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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이정하 시인

부흐고비 2021. 11. 24. 08:37

이정하 시인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륜중학교, 대건고등학교를 거쳐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원광대학교 재학 중인 1987년 <경남신문>,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사랑 때문에 밤잠을 설쳐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의 시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감성적으로 표현한 그의 시 구절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청춘 남녀의 연애편지에 단골로 인용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혼자 사랑한다는 것은』, 『다시 사랑이 온다』 등과 산문집 『우리 사는 동안에』, 『소망은 내 지친 등을 떠미네』, 『나의 이름으로 너를 부른다』, 『내가 길이 되어 당신께로』, 『돌아가고 싶은 날들의 풍경』,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우느라 길을 잃지 말고』,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등을 펴냈다.

 



작은 기도 / 이정하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하소서/ 그리움으로 가슴 아프다면/ 그 아픔마저 행복하다 생각하게 하소서/ 그리워할 누가 없는 사람은/ 아플 가슴마저도 없나니// 아파도 나만 아파하게 하소서/ 둘이 느끼는 것보다 몇 배 도하더라도/ 부디 나 한 사람만 아파하게 하소서/ 간구하노니/ 이별하고 아파하는 이 모든 것/ 그냥 한번 해보는 연습이게 하소서/ 다시 만나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다시는 헤어져 있지 않게 하기 위한/ 그런 연습이게 하소서//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 이정하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거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 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합치면 / 이정하
안녕/ 미안해/ 걱정 마/ 잘 될 거야/ 당신에게 건네는/ 이 모든 말들을 합치면/ 사랑한다는 말이 되었다// 눈물/ 한숨/ 아련함/ 그리고 기대/ 당신을 향한/ 이 모든 마음을 합치면/ 사랑하는 마음이 되었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 이정하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가는 만큼/ 그대가 멀어질 것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면/ 내가 다가가면/ 그대는 영영/ 떠나갈 것 같아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대가 떠나간 뒤,/ 그 상처와 그리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더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한 순간 가까웁다/ 영영 그대를 떠나게 하는 것보다/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오래도록 그대를/ 바라보고 싶는 마음이 더 앞섰기에.//

너를 보내고 / 이정하
너를 보내고,/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찻잔은 아직도 따스했으나/ 슬픔과 절망의 입자만 내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어리석었던 내 삶의 편린들이여,// 언제나 나는 뒤늦게 사랑을 느꼈고/ 언제나 나는 보내고 나서 후회했다.// 그대가 걸어갔던 길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는데 툭 내 눈앞을 가로막는 것은/ 눈물이었다.// 한 줄기 눈물이었다.// 가슴은 차가운데 눈물은 왜이리 뜨거운가.// 찻잔은 식은 지 이미 오래였지만/ 내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 슬픔,/ 내 그리움은 이제부터 데워지리라.// 그대는 가고,/ 나는 갈 수 없는 그 길을/ 나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할까/ 안개가 피어올랐다.// 기어이 그대를 따라가고야 말/ 내 슬픈 영혼의 입자들이.//

간격 / 이정하
그대와 나 사이에/ 간격이 있습니다.// 엄청난 것도아니면서/ 늘 그것은 일정하게 뻗어 있어/ 나를 절망케 합니다.// 그러나 나는 믿습니다./ 서로 다른 샘에서 솟아나온 물도/ 끝내는 한 바다에서 만남을// 그대와 나/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지만/ 나중에는 한 몸입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입니다.//

간격 / 이정하
별과 별 사이는/ 얼마나 먼 것이랴// 그대와 나 사이,/ 붙잡을 수 없는 그 거리는/ 또 얼마나 아득한 것이랴//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할 수는 없다/ 그 간격 속에 빠져죽고 싶다​//

황혼의 나라 / 이정하
내 사랑은/ 탄식의 아름다움으로 수놓인/ 황혼의 나라였지// 내 사랑은/ 항상 그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가도가도 닿을 수 없는 서녘하늘/ 그 곳엔 당신 마음이 있었지// 내 영혼의 새를 띄워보내네/ 당신의 마음/ 한 자락이라도 물어오라고//

