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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파티 / 조명희

부흐고비 2022. 2. 28. 00:35

제9회 동서문학상 동상

비단이 곱게 깔린 돌상이 차려졌다. 굵은 붓글씨로 ‘첫돌’이라고 쓰인 휘장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길게 내려졌다. 그 앞에 색동 한복과 전통식 호건까지 갖춘 한 살배기를 앉혀 놓으니 모든 것이 한가지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한 살배기가 활짝 웃었다. 사랑스런 모습에 여기저기서 가족과 친지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내 직업은 파티 플래너이다. 나는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파티 플래너가 되었다. 고객이 의뢰한 파티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일을 총괄하는 파티 플래너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최소한 서른아홉 살까지는 그랬다. 나는 이렇듯 우연한 기회에 파티 플래너가 되었다. 파티 플래너로 일 해온 지 이제 일 년 남짓 되었다. 나는 우리 고유의 전통 비단과 예스러운 장식을 이용한 파티 연출을 주로 한다. 나는 어떤 원단에서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고운 빛깔의 비단들이 참 좋았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주로 주말을 이용한 조촐한 가족모임부터 대형 연회 홀에서의 파티까지 100회 가까이 행사를 치러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나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파티를 했다. 내가 주로 진행하는 파티는 아가들의 첫 생일 파티였다. 아가들의 탄생을 축복하고 그의 첫 번째 생일을 내 손으로 꾸려주는 보란은 나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파티는 인생과 닮았다. 사람의 삶이 녹녹치 않은 것처럼 파티 플래너에게도 쉬운 파티란 없다. 파티가 돌발 상황의 연속인 것 또한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었다. 나 역시 100회 가까운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 크고 작은 돌발 상황들을 만났다. 고객이 의뢰한 장소에 도착을 해보면 아기의 돌상으로 꾸며 줄 테이블은 너무 크거나 혹은 너무 작았다. 어떤 연회장에서는 돌상을 꾸려야 할 테이블마저 줄 수 없다며 돈을 내라고 버티기도 했다. 이런 일을 만나면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피곤함을 떠나 씁쓸한 마음이 먼저 생겼다. 모든 관계를 장삿속으로만 해결하려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들은 오로지 파티 플래너인 나의 몫이다. 파티 플래너는 이런 불편한 상황들도 융통성 있게 넘길 줄 알아야 했다. 나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그들과 타협을 한다. 타협 또한 어느 쪽도 불쾌하지 않아야만 성공적인 타협인 것이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내 고객의 파티가 아무런 잡음 없이 끝나는 것이다. 정성스럽고도 따뜻한 파티가 치러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날은 다름 아닌 한 살 배기의 첫 생일이기 때문이고, 한 살배기가 세상으로 첫발을 떼는 날인 것이 더욱 그래야 할 이유였다.

파티는 약속이다. 나는 아버지의 발인(發靷)식이 있던 날도 약속 된 파티를 해야 했다. 전날까지 장례식장에서 밤을 새우고 파티 장소로 떠나기 위해 먼저 상복을 벗어 놓고 길을 나섰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사춘기 무렵 헤어졌다. 가정이 있었던 아버지가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다시 만난 건 얼마 전, 아버지와 헤어진 지 이십여 년만이었다. 다시 만난 아버지는 몹시 늙고 병든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내겐 늘 부재중이었던 아버지였지만, 이제 세상 어디에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낮 설고 슬픈 일이었다. 장례식 내내 나오지 않던 눈물은 파티 장소로 가는 차안에서 터졌다. 나는 조용히 한참을 울었다. ‘목적지 주변입니다. 안내를 종료하겠습니다.’ 라는 안내 음성을 마지막으로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멈췄다. 내비게이션에만 의지한 채 한 시간 이상을 달려 온 나는 빌딩들이 즐비한 낮선 도시에서 주춤했다. 잠시 막막해졌다. 정확한 목적지가 아닌 목적지 주변에서 안내를 마감하는 내비게이션이 어쩐지 사춘기 무렵 보았던 내 부모와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파티 장소에 세팅할 커다란 소품상자 세 개를 수레위에 차례로 쌓아올렸다. 나는 내 가슴께까지 높아진 소품 수레를 끌고 화물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마음만큼이나 수레가 무겁게 느껴졌다. 파티 장소는 20층에 위치한 뷔페식 연회장이었다.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세팅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회장의 구조는 처음부터 파티를 고려해 만들어 진 공간이 아니었다. 천장은 너무 낮았고 낮은 천장에는 장식이 유난히 큰 샹들리에가 머리에 닿을 듯 걸려 있었다. 나는 이곳의 낮은 천장과 샹들리에를 누구도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세팅하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잠시 고민 끝에 나는 낮은 천장과 눈에 거슬리는 샹들리에 까지 비단과 소품들을 이용해 장식하기로 했다.

