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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머니의 호밋자루 / 임병식

부흐고비 2021. 12. 12. 08:50

차 트렁크를 정리하다가 그 속에서 호밋자루를 발견했다. 살아생전 모친께서 노상 들고 쓰시던 것이다. 이것은 내가 취미생활로 몇 차례 수석을 채취하다가 놓아둔 것 같다. 마지막 탐석을 나선 지 얼마나 됐을까. 한 10여 년은 넘을 것이다. 이것의 발견은 차 전면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다 말고 문득 트렁크 안도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열어보다가 찾아낸 것이다.

그 트렁크 안에는 이 호미 말고도 부모님 산소를 다닐 때 쓰기 위해 마련해둔 낫과 우산도 함께 있었다. 함께 나온 잡다한 것을 합치니 정리할 것이 한 뭉치나 된다. 한데 그중에서도 유독 나의 눈길을 붙잡은 것은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호밋자루였다.

그 이유는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바로 이 호밋자루를 가지고 당신은 살아생전 텃밭을 일구셨던 것이다. 당신은 집안일을 하는 이외에 집 앞 텃밭에서 호미를 끼고 사셨다. 그것이 나의 눈에 익어 있는 데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더구나 그것은 내가 직접 고향 집에 들러서 일부러 가져왔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이나 한참 컸을 적에도 보면 어머니는 허구한 날 호밋자루를 가지고 밭고랑의 김을 매거나 흙을 파 올려 채소의 북을 돋으셨다. 그런 세월의 연속이었다. 그런 만큼 호미날도 많이 낡았다. 거기다 자루는 땀에 전 흔적으로 거무튀튀하기까지 하다.

그런 호밋자루의 내력을 더듬으며 나는 새삼 생긴 모양을 유심히 살펴본다. 보아하니 생김새가 참 재미있다. 비교적 단순한 형태이면서도 과학적 지혜가 돋보인다. 우선 날을 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모양이다. 쟁기의 모습을 닮았다. 골을 낼 때 파낸 흙이 중심부의 자루에 부딪치지 않도록 살짝 비켜서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 그 모양이 여간 절묘하지 않다.

나는 구조를 살피면서 이것은 '동양적인 사고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레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돈을 셀 때도 보면 동양인은 안쪽으로 접어서 넘기는 데 비해 서양인은 어색하게 한사코 밖으로 젖혀서 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구조가 아닌가.

내가 이것을 고향 집에서 가져올 때는 이미 집이 폐가로 방치된 때였다. 어느 날 둘러보려 허청을 들렀더니 벽에 쟁기와 함께 쇠스랑, 괭이, 낫 그리고 호미 서너 자루가 걸려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을 하나 골랐다. 취미활동을 하는 수석을 캐는 데 쓰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유품을 하나를 간직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중에서 가장 작고 많이 닳은 것을 고른 것은 그만큼 어머니의 체취가 많이 묻어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이것을 찾아내어 눈에 잘 띄는 베란다 화분대에 걸쳐놓고 있다. 그런지라 거실에 앉아 이것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 모습이 많이 어려 온다. 떠오르는 모습은 사계四季 속에서 늘 텃밭에 나가 이 호밋자루를 손에 들고 허리 굽혀서 일하시던 모습이다.

어머니가 가꾸시던 텃밭은 늘 풍성했다. 봄에는 밭 가장자리에다 가꾼 솔이 푸르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그 옆에는 열무와 대파 올콩이 싹을 틔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토란과 함께 상추와 쑥갓이 무성하게 자랐다. 가을에는 이것을 거두는 시기다. 김장용 고추와 마늘을 갈무리하고, 배추와 무를 뽑아 나르느라 허리 펼 새가 없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늘 한결같으셨다. 하나 생각하면 꼭 한 마음이었을까. 살아생전 아버지는 병석에 누운 때가 많았고, 누나가 앞서 죽은 참척을 보았는데 근심이 어찌 없었을까.

그런데 크면서 나는 그것은 생각도 못 하고 당신이 거둬들인 채소로 배를 채우는 데만 신경 썼지 어머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밥맛이 없으면 마련해둔 깨소금을 쳐서 먹고 더러는 갓 뜯어온 솔이나 쑥갓을 넣고 참기름에 비벼서 먹으면서 나만 생각했다. 생각하면 참 철딱서니 없이 자랐다.

어머니는 일과를 텃밭에서 시작했다. 여명이 터 앞이 보일 정도만 되면 호밋자루를 들고 텃밭으로 나와 김을 매고 흙을 북돋아 작물을 가꾸셨다.

그런 어머니 옆에는 노상 오줌동이가 놓여있었다. 아침마다 들고 나가 그것으로 거름을 했다. 다만 솔을 가꿀 때만은 부엌에서 따로 재를 가져와 뿌렸다.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별다른 거름을 하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그렇게 일만 하신 어머니는 손이 곱지 못했다. 손바닥은 딱딱하기 굳은살이 박이고 손가락은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생각하면 어느 세월에 손을 가꿀 시간이 있었을까.

그런 손의 아픔을 나는 어머니 임종 시에 뼈저리게 느꼈다. 염을 마친 장의사가 마지막으로 고별인사를 하라는 말에 손을 잡아드렸더니 얼음장처럼 찬 손은 거칠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이토록 자식들을 건사하셨는가요. 어머니!"
말을 뇌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호주머니를 뒤져 지갑에서 돈이 잡히는 대로 꺼내어 어머니, 손에 쥐여드렸다. 그러고서 가족 중 가장 늦게까지 손을 놓지 못했다. 그것은 최근까지 고단하게 일을 시켜드렸다는 죄책감이 밀려들어서였다.

그래서인지 ‘모친의 호미’는 바라보는 눈에 유정하다. 내가 다른 것은 고장에 세워진 생활사박물관에 모두 기증하면서도 이것만은 가지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앞으로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서 바라볼 참이다.

살아생전 불효도 사죄하고 추모의 마음을 가다듬고 싶어서다. 사람은 미욱하게 부모가 세상 뜬 후에야 뒤늦게 후회를 한다더니 내가 마치 그런 경우여서 호미를 볼 때마다 사무치는 불효의 마음만 회한으로 다가온다.



임병식 수필가

         《한국수필》 등단(1989). 한국수필작가회장 역임, 현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수필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수상.

           수필집 『꽃씨의 꿈』 외 10권, 선집 『왕거미집을 보면서』.

           수필작법서 『수필 쓰기 핵심』.

           현재 중학교 국어 2-1에 수필 『문을 밀까 두드릴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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