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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언양의 세 가지 맛 / 김잠출

부흐고비 2022. 4. 28. 08:11

울산은 동으로 무룡산 동대산이 병풍이 되고 서쪽은 태화강의 원류(原流)가 되는 고봉준령이 둘러 서 있다. 가지산 고헌산을 비롯해 영남알프스 7봉이 모두 1000미터를 넘는다. 이러한 울산의 서쪽 땅에 자리한 언양에 3미(味)가 있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세 가지 맛이다.

언양 불고기가 첫째요 미나리 강회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이 두 번째이고 못안 흰쌀밥이 세 번째 맛이다. 강회는 이른 봄에 돋아난 향미가 강한 햇미나리를 살짝 데쳐 봄맛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이다. 고추·달걀·석이·차돌박이·편육 등을 채로 썰어 잣을 가운데 세우고 옆으로 돌려가며 세운 다음 끓는 물에 데쳐낸 미나리로 감는다. 감을 때 민간에서는 상투 꼴로 감았고 궁중에서는 족두리 꼴로 감았다. 색상이 아름답고 맛이 깔끔해서 술안주로 애용된다. 못안(池內里) 쌀로 지은 흰쌀밥은 보통 고봉으로 먹거나 두 그릇을 한 번에 비울 정도로 맛이 일품이다. 불고기와 미나리, 흰쌀밥이 합쳐져 언양의 세 가지 맛이 완성된다. 여기에 무시장국과 나박김치를 곁들여 담백하고 정갈한 밥상을 갖추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추사 선생의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이 어울릴 정도로 금상첨화다.

언양 3미는 깨끗한 물이 기본이다. 눈솔 정인섭 선생이 가곡 물방아 첫 소절을 언양의 깨끗한 물로 시작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깨끗한 언양물이 미나리깡을 지나서/물방아를 돌린다…”

울산 사람들이 즐기는 한우 불고기는 두 가지 방식이다. 양념에 재운 한우를 석쇠에 구워 먹는 ‘언양식 불고기’와 그냥 생고기를 숯불에 얹어 왕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 ‘봉계식’으로 나뉜다. 언양불고기는 1960년대부터 유명했고 봉계는 1980년대 이후에 자리 잡았다. 둘 다 지나친 양념 맛이 없어서 좋다. 대개 입맛이 순수한 사람들은 양념 범벅을 싫어한다. 그러니 언양식, 봉계식 불고기의 맛은 주물럭이나 전골과 다르고 일본식 야끼니꾸나 LA갈비와도 별개다. 언양불고기가 얇게 썰어 최소한의 양념으로 고기 자체의 맛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너비아니의 계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양불고기는 언제부터 유명해졌을까? 전문가들은 1950년대 이전의 문헌에 불고기란 낱말이 보이지 않은 만큼 불고기란 단어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언양불고기가 일제 때부터 유명했다는 설은 무리인 것 같다. 1960년대 고속도로 공사 때의 함바식당설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태화강 상류지역으로 깨끗한 물이 풍부하고 드넓은 초지까지 갖춘 언양에 한우를 많이 길렀고 우시장이 만들어지고 도축장과 푸줏간도 성행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1960년대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때 함바식당에서 먹었던 소고기 국밥이나 불고기가 전국으로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는 해석이다.

한우 불고기라고 다 같은 불고기가 아니다. 언양불고기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한두 마리 정도 새끼를 낳은 3~4년생 암소를 도축한다. 육질이 부드럽고 기름기가 적어 최고의 맛이라고 한다. 언양 사람들이 ‘잘 익었다’고 표현하는 연령대다. 또 고기 맛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양념을 너무 치대는 것을 피한다. 생고기나 소금구이를 더 선호한다.

맛있는 음식처럼 시문(詩文) 등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며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우리는 인구회자(人口膾炙)에 비유한다. 맹자(孟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다. 육회와 구운 고기가 예부터 인기가 있었다는 증거다.

축복의 땅, 울산엔 언양 3미 외에도 수많은 명물들이 있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라는 국보가 있고 국가 명승 대곡천과 태화강 국가정원이 있다. 드넓은 동해에 영남알프스와 태화강, 동천강이 흐르니 산과 바다, 강이 어우러져 곳곳이 경승이다. 산자수명(山紫水明) 하니 이를 즐길 사람들과 그들이 나눠 먹을 물산이 풍부하지 않을 수 없다. 강동 돌미역과 장생포 고래고기, 전복곰, 염포 치전 장어와 방어진의 방어와 고등어, 우뭇가사리와 합도의 재첩, 굴과 성게는 울산 바다에 지천이었다. 유포의 유지렁은 순창 고추장과 짝을 이룰만했고 삼호곱창은 언양불고기와 쌍벽이었다. 언양 읍성 밖의 적전 참외는 왕이 즐기는 기호품이었고 낙동강 유역 영남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두릅과 제피, 참나물, 곤달비 같은 산나물은 청도 경주 밀양 사람들까지 언양에 불러왔고 염포나 마채 염전의 자염(煮鹽)은 전 국민의 필수품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처럼 자연의 혜택이 두터운 땅이었으니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품성이 넉넉하고 여유롭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 모나지 않았고 남에게 빚지며 살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도 봄은 가고 여름이 온다. 나뭇잎은 더욱 짙어지고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는 달’ 6월이다. 이맘때쯤이면 언양 논두렁에선 뜸부기가 구애하고 꾀꼬리 소리가 한창일 게다. 화장산 아래, 미나리 깡을 지나는 가지산 물이 도랑을 채우고 있을 언양에 가고 싶다. 백신 접종을 하고 영남알프스 평원에서 평화와 여유를 만끽하고 작괘천(酌掛川)에서 언양 3미를 맛보는 소확행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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