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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버려진 꽃바구니 / 지홍석

부흐고비 2022. 2. 10. 08:35

이른 아침, 등산을 가기 위해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다. 부지런한 관리실 아저씨가 벌써부터 청소를 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버리는 통 위에 못 보던 꽃바구니 하나가 버려져 있다. 내용물 대신, 누군가가 골판지를 찢어 까만 매직 펜으로 글씨를 써 놓았다.

“야! 이놈아, 너도 참 불쌍하구나. 너는 커다란 기쁨을 주었는데 그들은 너를 야밤에 개차반처럼 버렸구나!”

아파트 주민 누군가가 재활용 용품이 아닌데도 쓰레기봉투에 넣지 않고 그냥 몰래 버렸던 모양이다. 마음이 상한 경비 아저씨가 무언의 항의로 위트와 유머가 섞인 글을 일부러 적은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버려진 꽃바구니와 글씨가 쓰여진 골판지에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아리다. 그동안 잠시 잊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치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들어서다. 외동아들로 일흔아홉이란 세수를 누렸던 그분은, 머슴 둘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실 만큼 부자셨다. 결혼을 해 아들 하나와 딸 둘을 얻었으나 상처喪妻를 했고, 새 장가를 들어 딸 하나와 아들을 낳으셨다.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저수지를 축조하는 등 마을의 큰일을 도맡아하셨다. 그러나 세상의 인심은 영원하지 않았다. 두 번에 걸친 장남의 사업실패로 집안이 기울자 사람들의 존경심도 급격히 엷어져갔다. 수많은 전답이 다른 사람의 명의로 바뀌었고, 환갑이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밭을 일구고 논에 손을 담그는 등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고등학교 일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가 쓰러졌다. 어린 누나가 학교에 다니며 집안 살림을 꾸리는 건 역부족이라 생각되었는지, 아버지는 새 장가를 드셨다. 그사이 집안의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아버지와 형님, 형님과 나 사이에는 회복될 수 없는 깊은 골이 파였다. 세 번째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급격하게 연로해지셨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형수에게 절대 밥을 얻어먹지 않겠다던 고집도 꺾으셨다. 시집간 세 명의 딸에게 의지할 수도, 이른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나에게 몸을 의탁할 처지도 아니었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홀로 되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조율이었다. 세분의 고모를 위시해 오남매가 모였지만 형님 내외분과 두 분의 누나, 고모들의 일방적 의견에 따라 아버지는 울산의 형님 댁으로 가셨다. 합의는 필요했지만 간단했다. 대학교도 포기하고 십여 년이 넘도록 직장생활을 하며 부모님을 모셨던 내 몫의 전답을 형님께 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일 년이 채워지기도 전에 아버지는 첫째와 둘째 누나 집으로 전전해야 했다. 따가운 햇살 아래 쭈그리고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더라는 소식도 들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의 무능력은 그대로 아버지의 아픔이 되어 다시 내게로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해 추석, 형수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도련님이 아버지를 모시라’는 것이었다. 새벽에 나갔다 밤늦게 퇴근하는 나에게 친절하게 방법까지 일러 주었다. 시집간 바로 위의 누나에게 아버지를 부탁하고, 내가 대신 생활비를 대라는 것이었다. 조만간 답을 드리겠다며 돌아섰지만 서러운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다. 유난히도 햇살이 포근하고 따사로운 날이었다. 오랜만에 쉬어보는 일요일이라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찢어진 골판지가 눈에 띄었다. 버리려고 집어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에 눈에 익은 필체가 쓰여 있었다. 아버지가 쓴 편지였다.

“아들아 보거라.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지만 보지 못하고 가는구나. 늦게 들어가면 또 뭐라 할지 모르니 이만 간다. 부디 밥 단디 챙겨먹고 몸 건강해라. 아비는 잘 있으니 너무 걱정 하지 말고. 못난 애비가 쓴다.”

다 읽어 내려가기도 전에 눈앞이 흐릿해졌다. 마침 옆방의 아이가 ‘며칠 전에 할아버지가 와서 하루 종일 아저씨 기다리다가 해가 넘어갈 때 쯤 가셨다.’고 했다. 그것이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내게 남긴 마지막 글이자 소식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가셨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내가 보고 싶다고 말을 꺼낸 적이 없었던 아버지셨다. 가진 것이 많았을 땐 존경받았지만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서는 자식들에게도 버림받는 꽃바구니 신세였다. 장가를 들지 못해 아버지를 모실 수 없었다는 것도, 세월이 흘러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도 모두 내 자신을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작정한 듯 비가 쏟아진다. 많이 내리는 봄비는 몸에 해롭다고 등산을 포기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강행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깨닫게 되는 자식의 우매함을 어찌 하늘이 알았을까. 마음껏 내려주는 이 비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비에 흠뻑 젖었을 버려진 꽃바구니가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또다시 가슴속이 시원하도록 실컷 울어 볼 수가 있을까. 사정없이 뺨을 때리는 이 비가 차라리 자식을 원망하는 아버지의 손바닥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지홍석 수필가 경북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출생했다. 2008년 월간 《문학세계》, 2010년 《수필과비평》에 등단했다. 영호남수필문학회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구미수필 동인, 대구문인협회, 수필과비평작가회의,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산림문화공모전 동상을 수상했다. 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에 글과 사진을 다년간 연재했다.

수필집 『도마 위의 여자』가 있다. 산정산악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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