낮은 곳으로 / 이정하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것이다.// 잠겨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별 / 이정하
너에게 가지 못하고 나는 서성인다./ 내 목소리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이름이여/ 차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다만, 보고싶었다고만 말하는 그대여/ 그대는 정녕/ 한발짝도 내게/ 내려오지 않을건가요//

스스로 빛나는 별 / 이정하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 볼 때마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그 어느 하나 빛을 내지 않는 별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린 그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 나 하나의 존재라는 것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저 수많은 별들이 각기 제 나름의 이름을 가지고/ 제 나름의 모습으로 빛나고 있듯이,/ 우리 또한 제 나름의 이름으로 세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누가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별은 스스로가 빛납니다./ 누가 호명해주지 않아도 제 스스로 빛나는 별./ 그 별처럼 우리의 이름도,/ 우리의 삶도 스스로 반짝거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랑 / 이정하
마음과 마음 사이에/무지개 하나가 놓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 / 이정하
세상엔 수도 없이 많은 길이 있으나/ 늘 더듬거리며 가야하는 길이 있습니다.// 눈부시고 괴로워서 눈을 감고 가야 하는 길,/ 그 길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행로입니다.// 그 길을 우리는 그대와 함께 가길 원하나/ 어느 순간 눈을 떠보면 나 혼자 힘없이/ 걸어가는 때가 있습니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그대가 먼저/ 걸어가는 적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은/ 기쁨보다는 슬픔, 환희보다는 고통, 만족보다는/ 후회가 더 심한 형벌의 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햇빛 따사로운 아늑한 길이 저 너머 펼쳐져 있는데/ 어찌 우리가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이율배반 / 이정하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 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한 사람을 사랑했네 / 이정하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 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가/ 가장 큰 아픔으

로 저무는 사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기에 붙잡지도 못했고/ 붙잡지 못했기에 보낼 수도 없던 사람./ 이미 끝났다 생각하면서도/ 길을 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도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다 지웠다 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빛./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할/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 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사랑은 보내는 자의 것 / 이정하
미리 아파하지 마라./ 미리 아파한다고 해서/ 정작 그 순간이 덜 아픈 것은 아니다// 그대 떠난다고 해서/ 내내 베갯잇에 얼굴을 묻고만 있지 마라./ 퍼낼수록 더욱 고여드는 것이 아픔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현관문을 나서 가까운 교회라도 찾자./ 그대, 혹은 나를 위해 두 손 모으는 그 순간/ 사랑은 보내는 자의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리 아파하지 마라./ 그립다고 해서/ 멍하니 서 있지 마라.//

사랑이란 이름의 종이배 / 이정하
1/ 때때로 난/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 또한 알고 싶었다./ 당신은 당신의 아픔을 자꾸 감추지만/ 난 그 아픔마저 나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2/ 그러나 언제나 사랑은/ 내 하고 싶은 대로하게끔/ 가만히 놓아주지 않았다./ 이미 내 손을 벗어난 종이배처럼/ 그저 물결에 휩쓸릴 뿐이었다./ 내 원하는 곳으로 가주지 않는 사랑/ 잔잔하고 평탄한길이 있는데도/ 굳이 험하고 물살 센 곳으로 흐르는 종이배/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이배.//

사랑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 이정하
살다 보면/ 사랑하면서도 끝내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둘이 함께 도망을 가십시오./ 몸은 남겨 두고 마음만 함께./ 현실의 벽이 높더라도,/ 그것을 인식했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이지만 어찌합니까./ 현실을 외면한 사랑은 두 사람이 다치기 십상인데./ 나만 아플 테니 그대는 이 자리를 피하십시오./ 먼저 가 있으면 언젠가 나도 따라가겠습니다./ 혹시 못 가게 되더라도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고,/ 또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

