형 상가에는 허기진 장꾼을 위한 먹거리 쉼터가 있어서 언제든 먹고 싶은 향토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다.

주요 식단은 보리밥, 추어탕, 순댓국, 선짓국, 곰치국, 막 썬 생선회 등이다.

영해만세시장 인근의 주요 관광지로는 나옹왕사의 장육사가 있고, 국가문화제로 지정된 괴시전통마을, 명사 이십 리의 고래불해수욕장, 의병장 신돌석 장군 생가, 피톤치드 향을 흠뻑 마실 수 있는 벌영 메타스퀘어 길이 10~20분 거리 내에 있다. 우시장, 대장간, 철공소, 농방, 극장이 없어진 것이 다소 아쉽다.

영해만세시장의 도로명 주소는 영덕군 영해면 예주시장5길(성내리 468-1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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