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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닭아 미안해 / 이병연

부흐고비 2022. 5. 11. 09:06
원문과 번역문


첫 번째
첫닭 울고 둘째 닭 울더니
작은 별, 큰 별 떨어지는데
문을 들락거리며
조금씩 행인은 채비를 하네.

其一
一鷄二鷄鳴 일계이계명
小星大星落 소성대성락
出門復入門 출문부입문
稍稍行人作 초초행인작

두 번째
나그네 새벽 틈타 떠나렸더니
주인은 안된다며 보내질 않네.
채찍 쥐고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하니
닭만 괜스레 번거롭게 했구나!

其二
客子乘曉行 객자승효행
主人不能遣 주인불능견
持鞭謝主人 지편사주인
多愧煩鷄犬 다괴번계견

-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사천시초(槎川詩抄)』 권상 「일찌감치 떠나려다가(早發)」

 

사천시초 표지(권상)

 

해설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1671~1751)은 본관이 한산(韓山)이고 자(字)가 일원(一源)이며 사천(槎川)이라는 호를 썼습니다. 사천 이병연은 1696년 겨울, 동생 이병성(李秉成;1675~1735)과 함께 석실서원(石室書院)에서 강학을 하면서 농암(農巖), 삼연(三淵)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되었고, 삼연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백악시단을 이끌었던 문인입니다. 80여 생애 동안 3만 수가 넘는 창작을 했다고 전해지며, 특히 겸재(謙齋) 정선(鄭敾)과의 친교를 바탕으로 『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 등과 같은 시화(詩畫) 교섭의 독보적 성취를 이룩하여 당시에 ‘좌사천(左槎川), 우겸재(右謙齋)’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았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일찌감치 떠나려다가>입니다. 첫 번째 수를 먼저 보면, 닭 한 마리가 울더니, 또 한 마리가 따라 웁니다. 그리고 닭 울음에 이끌린 듯 날이 밝아오면서 별들도 빛을 잃고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단순한 시어를 반복적으로 구사하여 마치 동요나 동시를 읽는 기분이 듭니다. 시를 멋지게 쓰겠다는 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닭 한 마리, 또 한 마리 울고, 작은 별, 큰 별 떨어지는 새벽에 시인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시인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첫 번째 수에는 제목처럼 <조발>의 시적 상황이 펼쳐져 있지만, 왜 닭에게 미안한 것인지는 아직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이제 두 번째 수를 보겠습니다. 1구를 보면, 나그네는 새벽을 틈타 떠나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2구를 보면, 주인은 안된다며 그냥 보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째서일까요? 나그네는 왜 닭이 울기 시작하고, 별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새벽을 틈타 떠나려고 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결국은 주인 몰래 떠나려고 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왜 주인 몰래 떠나려 했고, 주인은 또 왜 그냥 보내지 않는 걸까요? 힌트가 3구에 있습니다. 지편사주인(持鞭謝主人). 시인은 결국 채찍을 쥐고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나게 됩니다.

행간에 감추어져 있던 시적 정황은 이렇습니다. 시인은 나그네로 떠돌던 중, 간밤 어느 집에 하루를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 나그네에게 주인은 정성과 호의를 다해 편의를 봐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주인 덕분에 시인은 하룻밤을 편히 쉴 수 있었지만, 동이 틀 때까지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침이 되면 이모저모 또다시 주인에게 폐를 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잠들었을 새벽을 틈타 길을 나서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닭이란 놈이 울어대고 주인이 그만 잠에서 깨고 맙니다. 그리고 떠나려던 시인에게 ‘식사도 안 하시고 어딜 가세요, 그렇게는 안 됩니다.’라면서 시인을 붙잡습니다. 결국, 시인은 주인의 호의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식사를 마친 후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신세 많았습니다.’라면서 감사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을...... 괜히 부산을 떨어 닭만 잠 못 자게 했구나!’

이 작품은 나그네와 주인이 서로를 배려하고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따뜻하게, 그리고 흐뭇하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혹 주인이 깰까 까치발을 하고서 짐을 챙겼을 나그네의 마음과, 아침식사도 없이 그렇게는 못 보낸다는 주인의 마음이 참으로 훈훈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한 마음을 ‘닭아, 미안해’하며 넌지시 돌려 표현한 데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작품입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진 작품으로, 사천의 시를 두고 ‘쉽게 대충 쓴 것 같지만 담긴 뜻이 정밀하고 깊다[한사정심(閒肆精深)]’고 한 스승 삼연의 평가가 딱 들어맞는 시라 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 김형술(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 우정으로 빚은 겸재의 名作

소나무 아래서 마주 앉은 늙은 선비 둘, 그들 사이에 놓은 있는 붓과 벼루, 비어 있는 두루마리. 무엇으로 빈 종이를 채워놓을지가 고민일 수도 있겠으나 두 선비는 오히려 여유로워 보인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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