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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관계망(關係網) / 김나현

부흐고비 2022. 6. 7. 08:25

주변은 관계의 망으로 엮여 있다. 사는 일은 거미줄처럼 연결된 망이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현상의 연속인 것 같다. 한해를 닫으며 몇 개의 새로운 망이 형성되었다. 좀 더 장기적인 결속을 다져보자고 뜻을 합친 결과다. 굳이 이탈할 명분이 없을 때 발을 슬쩍 걸쳐놓게 된다. 연륜을 더할수록, 사회 활동의 반경이 넓어질수록 이 망의 폭도 비례하여 확장되는 걸 실감한다.

이 망에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썩 친숙하지 않다거나 거리를 두게 되는 사이도 함께한다. 마음이 편하게 기우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언제 보아도 격의 없이 반가운 사이가 있고, 만나는 횟수가 뜸해지며 시나브로 멀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는 자신이 소속된 망에 대한 애착 여부가 아닌, 구성원 간 거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그 안에서 존재감을 갖거나 마음을 두는 비중의 차이는 다 제 하기 나름일 테다.

서로 같은 위상에 속해있지 않은 관계도 있다. 소비자와 판매자, 주인과 손님, 의사와 환자처럼 일상생활에서 관계 맺어지기도 한다. 이는 상업관계에서 신뢰가 밑바탕이 된 인간관계로 진화한 경우라 하겠다. 예사로이 하는 거래 안에서도 실은 보이지 않는 어떤 형성이 일어나는 것이다. 회비를 내는 일도 없고 만나는 날짜도 따로 없으면서, 필요에 의해 부담 주지 않고 지속하는 이런 교류야말로 끈끈한 관계라는 사실을 최근 들어 깨닫는다. 한 이웃을 황망하게 잃은 후 맴돈 생각이다.

그는 나와 연결된 무선망을 임의로 이탈했다. 사전에 양해라든가 예고 한마디 없었다며 섭섭했다. 일방적으로 관계 파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나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동네 내과의다. 주치의와의 느닷없는 단절은 내게 깊은 박탈감을 안겼다. 그가 의사와 환자 사이라는 연결고리를 툭 끊어버리기 전까지도 나는 그가 진료하는 내과의원에 다녔다. 종종 쓰린 속을 치료받고, 건강검진을 했으며, 자잘한 질병에 대해 상담했다.

큰 병원을 두고 동네 내과에 다닌 데엔 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작용했다. 내 몸을 맡기는데 의사에 대한 신뢰가 그 밑바탕에 깔렸어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 그 내과의처럼 편안하고 느긋하게 상담하고, 또 치료받을 주치의를 나는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그는 나뿐 아니라 세상 모든 관계를 훌훌 청산하고 홀연히 세상을 등졌다.

내가 속한 모임이나 단체의 모태는 거의 문학과 그 언저리다. 요즘은 규모가 크든 작든 본부를 인터넷상에 둔다. 그러다 보니 홈페이지 가입은 필수다. 가입한 카페나 홈페이지가 열개가 훌쩍 넘는다. 날마다 일일이 클릭해서 상황을 다 돌아볼 시간도 여력도 없다. 이따금 가입 목록을 펼쳐놓고 정리대상을 물색한다. 하나씩 짚어 봐도 가지치기할 대상이 없다. 관계망이라는 특성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냉큼 발 뗄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소속감과 연대감이 그들과 나를 잇는 끈이 되어준다.

이는 모바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휴대폰주소록에는 시시로 전화번호가 추가된다. 너와 나의 관계로 저장되는 번호보다는 생활과 관련된 번호가 많다. 한데 이미 오래전에 볼일이 끝난 번호도 전화 속 깊숙이에 저장되어 있다. 음식 맛이 괜찮은 식당이라든지 별 교분이 없는 회원, 한때 다녔던 평생교육원 번호나 콜택시 번호 등등. 벌써 관계가 종료되었음에도 선뜻 삭제하지 못하고 미루적댄다. 다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여지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곧 관계 정비에 들어갈 공산이 높다. 이처럼 나도 누군가에게서 별 의미 없이 남겨지거나 지워질 것이다.

관계의 생성 이면에는 소멸도 따른다. 가정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사위가 생겨 장모가 되었고, 첫 손자가 세상으로 와 할미라는 호칭을 달았다. 그러나 기쁜 변화만 생긴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은 새 생명을 보낸 대신 나와 관계 지어진 아버지의 존재를 세상에서 거둬갔다. 이 두 사람은 한 관계망에 속했으면서도 서로 마주친 적 없다. 달포 사이로 이승과 저승으로 세상을 갈라 서버렸으므로. 요람과 무덤을 달포사이로 왕래하며 세상 인연이라는 것을 새겨보기도 했다.

관계망은 진화하기도, 퇴화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한다. 퇴색한 사이는 기억 저편으로 묻히고, 새로운 사이가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는 고리가 된다. 그러나 뭐니 해도 서로에게 쌓인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묵은장이 깊고 오묘한 맛을 품듯, 사람 간에도 함께한 시간이 서로 무던히 이어줄 것이므로.

나는 오늘도 관계망 속에서 이런저런 신호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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