흔들리며 사랑하며 / 이정하
이젠 목마른 젊음을/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하자./ 찾고 헤매고 또 헤매이고/ 언제나 빈손인 이 젊음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하자.// 누구나 보균하고 있는/ 사랑이란 병은 밤에 더욱 심하다./ 마땅한 치유법이 없는 그 병의 증세는/ 지독한 그리움이다.// 기쁨보다는 슬픔/ 환희보다는 고통, 만족보다는/ 후회가 더 심한 사랑, 그러나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찌 그대가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랴// 길이 있었다. 늘 혼자서/ 가야하는 길이었기에 쓸쓸했다./ 길이 있었다. 늘 흔들리며/ 가야하는 길이었기에 눈물겨웠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 / 이정하
당신은 아는가,/ 그를 위하여 기도할 각오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애당초 잘못된 시작이라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이 컴컴한 어둠 속에 내가 그냥 있겠다는 것은/ 내 너를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한쪽이 다른 쪽을/ 자신의 색깔로 물들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정녕 아는가,/ 그리하여 사랑은 자기 것을 온전히 줌으로써/ 비워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완성된다는 것을.//

부끄러운 사랑 / 이정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닐 듯싶은데/ 난 그때마다 심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고 해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나에게는 머언 나라의 종소리처럼 느껴집니다/ 한때는 나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야기할 수 없는// 당신들의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때/ 분식집 구석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그런 여자였지요./ 공무원도 해보고 사무실에도 있어 보았지만/ 그 돈으로는 동생들 학비조차 되지 않더라고/ 밤마다 흠뻑 술에 젖는/ 그런 여자 였지요.// 그녀를 만나고서부터/ 내겐 막니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막니가 생겨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그녀에게서 느꼈을 때/ 그녀는 이미 먼 길 떠난 뒤였지요.// 사랑이라는 말은/ 생각할수록 부끄럽습니다./ 숲속 길을 둘이 걷고/ 조용한 찻집 한 귀퉁이에 마주 앉아/ 귀 기울이며/ 이야기하는 것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믿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주어도/ 채울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아직 난 잘 모르고 있으므로/ 내게 아픈 막니를 두고 떠나간 그 여자처럼/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기댈 수 있게/ 한쪽 어깨를 비워 둘 뿐입니다.//

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이정하


그대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아도 좋다/
찬비에 젖어도 새잎은 돋고/
구름에 가려도 별은 뜨나니/
그대 굳이 손 내밀지 않아도 좋다/
말 한 번 건네지도 못하면서/
마른 낙엽처럼 잘도 타오른 나는/
혼자 뜨겁게 사랑하다/
나 스스로 사랑이 되면 그뿐/
그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문 / 이정하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 해도/ 그대여, 그대에게 닿을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대는 내내 안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아아 어찌합니까, 나는 이미 담을 넘어 버린 것을.//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 이정하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하렴.//

눈 오는 날 / 이정하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눈물겨운 너에게 / 이정하
나는 이제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하기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사랑하다 그 사랑이 다해 버리기보다/ 한꺼번에 그리워하다/ 그 그리움이 다해 버리기보다/ 조금만 사랑하고 조금씩만 그리워해/ 오래도록 그대를 내 안에 두고 싶습니다/ 아껴가며 읽는 책, 아껴가며 듣는 음악처럼/ 조금씩만 그대를 끄집어내기로 했습니다/ 내 유일한 희망이자 기쁨인 그대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없어지고 지워지지만/ 그대 이름만을 내 가슴속에/ 오래 오래 영원히 남아 있길/ 간절히 원하기에//

동행 / 이정하
돌이켜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혼자였다/ 기대도 싶은 때 그의 어깨는 비어 있지 않았다/ 잡아줄 손이 절실히 필요할 땐/ 그는 저만치서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산다는 것은 결국/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 을 확인하는 일이다/ 비틀거리고 더듬거리더라도 혼자서 걸어 가야하는 것이다/ 들어선 길 이상 멈출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없다/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내 삶에 절실한 것은 없다//

