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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누가 살았을까 / 한시영

by 부흐고비 2022. 6. 9.

자박자박 흙길을 걷는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아스팔트와 달리 발에 닿는 느낌부터가 부드럽다. 편리성에 익숙한 도시의 포장도로가 아닌 시골길이 비구름에 쌓여 운치를 더한다. 경계를 지으면서도 휘어져 도는 유유한 토석담이 고목을 끼고 마을을 잇는다.

산청 단성면 남사 예담촌. 가세를 짐작게 하는 고택의 기와 끝에 봄비가 떨어진다. 비에 젖어 더욱 검어진 기와색이 고색창연하다. 세력가의 집 앞에 심어졌다는 부부회화나무가 서로에게 기대어 바람의 성미를 아는 옛사람들의 지혜라는 듯 정갈한 대문 입구를 지키고 있다. 달빛 스며들었을 툇마루 빛바랜 창호가 유구하게 살아온 사람 이야기를 무언으로 전한다.

집은 한자로 집우宇 집주宙라 쓰고 두 글자를 합쳐 작은 우주라 한다. 집은 단순한 비바람을 막아내고 의식주를 영위하는 기능적 공간만이 아니다. 태어나서부터 천명을 다할 때까지의 깊은 정신이 숨 쉬는 원형의 공간이다. 대대손손 무수한 사람이 들고 났어도 가문의 질서가 고스란히 뿌리내리는 사랑 터이다.

버석하게 말랐어도 정씨고가 사양정사 대청마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 꼿꼿한 선비의 위용 같다. 몇백 년 세월을 거친 나무에서 재생의 생명을 느낀다. 정신과 마음에 담긴 뜻을 풀어 현판에 새긴 주인의 팽팽한 직심直心이 보인다. 제 색 지워진 문살과 낡은 마루를 만져 본다. 쓸어내고 닦아내며 먹고 자고 부대끼며 살 부비고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양반이나 평민이나 다를 바가 없으리라. 거칠게 골 파인 주름 같은 마루 틈서리에서 풍상의 세월이 닿는다. 방을 들여다본 것도 아궁이에 불을 지핀 것도 아닌데 노랗게 콩물 먹인, 구들장 달궈진 뜨끈한 아랫목이 눈앞에 그려진다.

사실 나는 무서운 기억으로 오래된 집 가까이에 가는 걸 꺼렸다. 어릴 적 친구 집 마당에서 놀다 지붕 위에 똬리를 틀고 앉은 세상에서 제일 클 것 같은 흰 구렁이를 봤다. 아이들 아우성에 친구 할머니가 뛰어나왔다. 할머니는 얼른 쌀 한 대접과 물 한 그릇을 떠다 항아리 뚜껑 위에 올려놓고 무언가 주문을 하며 연신 절을 했다. 할머니의 지극한 지성이 통한 것일까. 머리를 빳빳이 곧추세우고 마당 아래를 한참 내려다보던 구렁이는 순간에 똬리를 풀고 어디론가 스르륵 사라졌다. 이후 그 친구 집에 다시는 가지 않았지만 집을 지켜주는 구렁이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이젠 곳곳에 고택 기행을 다녀도 그런 무서움은 전혀 없다. 샤머니즘의 구전이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어도 각 집마다 수호신이 가정을 지켜주고 보호한다는 믿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가통을 이어가는 근본과 가족들의 길흉화복을 비손하는 정성은 위난의 시대일수록 더 간절했을 것이다. 조상을 섬기고 영생을 돕는 존재로 성주처럼 구렁이는 집 안팎을 지켜주는 의지의 가신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 사는 모습도 고택의 이모저모도 바뀌었다. 우물은 상수도로 아궁이는 가스로 식솔 떠난 호젓한 집으로 많은 것들이 사라져간다. 그러나 아직도 바뀌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은 가풍의 명맥을 유지해 가는 고택 그대로를 보존하며 지켜가는 것이다. 그것이 기둥이다. 기둥마다 사람의 곧은 기개와 학풍의 향취가 묻어난다. 급물살 같은 변화의 세파 속에서도 굽이치는 옛길과 욕심 보이지 않는 돌담 골목의 폭과 둥구나무의 품은 그대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 아래서 자연에 순응하는 품위가 겸양의 미덕을 가르친다. 깔끔한 단순함이다. 바람이 담을 넘나들고 앞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대문 안으로 들린다. 대청마루에 앉아 일필휘지 난을 치고 곡차 잔 기울이던 올곧은 선비가 보고 싶다. 선비의 한적한 풍류에 화답하듯 쪽문 건너 마른 댓잎 사운댄다.

새순 발갛게 물 올리는 목단 꽃봉오리, 달빛처럼 벙글어 온 마을 비춘다는 목련나무. 단아한 정원의 이른 봄이 꽃사태 날 그날을 초연히 기다리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 집의 간격과 각도, 꽉 채우지 않은 빈 마당,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맞배지붕, 사람의 온기 전하듯 화선지에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글귀, 천 년 먹의 흔적이 세도가의 곧은 결기로 집을 지킨다.

산간마을 고즈넉한 고도 따라 걷는 마음 적요하다. 유유자적 느리게 걷다 보니 이 집 저 집 살림살이와 주인의 사연이 궁금하다. 담장 안 백토 다져진 너른 마당, 저 집에는 누가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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