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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온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흔들린다. 거세게 부는 바람 속으로 어디든지 가고 싶다. 늘 허기진 사람처럼 마음속에 바람이 불 때면 커다란 돌 하나가 가슴에서 뜨겁게 데워진다.

환하게 웃고 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은 잔뜩 겁이 나 있는 얼굴이다. 사진에서 유독 한 아이만이 하마 입처럼 터질 듯 한 입 모양새다. 어디 그뿐이랴. 아이가 입은 바지는 무릎 부분이 반질반질하여 구멍이 나 있다. 구멍 난 곳에 손가락으로 자꾸 질려서 더 크게 만든 모양이다. 장난기가 많은 개구쟁이처럼 비실비실 웃는데 귀엽다.

동네에서 잔치가 있는 날은 아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지글지글 전을 부치면 그곳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다. 그날은 술이 빠지지 않는다. 아이는 술독 옆에 앉아서 심부름을 한다. 그러면 아줌마를 꼬드겨 술 한 잔 얻어먹는 것이다. 아이가 술맛을 알 리가 있겠는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는 알싸한 술맛에 취하기도 한다. 흥에 겨워 장구 장단에 신이 나서 춤을 춘다. 어린아이가 취해서 춤을 추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을까. 술을 한 잔 더 주면 아이는 '얼씨구' 어깨가 덩실거린다. 여기저기 웃음과 함께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중학교는 수업료를 제 날짜에 맞추어 내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아이는 전교에서 제일 나중에 내야겠다는 장난기가 발동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은 일일이 체크에 들어갔다. 아이 차례다. “너, 언제까지 낼 수 있냐?” 대꾸 없는 아이를 보며 선생님은 단호하게 날짜를 정해 놓고선 다짐을 받는다.

한 달이 지날 쯤 서너 명으로 줄어들었다. 아이도 포함되었다. 빨리 내어달라고 전화가 왔었다고 부모님은 수업료를 챙겨주었다. 하지만 돈은 고스란히 책상에 두고 학교에 온다. 수업료를 제 때에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컷 두들겨 맞고, 교장실까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반성문까지 썼다. 교무실에 줄을 세운 채 선생님들의 모멸감과 멸시를 참아내어야 했다.

“형편이 되지 못하여 제 때에 낼 수 없는데, 반성문까지 써는 이유가 뭔데요.”

“어디서 눈깔을 치켜들고 대꾸하냐.” 선생님은 사정없이 뺨을 갈겼다. 왜 맞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을 때 서무과장이 들어왔다. “너, 누구 딸 아니니, 왜 여기 있느냐.”고 하고서 “저 아이의 집은 늦게 될 정도가 아니다.” 고 말한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가슴속에는 또 다른 바람이 거칠게 지나간다. 바람이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가라 꼬드긴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굳이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아이는 싸움도 곧잘 잘했다.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방과 후 읍내를 배회하며 다녔다. 남자아이들과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담배를 가져왔다. 어른들이 피우는 독한 담배를 피우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후미진 곳에 들어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담배 연기가 바람에 날아간다. 하필 지나가는 선생님께서 담배 냄새가 나는 곳으로 왔다. 아이들은 놀란 토끼처럼 “튀어.”라는 한마디에 가방을 들고 잽싸게 도망간다.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선생님께 붙잡혀 엉덩이에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 교무 회의를 거쳐 퇴학은 아니라, 반성문과 함께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 오늘 이런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못하도록 빌었다.

그렇게 사춘기가 지나갔다. 내가 알기론 공부는 전교 상위권에 속한 아이였다. 남과는 다른 행동의 아이를 부모님은 별나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가슴속에 비밀로 간직했던 추억의 돌 하나를 가끔씩 꺼내 본다. 그날에 있었던 사건은 아직도 부모님은 모르고 있다. 시골집이 있는 동네에 가면 “ 너, 그때 그 아이가 아니가. 술 먹고 춤추고, 술빙으로 죽다 살아난 아이 아니가.” 하며 알은체를 한다. 아이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언제 적 얘긴데’ 하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이 아직도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아이의 가슴에 거센 바람이 몇 차례 불었다. 바람은 늘 머물지 않고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어린 시절에 유별난 행동을 하는 아이로 보이지 않는다. 긴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나온 얼굴에 생기가 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아이의 마음에도 벌써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을 테다.

바람이 바짓가랑이를 흔든다. 옷깃을 스치는 살랑거리는 바람이 좋다. 때론 털썩 주저앉아 무너지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제는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온몸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지난 바람이 아프고, 아픈 만큼 그리워지고 추억으로 남는다. 아이를 일깨워주는 것은 바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어디론가 가라고 유혹한다. 바람이 아이에게 속삭인다.

“바람이 부는 데로 날아가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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