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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군주 사우론이 만든 절대 반지는 강력했다. 누구라도 제왕이 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졌고 날카로운 눈길로 노리는 자들이 많았다. 반지를 없애려고 했던 프로도마저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기 싫어 괴로워한다. 이십여 년 전에 관람한 영화 ‘반지의 제왕’은 악의 손아귀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한 반지 원정대의 모험을 그린 내용으로 지금까지도 강렬한 인상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절대’란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라는 말로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뜻이다. 세상에 그런 존재가 있을까만 누가 뭐라 하든 깊은 신념만 지니고 있으면 얼마든지 가질 수도 있을 듯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손발이 척척 맞는 독자를 만난 순간 한껏 흐뭇해진다. 무한한 감동을 아낌없이 펼쳐 보이고 때로는 냉정한 비판으로 글심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환상의 짝꿍. 내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자님이 한 분 계신다. 언제부터인가 그분이 간청하여 글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제법 그럴듯한 평을 내놓아서 여태 곁에 두고 있다. 몇 번의 퇴고에도 긴가민가했던 부분은 가차 없이 집어냈고 절절히 애고(哀苦)로운 문장에는 격한 공감을 보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날도 있다. 신랄한 비판을 쏟아붓고 독설로 꾸짖을 적에는 무안하고 얄밉기도 하다. 더군다나 일 년이 다 가도록 책 한 권 읽지 않고 일기 한 줄 못쓰는 그에게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글을 보일 때는 서너 번 고친 뒤 대강의 분량이 나왔을 즈음인데 시작이 평범하다, 표현이 어색하다, 끝이 밋밋하다 같은 별의별 지적을 다 쏟아낸다. 일단 숨을 크게 고르고 참는다. 대여섯 번 다듬은 다음에는 전체 구성을 바꾸기도 하는데 지난 번 것보다는 낫다고 어줍게 위로하거나 더 엉망이라며 비아냥거린다. 이를 악물고 또 눈을 질끈 감는다. 아직 덜 여물어 다른 이에게 보일 수 없다는 약점을 쥐고 거들먹거리는데도 달리 대안이 없는 까닭이다. 딱히 도움이 된다기보다 누구라도 이해하도록 쉽게 써야 한다는 잣대를 대면 딱 걸맞은 독자가 아닌가 하여 귀히 여기고 있다.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이 읽어주지 않으면 완성했다고 할 수 없으니 꼭 마지막 검열을 거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독자님이 읽는 표정을 보면 대략 흥망을 점칠 수 있다.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세 번 정도 끄덕이면 평작이다.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입으로 ‘스읍’ 바람 마시는 소리를 내면 주제는 알겠으나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뜻이고, 눈에 힘을 주어 두 번 세 번 거푸 읽으면 아직 나의 깊은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조악하게 낄낄거리고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경우가 있는데 주인공이 본인일 때다. 아주 드물게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하품을 했다고 둘러댈 때는 꽤나 감동받았다는 뜻이 되겠다. 나는 어떤 반응이 나올지 초조해져서는 물을 떠 와라, 다리를 주물러라, 쿠션을 받치라는 성가신 심부름을 마다치 않으며 곁에서 하명을 받잡는 졸개마냥 머리를 조아리고 꼼짝 않는다. 그러다 반응이 시원찮거나 별로라고 악평하면 그만 빈정이 상해 쿠션을 빼버리거나 정강이를 한 대 냅따 걷어찬다.
글쓰기를 미루고 한없이 늘어져 있으면 요즘은 작가님이 왜 글에 매진하지 않느냐며 호된 채찍질을 해댄다. 가까이서 지켜보아 내 일과를 알 터인데, 피치 못할 사정이야 누구에게나 있고 핑계만 대어서는 필력이 늘지 않는다며 다 게으른 탓이라고 타박까지 한다. 매일 일찍 일어나 한 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쓰란다. 먼 친척 조무래기 타이르듯 조목조목 비법을 전수한다. 감사한 일이지만 너무 장황한 비유와 설명이 이어지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자신의 잔소리에 도취해서 “나도 글을 한 번 써 볼까?” 하고 황홀감에 젖을 때는 표정이 사뭇 진지하여 혼자 보기 아까울 지경이다.
가끔은 지극히 소신껏 나를 위하기도 한다. 영감을 얻으려면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며 인근 바닷가로 나들이를 시켜준다. 그러나 밥이나 음료는 건너뛰고 그냥 드라이브만 하는 것이 문제여서 쉬이 기분이 풀리지는 않는다. 언제는 체력이 좋아야 글도 쓸 수 있다면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는 악산에 데려간 적도 있다. 그곳을 사족보행으로 다녀온 후 며칠을 앓아눕고 나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변도 못 걷는 주제에 어디라고 따라 갔느냐, 바위가 많아 굴암산이지 않겠냐는 지인들의 핀잔에 산 이름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내가 글로 상을 하나 받았을 때는 휴가를 내고 시상식장까지 친히 운전해 주었는데 고맙기도 했지만 그분의 유별난 매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날 몰래 산 꽃다발을 어떻게 두었는지 시들시들해져서 몹시 초라해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다 안 되겠다 싶었던지 휴게소에 들러서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오지 않겠는가. 평소에는 휴게소 커피가 비싸다며 편의점 깡통 커피를 사주었기에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그 모습에 울컥하여 요태를 부리며 “두 잔 사오지 그랬어?” 하고 받아 들었는데 맹물이 반쯤 담겨 너울대고 있었다. 운 좋게도 방금 버리고 간 컵을 주워 깨끗이 씻었노라며 꽃다발을 담그고 있으란다. 풀 죽은 내 기분처럼 시든 꽃은 끝끝내 소생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불꽃같은 열정으로 어서 글을 보여 달라고 조르던 절대 독자께서 연일 숨소리 하나 없이 잠잠하다. 애정이 한풀 식은 듯 뜨뜻미지근하고 어쩌다 공들인 원고를 주어도 읽기는 뒷전인 듯 바닥에 떨어졌거나 발끝에 널브러져 있기 다반사다. 사연인즉 주식으로 큰 수익을 낸 동료가 미련 없이 사직서를 내고 유유히 떠나는 모습을 본 후 터무니없이 주식 공부를 한답시고 종일 핸드폰에 빠져 지낸 까닭이다. 그렇게 쉽다면야 갑부 아닌 사람이 없겠으나 단꿈에 부풀어 있는지라 말리지도 못한다. 이렇듯 그분의 관심이 천리일도(千里一跳)에 쏠려 있으니 내 글이 순위 밖으로 밀려난 것은 당연한 처사이다.
절대 반지처럼 제왕의 자리를 내어줄 것도 아니요, 탐내는 자가 있을 만큼 거부 못할 매력이 있지도 않으며, 근자에는 나를 본체만체 푸대접하는데도 그분을 속시원하게 놓을 수가 없다. 평가는 한 번도 절대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속을 뒤집어 놓아 울울병을 안겨주지만 민낯의 글도 부끄럽지 않고 무엇보다 내 글에 관심을 보이는 유일한 독자이다. 굼뜨고 늦터진 글쓰기에 박자를 맞춰주고 건강까지 살뜰히 챙겨주니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나만의 절대 독자가 아닌가. 영화 속 반지처럼 화근덩어리로 여겨 소멸시킬 것이 아니라 십이첩 반상이라도 극진히 올리면서 내 글을 다시금 보아주십사 바라지 아니 할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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