가을이 저무는 창가에서 / 이정하
그렇게 슬픈 목소리로 울지 마/ 내 시월의 창들아/ 그 슬픈 눈으로/ 곱게 물든 은행잎을 바라보지 마/ 너의 흔들리는 그 눈빛으로/ 세상의 모든 빛을 끌 수 있다면/ 네 투명한 마음속에/ 세상의 모든 풍경을 담을 수 있다면/ 나는 너에게 악수를 건네리// 슬퍼하지마/ 내 시월의 창들아/ 이렇게 넓은 세상 속에서/ 또 낙엽은 지고/ 연인들은 쓸쓸히 헤어지고/ 저만치서/ 이별과 절망의 발자국을 뚜벅뚜벅 울리며/ 겨울은 걸어오고 있는데.../ 이제 우리, 두꺼운 외투를 하나씩 준비하자/ 그대와 나의 오랜 이별을 위하여//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 이정하
눈을 뜨면 문득 한숨이 나오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 불도 켜지 않는 구석진 방에는/ 혼자 상심을 삭이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정작 그런 날 함께 있고 싶은 그대였지만/ 그대를 지우다 지우다 끝내 고개 떨구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지금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사랑한다/ 사랑한다며 내 한 몸 산산이 부서지는/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할 일은 산같이 쌓여 있는데도/ 하루종일 그대 생각에 잠겨/ 단 한 발짝도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대 긴 그림자 / 이정하
잊을게요/ 그대가 말했지만/ 그게 아닌 눈빛을/ 내 어찌 모르겠습니까/ 애써 기다려/ 우리 가슴이 식을 수 있다면/ 애초에 그댈/ 만나지도 않았었겠지요// 사랑했어요/ 그대가 말했지만/ 아무 대답 못 하고/ 난 떠나야 했습니다/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처럼/ 서로 다가 갈 수가 없는 것인지/ 깊어질수록/ 왜 가혹한 형벌이어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습니다// 애달프다/ 내 가는 길/ 묵묵히 돌아서는 내 뒷모습은/ 그대에게 어떤 상처로 남을까/ 그대를 떠나오면서/ 난 보았습니다/ 내가 떠난 빈자리/ 바로 그 자리에서 쓸쓸히/ 무너지는 그대 긴 그림자를!//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 이정하
햇살이 맑아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비가 내려 또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전철을 타고 사람들 속에 섞여 보았습니다만/ 어김없이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았습니다만/ 그런 때일수록 그대가 더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숱한 날들이 지났습니다만/ 그대를 잊을 수 있다 생각한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더 많은 날들이 지나간대도/ 그대를 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날 또한 없을 겁니다./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지만/ 숱하고 숱한 날 속에서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어김없이 떠오르던 그대였기에/ 감히 내 평생/ 그대를 잊지 못하리라 추측해 봅니다./ 당신이 내게 남겨 준 모든 것들,/ 그대가 내쉬던 작은 숨소리 하나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뜻이 아닐는지요./ 언젠가 언뜻 지나는 길에라도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스치는 바람 편에라도 그대를 마주할 수 있다면/ 당신께,/ 내 그리움들을 모조리 쏟아 부어 놓고, 펑펑 울음이라도.../ 그리하여 담담히 뒤돌아서기 위해서입니다./ 아시나요, 지금 내 앞에 없는 당신이여./ 당신이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 남김없이/ 돌려주어야 나는 비로소 홀가분하게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아침엔 장미꽃이 유난히 붉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또 생각났습니다.//

그를 만났습니다 / 이정하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반갑게 차 한 잔 할 수 있는/ 그를 만났습니다.// 방금 만나고 돌아오더라도/ 며칠을 못 본 것 같이 허전한/ 그를 만났습니다.// 내가 아프고 괴로울 때면/ 가만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그를 만났습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그를 만났습니다.// 어디 먼 곳에 가더라도/ 한 통의 엽서를 보내고 싶어지는/ 그를 만났습니다.//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그를 만났습니다.//

