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불 때기 장인匠人 / 김선화

부흐고비 2021. 12. 12. 08:53

아궁이에 불을 때는 데에도 솜씨가 따른다. 손을 잘 다뤄야 불길이 살고 연기가 거꾸로 기어 나오지 않는다. 언뜻 생각하기엔 땔감에 불만 그어대면 해결될 것 같지만, 나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해마다 초겨울이면 메주를 쑨다. 직접 농사지은 콩부터 이웃 노인들의 농산물을 거둬들여 두 가마니의 콩을 익힌다. 화덕 두 개에 가마솥을 걸고 한꺼번에 양쪽 아궁이에 불을 댕긴다. 산 아랫집이니 언제 불길이 날아오를지 몰라 커다란 대야부터 물을 가득 채워놓고, 아예 수도꼭지에 호스를 늘인 채로 일을 시작한다. 뒷산의 참나무 가랑잎들은 바람이 한 차례씩 몰아칠 때마다 안채 지붕을 넘어 마당까지 와 뒹군다. 마당엔 몽돌이 깔려있어 비질도 수월치 않다. 어느 해는 겨울을 넘기고 입춘 무렵에야 일꾼의 손을 빌어 해결하기도 했다. 수북한 뒤꼍부터 장독대와 앞마당 처마 밑을 에돌던 것들까지 내면 낙엽과의 사투가 끝난다. 산이 가깝다는 정서적 이로움이, 한참 화덕에 불을 지펴야 하는 계절에는 경계의 날을 세워야 하는 기간이 된다.

가족들이 사는 본거지를 경기도에 두고, 서너 시간을 들여 충청도 촌락까지 왕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집을 나서서 수원터미널까지 한 시간 잡고, 바로 고속버스에 연계되면 공주터미널까지 한 시 간 반, 그리고 거기부터는 시간절약을 위해 택시로 이동한다. 시골집 도착까지 빨라야 세 시간이고, 간발 차로 버스 한 대를 놓치면 네 시 간이 소요된다. 대부분 당일치기이거나 하룻밤을 묵는 편인데, 메주 쑤는 철이면 한 번 가서 이삼 일씩 몇 차례 혼자 묵는다.

처음엔 직접 농사지은 소량의 콩으로 메주 쑤기를 시작했다. 허나 해를 거듭하며 단골이 생겨, 이웃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콩을 예약해 두곤 한다. 이미 마루에는 콩 자루가 쌓이고..., 잡티 고르는 일부터 손을 댄다. 땔감 나르기와 가마솥 길들이기도 내 몫이다. 신기한 것은 그런 순차적인 일들이 겁나지 않다는 거다. 전통 장을 담근 지가 시집오고부터이니 어언 서른여섯 해나 되었고, 나만의 장독대를 마련하고 항아리를 사 나른 지는 공주의 친정집을 소유하고부터이니 여덟 해째이다.

양쪽 솥에 콩을 고르게 일어 넣고, 큰 주걱이며 부수적인 살림살이를 옆에 챙긴 다음 불 땔 준비를 한다. 땔감은 주로 집을 수리할 때 헐어 쌓아놓은 헛간채의 부속물이다. 먼저 자잘한 나뭇가지로 바람 구멍을 만들며 자리를 잡고, 굵기의 순서를 지켜 어슷하게 나무더미를 만든다. 한 번 시작하면 장장 여덟 시간을 꺼트리지 말아야 하므로 이전 외양간 기둥으로 쓰였던 통나무들도 끌어다가 아궁이 옆쪽으로 비치해둔다. 그러다가 불기운이 성하면 서서히 틈을 보아 밀어 넣을 참이다. 불은 라이터보다 성냥으로 탁 그어야 맛이다. 주로 불을 때서 끼니를 해결하던 그 시대의 운치 그대로 사각이나 육각 성냥 통을 사용한다. 아궁이에 바람을 불어넣는 풍구 따위는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

