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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이다 / 소세양

부흐고비 2022. 5. 4. 09:16
번역문과 원문


산천은 천지간의 무정한 물건이다. 그러나 반드시 사람을 기다려서 드러난다.

山川者 天地間無情之物也 然必待人而顯
산천자 천지간무정지물야 연필대인이현

-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양곡집(陽谷集)』 권14, 「면앙정기(俛仰亭記)」

전북 익산 왕궁면 소재 소세양 묘(전북 유형문화재 제159호)

 

 

해설


소세양이 송순(宋純 1493-1582)의 면앙정에 쓴 기문의 일부로, 명인(名人)과 명문(名文)을 통해 명승(名勝)이 되는 상관관계를 나타낸 문구로 더 유명하다. 소세양은 그 사례로 중국의 난정(蘭亭)과 적벽(赤壁)을 거론하였다.

난정은 절강성 소흥에 있는 어느 연못의 작은 정자였다. 동진(東晉)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가 우군장(右軍將)으로 부임해 벗들과 시회(詩會)를 열었으며, 「난정집서(蘭亭集序)」를 지은 곳으로도 이름났다. 적벽은 호북성 황강(黃岡)에 있는 강가의 야트막한 절벽인데, 송나라의 문장가 소식(蘇軾)이 유람하고 지은 「전적벽부(前赤壁賦)」로 세상에 알려졌다.

난정과 적벽은 그 자체의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다워서 이름난 것이 아니라, 왕희지와 소식이라는 명인과 두 편의 명작을 통해 천하에 명성을 드러내었다. 이런 만남이 없었다면, 두 곳은 궁벽한 시골의 그저 그런 물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결국 사물은 스스로 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만 귀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이런 운명적 만남을 기대하고 또 부러워한다. 누군가는 이를 요행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그것이 운명이든 요행이든, 난정과 적벽이 이 만남에 관여한 것이 있었던가. 요행이나 운명을 기다리기보다는, 그저 그런 시골의 물가조차도 역대의 명승으로 만드는 명인의 그 안목을 배우는 것이 어떨지.

글쓴이 : 강정화(경상국립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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