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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 넷, 산벚꽃이 아름다운 봄날에 직소폭포와 처음 만났다.
전깃불 대신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전설 따라 삼천리에도 자신을 몰입시키던 순박한 소녀였을 때였다. 그 폭포를 보며 상상한 것은, 전설 속의 인물, 한 많은 여자와 그 용소에서 죽은 남자들이었으며,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열 두 타래의 실을 풀어 그 깊이를 알아보고 싶어했다. 그 때의 내게 폭포는 전설을 품은 자연의 일부였다.
내 나이 스물 셋, 녹색 이파리들의 광합성이 한창일 때, 직소폭포와 두 번째 만났다. 그 때 내 옆에는 신록같이 푸르른 한 남자가 있었다. 자연과 사람과 그들이 꾸는 꿈까지 초록빛이었을 때의 직소폭포는 자신만만하게 내달리는 일직선의 물줄기였다. 한 인간에게 향하는 감정이 직선적이던 시절, 내 삶도 직소폭포처럼 힘차게 흘러갈 것으로 믿었다. 누군들 굴곡진 생을 원할까마는 그 굽이가 나를 휘돌아갈 것이라는 상상은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내 나이 서른 둘, 여름이 가는 길목에서 직소폭포와 세 번째 만났다. 뜬구름 잡기로 작정한 것도 아니건만 자신을 믿으라는 남자를 따라 서울행 고속버스를 탄 지 1년만의 일이었다. 웃음소리 잔잔하게 배어나던 작은 둥지마저 물보라처럼 날려버려 춥고 서러운 모습이었어도, 줄기차게 흘러내리는 폭포를 흉내내보자는 용기는 남아있을 때였다. 그때에도 나는 현상적인 것들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지 못했다.
내 나이 마흔 셋, 선홍빛 단풍으로 산하가 아름답게 채색될 때, 직소폭포와 네 번째 만났다. 이제는 슬픈 여인의 전설을 믿는 순수도 퇴색되고, 폭포가 주는 거침없는 내달림도 없을 뿐더러, 세상사에 주눅이 들면 툭툭 털고 일어날 용기도 퇴색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슬프지 않는 건 왜일까. 수 천년 동안 반듯하고 장엄하게 흘러내리는 폭포의 원류보다는 굽이진 작은 길을 흘러가는 지류의 아름다움을 보아서일까. 굽고 숨겨진 줄기를 따라 조용하고 여유롭게 흐르는 작은 물줄기에 더 많은 눈길을 주면서 하는 생각, 고인 물도 혼탁하지만 직선으로 흘러가는 성급한 물도 스스로를 맑힐 수는 없겠다는 ……. 여유를 부리며 굽이굽이 돌아가는 물이 산소를 흡수해서 스스로를 정화할 수 있음을 언제부터 깨닫게 되었던가.
김지헌 수필가 전북 부안 출생. 1993년 『수필과비평』, 1996년 『월간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200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수필집 『울 수 있는 행복』, 『표면적 줄이기』, 『그는 누구일까』,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빛나지』. 소설집 『새들 날아오르다』, 저서 『현대소설의 어머니 연구』 등이 있다. 수필과비평문학상, 신곡문학상, 국제문화예술상(문학), 광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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