바람 속을 걷는 법 / 이정하
1.// 바람이 불었다/ 나는 비틀거렸고/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
2.//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 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 지//
3.// 이른 아침, 냇가에 나가/ 흔들리는 풀꽃들을 보라./ 왜 흔들리는 지,/ 허구 많은 꽃들 중에/ 하필이면 왜/ 풀꽃으로 피어났는지/ 누구도 묻지 않고/ 다들 제자리에 서 있다./ 이름조차 없지만/ 꽃 필 때면 흐드러지게 핀다/ 눈길 한 번 안 주기에/ 내 멋대로,/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 당당하게 핀다.//
4.//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함께 걷던 것을 혼자 걷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잊었다 생각 하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 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 오는/ 그 대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 가두고 풀어 주는/ 내 마음 감옥을 아시는지요./ 잠시 스쳐 간 그 대로 인해/ 나는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 지/ 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그 것이/ 다시는 풀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 밤 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 그 것들을/ 차례차례 재현 해 봅니다./ 그렇듯 삶이란 것은/ 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란 것은/ 하나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 떠 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아/ 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 올리다/ 쓸쓸히 돌아 서는 발자국 같은 것// 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 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
5.// 어디 내 생에/ 바람이 불지 않은 적 있었더냐/ 날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 왔고/ 그 때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바람이 잠잠해 지길 기다리곤 했다.// 기다리는 그 순간 때문에/ 내 삶은 더뎌 졌고/ 그 더딤을 만회하기 위해/ 나는 늘 허덕거렸다.// 이제야 알겠다,/ 바람이 분다고/ 기다리고 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다리는 이에게/ 바람은 더 드세게/ 몰아닥칠 뿐이라는 것을// 바람이 분다는 것은/ 헤쳐 나가라는 뜻이다/ 누가 나가 떨어지든 간에/ 한 판 붙어 보라는 뜻이다.// 살다 보니/ 바람 아닌 게 없더라/ 내 걸어 온/ 모든 길이 바람 길 이더라.//

가까운 거리 / 이정하
그녀의 머리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라도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댄 이런 나를 타이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함께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여전히 난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왜 우린 멀리 떨어져서 서로를 그리워해야 하는지./ 왜 서로보다 하고 있는 일이 먼저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나중을 위해 지금은 참자는 말,/ 그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도 나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가늠할 수 없는 거리 / 이정하
가까운 것 같아도/ 사실, 별과 별 사이는/ 얼마나 먼 것이겠습니까.// 그대와 나 사이,/ 붙잡을 수 없는 그 거리는/ 또 얼마나 아득한 것이겠습니까.// 가늠할 수 없는 그 거리,// 그대는 내게 가장 큰 희망이지만/ 오늘은 아픔이기도 합니다.// 나는 왜 그리운 것,/ 갖고픈 것을 멀리 두어야만 하는지…//

길의 노래 / 이정하
너에게 달려가는 것보다/ 때로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것도/ 너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것보다/ 묵묵히 너의 뒷모습이 되어 주는 것도/ 너를 향한 더 큰 사랑인줄을 알겠다.// 너로 인해 너를 알게 됨으로/ 내 가슴에 슬픔이 고이지 않는 날이 없었지만/ 네가 있어 오늘 하루도 넉넉하였음을.// 네 생각마저 접으면/ 어김없이 서쪽하늘을 붉게 수놓은 저녁해./ 자신은 지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주는// 그 숭고한 헌신을 보며,/ 내 사랑 또한 고운 빛깔로 마알갛게 번지는/ 저녁 해가 되고 싶었다.// 마지막 가는 너의 뒷모습까지/ 감싸줄 수 있는 서쪽 하늘,/ 그 배경이 되고 싶었다.//

돌아가는 길 / 이정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대에게 가는 길이 아니라/ 그대를 돌아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갈수록 그대와 멀어지는 길./ 차마 발걸음 떨어지지 않는 그 길을/ 나는 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왜/ 그대에게 가는 길을 모르겠습니까./ 마음으로는 수천 번도 더 갔던 길이라/ 눈을 감고도 훤히 알 수 있었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만치 멀리 서 있는 당신/ 당신은 아시는지요?/ 그대에게 가지 못해 슬픈 게 아니라/ 그대에게 갈 수 없어 슬펐다는 것을.//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빈 몸뚱어리로/ 그저 발만 내딛고 있었습니다.//

저녁 길을 걸으며 / 이정하
해질 무렵,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나섰습니다. 그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아니, 또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없기도 합니다./ 아픈 우리 사랑도 길가의 코스모스처럼/ 한 송이의 꽃을 피워 올릴 수만 있다면/ 내 온 힘을 다 바쳐 곱게 가꿔 나가겠지만/ 그것이 또 내 가장 절실한 소망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렇듯 무작정 거리에 나서/ 그대에게 이르는 수천 수만 갈래의 길을/ 더듬어 보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여름, 무던히 내리쬐던 햇볕도 마다 않고/ 온 몸으로 받아 내던 잎새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 꽃잎들도 언젠가 떨어지겠지만, 언젠가/ 떨어지고 말리라는 것을 제 자신이 먼저 알고 있겠지만,/ 그때까지 아낌없이 제 한 몸을/ 불태우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생각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떨어진 꽃잎 거름이 되어 내년에 더더욱 활짝/ 필 것까지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작은 틈새가 두려웠다 / 이정하
나는 작은 틈새가 두려웠다.// 나는 불안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어떤 날은/ 꿈 속에서도 불안했다.// 며칠 못 보아도 불안했고/ 자주 만나도 불안했고/ 함께 있어도/ 마음이 안 놓였던 것은/ 그대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가면 갈수록 벌어지는/ '현실'이란 틈새./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그 작은 틈새가 나는 두렵다.//

