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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제주도의 하얀 목련꽃이 티브이 속에 만발했다. 섬진강 강변의 낮은 산자락에 샛노란 산수유와 연분홍의 매화가 줄줄이 꽃 피운 것도. 봄을 불러온 꽃들은 그 명성만큼이나 화사했다. 눈부신 자태를 화면 가득 뽐냈다. 부럽기만 하던 그 봄이 며칠 지나자 우리 집 담을 훌쩍 넘어왔다. 봄은 바람타고 남쪽에서 바다 건너, 산 넘어 북쪽으로 릴레이 바통처럼 이어졌다. 어느새 서울, 평양까지 산과 들을 푸른 옷으로 치장했다.
그런데도 우리 집 뜰의 대추나무는 여태껏 아무 기별이 없다. 양옆의 나무보다 야위고 키가 작아 있는 듯 없는 듯 해 안쓰럽다. 어딜 가나 뒷자리에 머물게 되는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대추나무에 막내 여동생도 겹친다. 나와 띠 동갑인 동생은 아기 때 모유가 턱없이 부족했다. 어머니는 동생에게 암죽을 모유보다 더 많이 먹여야 했다. 어머니의 남다른 정성에도 동생이 제 또래보다 키가 작고 야윈 편이었다. 자라면서 다행스럽게 키와 신체가 보통 축에 들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암죽 먹인 것을 늘 가슴 아파했다.
대추나무도 주인이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면 이 몰골은 안 됐을 텐데. 검은 졸가지만 앙상해 자꾸만 눈이 가고 신경 쓰인다. 늘 가까이 있던 사람이 어느 날 내 곁을 훌쩍 떠난 후에 돈독했던 정을, 빈자리가 크다는 걸 비로소 느끼게 되는 맥락과 같다. 지난해 여름 대추나무 이파리가 노래지면서 점점 오그라들었다. 영문을 몰라 그냥 두었다. 그로 인해 가을이면 두 되 박쯤 땄던 풋대추를 한 톨도 구경 못 했다. 남편은 내년 봄 새잎 달고 나올 때 그 경과를 지켜보겠다며 미뤘다. 그게 불찰이었다. 설마 죽기야 할까 하고 간 큰 생각을 했던 것이. 설마라는 말은 책임감을 회피하고 싶을 때, 쉽게 포기가 안 될 때 쓰게 된다. 그 무기를 대추나무에 써먹었으니 무슨 변명을 할까.
대추나무는 영영 못 일어날 모양이다. 우리 집과 아주 이별하고 싶은가 보다. 이미 몹쓸 병이 깊었던 것을. 단순히 잎마름병이 아닌, 뿌리까지 심하게 앓았던 게 틀림없다. 셈이 없는 주인 만나 삶을 못다 할 것 같다. 진즉 양쪽의 큰 나뭇가지를 전지하고 대추나무에 볕살이 잘 들게 해주어야 했던 것을. 남편은 대추나무를 등한시했다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나도 같은 심정이다. 언제나 후회할 일이 생길 때마다 신중하려고 마음 다지지만, 매번 하는 것이 실수요, 후회다.
해마다 대추나무가 뜰에서 가장 늦게 기침을 했다. 목련꽃이 이제 막 봄이 시작인데 저만 봄날이 간다고, 빨리 낙화하는 게 섧다고 해도, 모과꽃이 봄이 깊어 간다고 입을 모아도, 수수꽃다리가 향기를 진동하면서 봄이 완연해졌다는 성화에도 대추나무는 듣는 둥 마는 둥 늦잠만 잤다. 나무 둥치가 지팡이같이 딱딱해 아예 소생할 기미조차 없어보이던 포도나무도, 불을 지피면 금방 불꽃이 일 것 같은 깡마른 석류나무까지 봄 잔치에 끼어들었다. 미동 없는 대추나무가 올해는 더 깊은 잠에 빠진 줄 알고 깨어나기만 기다렸는데.
버쩍 마른 대추나무 둥치를 손으로 가만히 만져본다. 까칠까칠하다. 대추나무는 지난해 제 딴에 힘들게 투병했다며 삐죽삐죽한 가지로 내 팔을 푹 찌른다. 자기가 아플 땐 태평했다가 언제 살가운 눈길 주었다고, 웬 애정이냐고 하는 것 같다. 정말 내가 한 번이라도 대추나무에 공을 들였던가. 대추나무가 힘들여 새움을 틔울 때도, 연이어 피운 다른 나무와 꽃에 푹 빠져 눈도 맞추지 않았다. 잎이 무성했을 때도 보잘것없다는 핑계로 눈여겨 봐주지 않았다. 화단에서 조연 역할을 충실히 했는데 말이다. 포도만 한 열매가 눈에 들어와도 그저 대추가 열렸구나 했다. 그런데도 추석 차례상에 올리려고 열매를 덜렁덜렁 잘도 땄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정성과, 매년 열매 맺어 제 몫을 다해준 데 고마움도 모르고. 정말 염치가 없었다. 햇대추 차례상에 올린 것도, 뒷집에 조금 나눠 준 것도 내 공인 양 생색냈으니까.
대추나무 앞에서 입지가 옹색해진 내게 빨간 동백꽃이 함박웃음을 선사한다. 키 작은 흰 초롱꽃과 연분홍색의 금낭화도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쭉 펴라며 살포시 웃는다. 나무와 꽃들이 단독 주택이 춥다는 것과 대추나무에 미안해하는 내 마음을 아는 듯 위로해 준다. 가녀린 꽃들은 한 데의 소소리바람에, 꽃샘바람에 맨몸으로 떨었는데도. 내색하지 않는 그 속이 나보다 훨씬 깊다. 아롱다롱한 꽃에서 봄이 무르익는다. 따뜻한 아파트를 겨우내 부러워한 마음이 꽃 속으로 슬쩍 숨어든다. 하나 대추나무에 미안함은 지울 수 없다. 싱그러운 나무들과 방글방글하던 꽃들도 눈치채고 시무룩해진다. 대추나무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 때문일 테다. 소멸의 슬픔은 식물도 사람과 똑같은가 보다.
우리도 자식을 먼저 여의든, 배우자와 사별하든, 부모가 돌아가시든 제자리를 지키며 의연하게 살아간다. 꽃처럼 때론 환하게 웃기도 하고, 떨어져 시든 꽃잎만큼 맥이 풀리기도 하면서. 죽을 만큼 슬퍼하다가 세월 속에 묻고 잊어간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 미처 나누지 못한 정을 아쉬워하면서. 진흙 속에 옥이라 했던가. 대추나무처럼 놓치고 후회할 일이 무엇인지 눈여겨 찾아볼 일이다.
이 대추나무도 양옆의 큰 나무 기세에 눌려 기 한 번 못 폈으리라. 그 점이 내내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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