나의 탄생은 처음부터 준비되고 축복 받은 것이 아니었다. 나의 부모는 나의 삶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나를 낳았다. 내 삶은 아팠다. 외롭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살아가는 나의 자세일 것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삶이 더 이상 내 삶의 장애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파티를 준비하듯 내 삶도 멋지게 기획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의 파티들이 내게 알려 준 것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나이 마흔에 파티 플래너가 된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나와 인연이 된 아가들의 한 살 파티들이 모두 내 삶의 조각조각들로 맞춰진다. 외롭던 내 삶이 고운 빛깔들로 꽉 채워진다. 그 모양이 비단 조각보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내 삶의 시련과 외로움들은 이렇게 멋진 조각보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들이었다고 나를 격려해 보았다.

시계를 본다. 별다른 일이 없었다면 아버지의 유해(遺骸)는 화장터를 거쳐 이제 납골당에 안치 되었을 것이다. 천륜의 아비와 자식이라기에 현실의 거리감은 멀기도 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얘기한다. 아버지가 한평생 벌인 파티는 어떠했는지. 속속들이 거두지 못한 딸자식 때문에 혹여 마음에 짐이 되었는지. 하지만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내가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사실에 기뻐달라고. 그리고 이제 고단한 아버지의 파티가 끝났으니 마음의 짐일랑 벗어놓고 단 잠 속으로 빠져드시라고. 말이다.

나는 다시 마음을 모아 본다. 손님들은 파티 시작 시간보다 먼저 도착 할 것이다. 손님들이 오기 전에 세팅을 마치려면 서둘러야 했다.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는 내가 아닌 파티 플래너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도 그런 나의 모습을 더욱 기뻐하실 것 같다. 손끝에 정성을 담는다. 금사가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는 비단을 돌상위에 펼쳐 놓았다. 테이블 중앙에 색동 자미사를 늘어뜨리니 상차림이 화사해졌다. 화병에 연둣빛이 새콤한 열매와 함께 고운 빛깔의 꽂을 꽂는다, 눈부시게 하얀 도자기 그릇 위에 꽃처럼 예쁜 떡을 정갈하게 돌려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촛불을 밝혔다. 촛불을 켜는 내 손길은 늘 그렇듯 조심스럽다. 그리고 한 살 생일을 맞은 아기의 앞날을 온 마음으로 축복하는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꾸린 돌상에서 한 아이가 첫돌을 맞이하고 있다. 온가족이 아이의 앞날을 축복해준다. 나는 이제 그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 속에 담고 있다. 카메라 앵글 속에서 아이를 안은 엄마와 아빠가 웃는다. 함께 웃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은 아이와 눈매며 입매 등이 신기하게도 닮았다. 나는 이런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이 순간 내가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서 더불어 행복하다. 행복해서 가슴이 저려온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날, 내가 누군가의 탄생을 축복하는 파티를 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있는 것 같다. 아니, 삶과 죽음을 모두 품에 안은 것 같다. 기쁨과 슬픔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결국은 내 안에서 모두 한 가지가 된다. 나는 행복한 가족들을 향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마음으로는 아버지를 힘껏 안았다. 내 마음이 우주(宇宙)를 품은 것처럼 훌쩍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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