내가 할 수 없는 한 가지 / 이정하
세상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만을 꼽으라면/ 그건 바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대는 나보고 사랑하지 말라 하시지만/ 그럴수록/ 나는 그대에게 더 목매단다는 것을// 물은 물고기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갈 수 있지만/ 물고기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음을// 당신 대수롭지 않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그 차이가/ 내 슬픔의 시작인 것을// 그러니 그대는 그저 모른척 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 발붙이고 있는 한/ 나는 당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일이 내겐 곧/ 숨쉬며 살아가는 일이기에//

 

비 / 이정하


그대 소나기 같은 사람이여,/
슬쩍 지나쳐놓고 다른 데 가 있으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몸은 흠뻑 젖었는데//

그대 가랑비 같은 사람이여,/
오지 않는 듯 다가와 모른 척하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마음까지 젖어 있는데//


밤새 내린 비 / 이정하
간밤에 비가 내렸다 봅니다./ 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 보니// 그대여, 멀리서 으르렁대는 구름이 되지 말고/ 가까이서 나를 적시는 비가 되십시오.​//

비 오는 날의 일기 / 이정하
그대가 날 부르지 않았나요/ 하루종일 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어린 날 내 마음은/ 어느 후미진 찻집의 의자를 닮지요./ 비로소 그대를 떠나/ 나를 사랑할 수 있지요.// 안녕 그대여,/ 난 지금 그대에게/ 이별을 고하려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지요./ 당신을 만난 그 날 비가 내렸고,/ 당신과 헤어진 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으니// 안녕, 그대여./ 비만 오면,/ 소나기라도 뿌리는 이런 밤이면/ 그 축축한 냄새로/ 내 기억은 한없이 흐려집니다./ 그럴수록 난 당신이 그리웁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안녕 그대여,/ 그대가 날 부르지 않았나요./ 비가 오면 왠지/ 그대가 꼭 나를 불러줄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가슴앓이 / 이정하
나로 인하여/ 그대가 아프다면/ 서슴없이 그대를 떠나겠습니다.// 사랑이 서로에게/ 아픔만 주는 것이라면/ 언제라도 사랑으로 떠나겠습니다.// 우리 사랑은/ 어쩌면 당신 방에 있는/ 창문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은 문이로되/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아니라/ 하염없이 바라만 보아야 하는/ 창문 같은 것,// 그대여,/ 이제 그만 커튼을 내리세요./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는 나를/ 너무 야속하다 생각지 마세요.// 떠남이 있어야/ 돌아옴도 있는 것/ 난 단지 그때를 위해/ 준비하는 것뿐이랍니다.//

슬픔의 무게 / 이정하
구름이 많이 모여 있어/ 그것을 견딜만한 힘이 없을 때/ 비가 내린다.// 슬픔이 많이 모여 있어/ 그것을 견딜만한 힘이 없을 때/ 눈물이 흐른다.// 밤새워 울어본 사람은 알리라./ 세상의 어떤 슬픔이든 간에/ 슬픔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눈물로 덜어내지 않으면/ 제 몸 하나도 추스릴 수 없다는 것을.//

