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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쇠꽃, 향기 머물다 / 허정진

by 부흐고비 2022. 6. 2.

둥글둥글한 버섯들 군생처럼 옹기종기 처마를 맞댄 시골 마을이다. 한해의 결실을 보고 난 뒤의 들판은 허무인지 여유인지 텅 빈 충만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담장 너머 등불처럼 붉게 매달린 홍시가 방학 때마다 외갓집 오고 가는 길목처럼 정겹기만 하다. 숲속 어딘가에서 갑자기 허공으로 높이 날아오른 새가 폐곡선을 그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선들선들한 바람이 조붓한 돌담길을 따라 마을을 안내하듯 앞장선다. 오래된 시골집이다. 귀향을 염두에 두고 잠시 머물 거처를 찾던 중이었다.

뒤란에서 불어오는 대숲 바람, 호박넝쿨 타고 오르는 낮은 돌담, 우물가 옆에 돌확이나 숫돌이 주인 잃은 빈집을 지키고 있다. 한때는 올망졸망한 자식들 앞세운 일가족이 등가죽 따뜻하게 살던 집이었으리라. 사람 냄새 들썩거리던 온기는 사라지고 시간의 덫에 걸린 풍경만 먼 산 뻐꾸기 울음처럼 휑뎅그렁 남겨졌다. 눈길 머무는 대문 옆 허청에 가지런히 놓인 농기구들이 눈에 띄었다.

조가비처럼 닳고 닳아 뭉툭해진 호미며 낫, 손잡이가 낡아 푸석이는 괭이와 삽, 헛간 안쪽에는 오래된 보습이나 쇠스랑도 동면하듯 웅크리고 있다. 사용한 지 오래되어 하나같이 쇠붙이마다 붉은 녹이 슬었다. 비록 낡고 오래되어 볼품없지만, 주인과 함께 평생 한 몸이 되어 살았던 삶의 도구들이다. 한 가족의 역사이고 주인의 생애가 그대로 읽히는 것 같다. 이제 모두 먼 세상으로 떠난 지금, 살아생전 주인이 쏟았던 새척지근한 땀내만 낙오병처럼 남아 침묵 속에 묵은 시간을 붙잡고 있다.

저 쇳덩이에 이끼처럼 달라붙은, 붉은 강낭콩보다 더 서러운 쇳녹이 처연하게도 보인다. 시간의 모서리마다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쇠의 부식은 또한 스산하고 처량하다. 불그죽죽한 녹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죽기 전에 피는 것이 꽃이라면, 차갑고 단단한 무쇠가 온몸을 불태워 열정을 쏟은 후에 비로소 꽃이 되는 것을 눈앞에 지금 보았다.

녹이 뱉어낸 쇠의 꽃, 마지막 제 목숨을 소신공양하는 듯 온몸에 불을 질러 붉은 융단을 펼쳐놓았다. 잎도 줄기도 없이 마냥 붉기만 한, 기름기 빠진 무쇠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生을 비워내고 있는 것일까. 향기 또한 인고의 시간만큼 비릿하고 시큼하다. 짐 진 삶의 무게를 버텨내느라 평생 단내 나는 통증만 꿀꺽꿀꺽 삼켰던 모양이다. 대뜸 꽃말이 궁금해지는 것은 웬일일까.

이제는 녹슬고 부식된 쇠붙이지만 처음에는 대장간 불내 풀풀 날리며 날렵한 자태를 뽐냈으리라. 세상 무슨 일이든 감당하려는 듯 당당하고 강단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마른 땅이든, 진 땅이든 주인과 함께하는 길을 두려워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밤낮도 없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척박한 농토를 일구느라 바윗돌에 온몸이 부딪쳐도 참고 견뎌냈으리라.

보릿고개를 이겨내고 생때같은 식솔들 목숨을 거두느라 고난의 세월을 주인과 함께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식구 배불리 먹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식들 도시로 보내 공부시킬 수 있을까. 오장육부를 떼어주고 뼈를 갈아 자식 몸에 붙여주느라 모든 것을 수고하고 희생한 땀내를 저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앉으나 서나 일밖에 모르는 지난한 삶에 지친 몸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만추의 낙엽 하나가 그 메마른 무게로 계절을 바꾸었듯이 작고 시커먼 쇠붙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내력을 가졌다. 녹진한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살이 빠져나간 자리에 쇠골이 깊어졌지만, 그들이야말로 특별하고 위대한 우리 부모들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온몸에 흙내가 물씬 밴 저 쇳덩이 하나하나가 삶의 전부이고, 생을 버텨낸 유일한 무기였을 그들의 노고가 눈앞에 그려진다.

저 쇠꽃은 희생과 헌신 뒤에 얻을 수 있는 영광의 빛이고 결이다. 비록 내 몸은 닳고 부서져 없어지지만,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뼈를 깎는 아픔과 고통을 참고 견뎌낸 땀이고 눈물의 결정체다. 그래서 쇠의 우담바라이고, 어둠 속에 반짝이는 염화시중의 미소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오체투지로 걸어온 저 쇠꽃이야말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천둥에도 꺾이지 않는 꽃 중의 꽃이다. 벌 나비 날아든 적 없지만, 그 어느 보석보다 빛나고 향기로운 꽃이다.

저 녹슬어 사라져가는 쇠꽃이 노인 얼굴에 검버섯을 보듯 슬프게도 느껴진다. 인생처럼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자연으로 회귀하는 일이다. 그러나 꽃이 된 녹은 또 내일의 씨앗을 함께 품고 있는 셈이다. 사라져간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탄생을 위한 눈부신 산화일지도 모른다. 원래의 본성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생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다행한 일인가. ‘사라진다’를 힘주어 읽으면 ‘살아진다’가 되는 것처럼 다시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제 세상을 등지고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저 쇠붙이들이 어쩌면‘녹’이 될 수도 있고 ‘꽃’이 될 수도 있는 경계를 생각해본다. 힘든 삶이라고 좌절과 포기로 손을 놓는 것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뒤에 얻어지는 결과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고통 없는 인생은 없을 것이다. 비록 쇠하여 없어질 몸이지만 삶의 끝머리가 녹이 아니라 꽃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살아볼 일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열정을 다해 노력하다 맞이하는 종말은 아름답다. 저 농기구의 붉은 녹도 대나무처럼 자기의 모든 힘을 다 쏟아내고 죽기 전에 단 한 번 피우는 무쇠의 열꽃이 아니던가. 생애 마지막에 피는 찬연한 꽃, 물과 햇볕 없이 소금기로 자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뜨거운 꽃이다. 호미는 호미대로, 곡괭이는 곡괭이대로 지나온 삶의 비문 같은 쇠꽃에 손을 얹어보면 가을 햇살 가득한 그리움이 손금 사이로 배여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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