쏘시개에 불이 당겨지면 불꽃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창 불발을 받아 너울거리다가도 잠깐 사이 연기가 거꾸로 나오기 일쑤다. 매캐한 내가 통로로 나가질 못하고 안으로 스미어 역으로 쏠린다는 것은 불을 잘못 때고 있다는 증거다. 부지깽이는 바로 이럴 때 힘을 발한다. 바닥에 고이는 재를 쑤석거려 틈을 내기도 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벌리거나 다시 괴어 새 바람이 통하게 한다. 그러면 꾸물거리던 불이 화륵 화르륵 살아나 솥을 달군다. 이쪽이 약하면 저쪽의 불을, 저쪽이 약하면 이쪽의 불을 번갈아 옮겨가며 변덕스런 불길을 어르다 보면 구수한 콩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그때부터는 불이 세면 악이다. 순식간에 솥 밑이 눌어붙어 메주를 버리게 된다. 이젠 가스불로 치면 약불이다. 그렇다 하여 만만히 보는 것은 금물이다. 서둘러 불 붙은 나무토막을 끌어내어 물에 적시고 절반 정도의 화력만 유지한다. 이때는 세게 땔 때보다 더욱 조심스럽다. 불꽃이 약한 듯하다가도 엉겨 붙고, 타는 듯하다가도 잦아들기 십상인 까닭이다.

아궁이를 오래도록 들여다보자니 그 안에 사람살이의 철학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화력 완급이 꼭 사람 살아가는 모양새와 흡사하다. 질식할 것처럼 연기로 자욱하질 않나, 가만히 지켜만 보아도 활활 타오르질 않나, 살살 달래고 얼러야 겨우겨우 생의 불꽃을 이어 가질 않나 말이다. 센 불은 다독이고 약한 불은 들썩거려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불 때기의 기술인 것처럼, 삶의 지혜를 모아 돋우는 부추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로 나는 불 때기 장인匠人이다.

처음부터 불을 잘 땐 것은 아니다. 열한 살 때부터 들에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 밥을 지었는데,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칭찬받는 맛에 그리되었다. 그러면서 고도의 불 지피는 방법을 아버지로부터 익혔다. 삼복더위엔 구들을 데울 수가 없어 따로 마련한 화덕이나 삼발이에 솥을 걸고 음식을 익혔다. 그날은 마당복판에 삼발이를 세우고 불을 지폈는데, 바람이 소용돌이쳐서 좀체 불길이 살아나질 않았다. 남동생들은 이리저리 날뛰며 개구지게 굴고, 나는 흙바닥에 입을 대다시피 하며 후후 바람을 뿜었다. 그래도 아랑곳 않고 연기만이 마당을 덮쳤다. 견디다 못한 내가 눈물범벅이 되어 마구 짜증을 쏟아낼 즈음 사립문 안으로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이내 동태를 알아차린 아버지는 내가 밀어 넣은 나뭇가지들을 가뿐이 모아잡고 숨구멍을 만들어 불을 살려냈다. 아버지에겐 참 쉬워보였지만, 내심 부끄러웠다.

“불 하나 못 달래 그리 신경질을 부려서야 앞으로 사회에 나가 무슨 큰일을 해내려고 그러느냐?"

따끔한 일침이었다. 계룡산 자락의 열한 살짜리에게 사회라 하는 곳은 차령산맥 너머 저편이라 들렸다. 언젠가는 나아가 크고 너른 세계에서 사람들과 조화를 이뤄야 할 터인데, 그때까지 이 신경질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지 않은가.

그 후로 나는 아버지 말씀을 되살리며 고비마다 참고 견디는데 이 골 난 사람이 되었다. 더욱이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면, 그날의 삽화가 두런두런 말을 걸며 잔잔히 춤을 춘다. 지금도 굴곡진 생을 다스리는 것이 공부 중의 공부다.



김선화 수필가

《원간문학》 수필(1999), 《월간문학》 청소년소설(2006) 등단.

《한국수필》 편집국장.

한국문협작가상, 한국수필문학상, 전국 성호문학상 수상.

수필집 『우회의 미』 외 8권, 시집 『빗장』 외 3권,

청소년 소설 및 동화 『솔수펑이 사람들』 외 2권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