어디에도 없는 그대 / 이정하
그대라는 두 글자엔/ 눈물이 묻어 있습니다// 그대라고 부르기만 해도/ 금새 내 눈이 젖어오는 건/ 아마도 우리 사랑이/ 기쁨이 아닌 슬픔인 탓이겠지요// 지금 내 곁에 없어/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리운 그대여// 이렇게 깊은 밤이면/ 더욱더 보고 싶어지는 그대여// 그대는 아십니까/ 당신을 만난 이후부터/ 나는 내내 당신에게/ 흘러가고 있는 강이 되었다는 것을/ 쉬임 없이 당신을 향해서 흐르고 있는/ 사랑의 강이 되었다는 것을// 그 강의 끝간 데에 아마 노을은 지리라/ 새가 날고 바람은 불리라// 오늘밤쯤/ 그대의 강가에 닿을 수 있을는지/ 막상 달려가 보면 망망대해인 그대/ 어디에도 없는 그대//

이별 노래 / 이정하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 이정하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샆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아파하렴.//

기다림의 나무 / 이정하
내가 한 그루 나무였을 때/ 나를 흔들고 지나가는 그대는 바람이었네.// 세월은 덧없이 흘러/ 그대 얼굴이 잊히어 갈 때쯤/ 그대 떠나간 자리에 나/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그대를 기다리리.// 눈이 내리면 늘 빈약한 가슴으로 다가오는 그대./ 잊혀진 추억들이 눈발 속에 흩날려도/ 아직은 황량한 그곳에 홀로 서서/ 잠 못 들던 숱한 밤의 노래를 부르리라.//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 서글펐던 지난날의 노래를 부르리라.// 내가 한 그루 나무였을 때/ 나를 흔들고 지나갔던 그대는 바람이었네.//

기다린다는 것 / 이정하
귀향하는 열차를 기다립니다./ 그래,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은 또한/ 곁에 있건 없건 그 대상에게서/ 눈을 떼지 않겠다는 뜻./ 일의 결과를 기다리고,/ 해가 뜨고 지길 기다리고,/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다/ 끝내는 죽음마저 기다리는,/ 그리하여 기다리는 그 순간이 모여/ 우리 삶이 되질 않았던가./ 그 중에서도 내 가장 소중한 기다림, 그대여./ 내 인생의 역에 기차가 거짓말처럼 들어와 서고,/ 그대가 손을 흔들며 플랫폼으로 내려설/ 그 눈부신 시간을 기다리네./ 기다리고 또 기다리네./ 그대여, 어서 오기를./ 그래서 먼 여행 끝의 피곤함을/ 모두 내게 누여라.//

그립다는 것은 / 이정하
그립다는 것은/ 아직도 네가/ 내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지금은 너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볼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내 안 어느 곳에/ 네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너를/ 샅샅이 찾아내겠다는 뜻이다./ 그립다는 것은 그래서/ 가슴을 후벼파는 일이다./ 가슴을 도려내는 일이다//

어디까지가 그리움인지 / 이정하
걷는다는 것이 우리의 사랑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마는/ 그대가 그리우면 난 집밖을 나섭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난 그대 생각을 안고 새벽길을 걷습니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이별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지금은 따뜻함이/ 절실할 때입니다.// 새벽길을 걷다보면 사랑한다는 말조차/ 아무런 쓸모 없습니다.// 더도 말고 적게도 말고 그저 걷는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립습니다//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 이정하
슬픈 사랑아/ 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 내 가진 것은 빈손뿐/ 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소유가 된다 하더라도/ 결코 그대 하나 가진 것만 못한데/ 슬픈 사랑아/ 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 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네/ 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해지는/ 이 그리움밖에는//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정하
창가사이로 촉촉한 얼굴을 내비치는 햇살같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려주며 이마에 입맞춤하는/ 이른 아침같은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모카 향기 가득한 커피 잔에/ 살포시 녹아 가는 설탕같이 부드러운 미소로 하루시작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분히 흩어지는 벗꽃들 사이로/ 내 귓가를 간지럽히며 스쳐가는 봄바람같이/ 마음 가득 설레이는 자취로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메마른 포도밭에 떨어지는 봄비 같은 간절함으로/ 내 기도 속에 떨구어지는 눈물 속에 숨겨진 사랑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 삶 속에서 영원히 사랑으로 남을../ 어제와 오늘.. 아니 내가 알 수 없는 내일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르면 눈물날 것 같은 그대 / 이정하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부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대의 이름이 있습니다// 별이 구름에 가렸다고 해서/ 반짝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대가 내곁에 없다고해서/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랑엔/ 늘 맑은 날만 있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구름이 끼여 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만약 구름이 없다면/ 어디서 축복의 비가 내리겠습니까/ 어디서 내 마음과 그대의 마음을/ 이어주는 무지개가 뜨겠습니까//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꽃이 피기까지 / 이정하
사랑은 그냥 오지 않는다/ 반드시 장애물을 가지고 온다/ 행복도 그냥 오지 않는다/ 반드시 훼방꾼들을 거느리고 온다// 꽃이 그냥 피는 줄 아는가/ 한 잎 꽃송이를 피워 내기 위해선/ 온 몸으로 뜨거운 볕을 받아 낸/ 저 잎새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음을/ 꽃샘추위를 무사히 겪어 내고서야/ 따스한 봄볕 또한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은 그냥 오지 않는다/ 행복도 그냥 오지 않는다/ 저 무수한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저 무수한 훼방꾼을 몰아내어야/ 비로소 우리 손에 거머 쥘 수 있는 것//

꽃 잎 / 이정하
그대를 영원히 간직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어쩌면 그대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쓸데없는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마저 버려야/ 비로소 그대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은 그대를 내게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어 버리는 것임을..// 오늘 아침 맑게 피어나는 채송화 꽃잎을 보고/ 나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꽃잎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햇살을 받치고 떠 있는 자줏빛 모양새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씨앞을 잉태하는,// 그리하여 씨앗이 영글면 훌훌 자신을 털어 버리는/ 그 헌신 때문이 아닐까요?//

창문과 달빛 / 이정하
그대는/ 높은 담장 안/ 창문입니다.// 거대한 벽 앞에/ 발 부르트던/ 나는// 부르지 않아도/ 그대 곁에 다가가는/ 달빛입니다.//

삶의 향기 / 이정하
당신의 삶이 단조롭고 건조한 이유는/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될 때가 있습니다.// 또는 아주 가슴아픈 일로 인해/ 가슴이 시려오는 때도 있으며,/ 주변의 따뜻한 인정으로 인해 가슴이 훈훈해지는/ 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기쁘고, 살아 있기 때문에/ 절망스럽기도 하며,/ 살아 있기 때문에/ 햇살이 비치는 나뭇잎의 섬세한 잎맥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삶이 단조롭고 건조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내가 살아 있음을 느껴 보십시오.// 그래서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는 얼마나 살 만한 것인지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 이정하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것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 / 이정하
그대 진정 나를 사랑했었거든/ 사랑했다 말하지 말고/ 떠날 일입니다./ 떠난 다음에는 고개를 돌리지 말고/ 쓸쓸히 걷는 모습 또한/ 보여 주지도 말 일입니다/ 서로 가는 길이 틀릴지라도/ 이 땅 위에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나는/ 그대에게 상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대의 삶에 힘겨운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대 진정 나를 떠났거든/ 내가 있었다는 기억마저/ 잊어 버릴 일입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우리,/ 인연이 끊기지 않아 어쩌다 길 모퉁이에서/ 마주치면 세상의 수 많은 사람중의 한 삶이/ 거니 가볍게 생각할 일입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서로의 앞날을/ 기꺼이 축복할 수 있는/ 우리 두 사람이 될 일입니다./ 이별했다고 해서 서로의 가슴에 아픈/ 상처로 남아 있지 말일입니다//

끝끝내 / 이정하
헤어지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 디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차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그대 처음과 같이 아름다울 줄을/ 그대 처음과 같이 영원할 줄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순결하게 무덤 에 무더기로 핀/ 흰 싸리 꽃만 꺾어 바쳤습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눈물도 지나치면 눈물이 아닌 것을/ 헤어지는 날까지 알지 못하고//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끝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무소유 / 이정하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소유하려고는 하지 마라/ 그 소유하려고 하는 마음에 고통이 생기나니//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을 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 못해 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상처만 생긴다는 것을 알았네/ 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 멀지도 않고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 않을 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 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어도 그들은 서로 행복했네// 사랑은 그처럼 적당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가지려고, 소유하려고 하는 데서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나무들을 보라/ 그들도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지 않은가/ 함께 서 있으나 너무 가깝게 서 있지 않는 것./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그늘을 입히지 않는 것/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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