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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끝물설設 / 한상렬

부흐고비 2022. 6. 30. 07:45

#불볕더위

그해 중국 상해의 여름은 대단했다. 낮에 이어 밤까지 여행 일정은 이어졌다. 수은주가 37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였다. 어디를 가든 흐르는 땀을 닦노라 시선을 제대로 두기가 어려웠다. 한낮 거리는 온통 웃통을 벗은 남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공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라半裸의 천국이 중국이다. 그들의 여름나기가 가히 대단하다.

지금 내가 다시금 그 공간에 있다. 연일 불가마 속이다. 체온을 뛰어넘는 불볕더위가 축축 늘어지게 한다. 사람만이 아니다. 옥상 정원에 가꾸어 놓은 화초며, 채소들이 불볕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리기 직전이다. 아무리 목을 축여주어도 그때뿐이다. 여름나기가 어려운 건 동물들 또한 매한가지다. 온몸을 털로 무장한 우리집 강아지 복실이는 그렇다 하고 면도한 듯한 복순이 마저 더위를 참지 못하고 헉헉거린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덥다. 지구 전체가 불타는 듯하다. 이러다간 한반도에 야자수가 가로수로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더위에 전기 요금 누진제가 더 우리를 땀나게 한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조차 마음 놓고 켜기 두렵다.

#눈물

이즈막 눈에 문제가 일어났다. 고희를 넘기도록 활자와 싸워온 나다. 책자의 교정지를 보면서도 아직 안경을 쓰지 않는 나를 두고 남들은 “선생님은 눈이 아주 좋은 모양입니다.”라고 했다. 속으론 나도 이 점만은 자랑스러워했다.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첨삭하고, 교정을 하고,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면서도 칠십이 넘도록 안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대문을 나선 내 시야에 행인의 모습이 그만 겹쳐 보였다. 잠시였지만 그만 나는 휘청거렸다. 별 일이 아니겠지 싶었다. 눈이 조금 뻑뻑하고 이물질이 끼어 있는 듯했다. 안구건조증이겠지 싶어 인공눈물을 넣기 시작했다. 눈을 학대한 일들이 떠올랐지만, 노화현상이려니만 가볍게 생각했다.

그 즈음 아내가 안과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녹내장이라 했다. 의료 지식이 없는 나는 치료가 불가능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좋다 하는 병원을 찾아 여기저기 다녔지만 신통하지 않았다. 혹여 실명할까 두려워하는 아내가 걱정스러웠지만 상태는 그만해 보여 그나마 다행이지 싶었다. 대학병원 안과는 언제나 시장통이었다. 진료시간도 엄청 길었다. 아내와 동행할 때마다 나는 아내가 진료를 하는 동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곤 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때가 자주 있다.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첨삭해 주거나, 문예지의 편집을 한다. 은퇴 이후 나는 문예지 출간과 출판, 두 곳의 고정적인 문학 강의를 맡고 있다. 여기에 간혹 특별강의도 한다. 어쨌거나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주로 컴퓨터의 자판을 읽는 일을 한다. 작업 중에 이따금 눈이 피로하면 정원을 한 바퀴 돌거나, 복실이 복순이와 잠시 놀아주기도 한다. 그런데 잘 보이던 교정지의 활자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얼마 전부터였다. 활자의 식별이 어려웠다. 하지만 노안이 되었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올여름은 무던히 더웠다. 고장 난 에어컨을 수리하지 않고 선풍기에만 의존하는 여름나기가 만만찮았다. 나를 기다리는 작업들은 여름이라고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그보다 무의미한 시간 보내기는 내게 있어선 지옥이 아닌가.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선풍기 바람에도 불구하고 푹푹 쪘다. 중국에선 도로 위에 계란이 열기에 그만 반숙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활자를 보는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안구건조증에 시달렸는데 웬 눈물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미루던 검안을 서둘 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밀검진을 예약했다. 내 전언을 들은 내 강의를 수강하는 어느 제자가

나와 동갑인 친구가 어느 날 눈이 셔터가 내려오듯 착착 아래로 좁아지며 한쪽 눈이 닫히는 망막 괴사증에 걸렸다. 아직은 원인도 모르고 물론 고칠 수도 없어서 실명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한쪽은 정상이라서 불편 하지만 그래도 그냥 저냥 살아가는데 얼마나 기막힌 비극인가. 아들이 둘인데 둘째 아들이 의대에서 안과를 전공하여 지금은 A대 교수로 유명한 안과 의사를 하고 있어서 아들 덕을 보고 살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눈을 수술하는 의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어느 쪽에 의안을 했는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라 외모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얼마나 괴로운 삶일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 「설마의 늪」

 

이란 글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그의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녀의 염려를 짐작할 만했다.

한 주일 뒤에 있은 정밀검사 결과는 99%가 녹내장이라 했다. 그런데 왜 나는 미리짐작이나 한 듯 태연했을까. 아내에 대한 동병상련에서였을까. 부부가 함께 앓게 된 이 기막힌 현실이 눈물 나게 한다. 신체 계측을 하던 간호사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몸무게와 허리둘레가 많이 빠지셨네요?” 축하받을 일이다. 그런데 그게 축하받을 일인지 의문스럽다. 무더위에 얼마나 지쳤는지 무려 4킬로나 가벼워진 게 진정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다. 일단은 몸이 가벼워졌다는 사실이 나를 잠시나마 기쁘게 한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는 아름답지만 속물적인 여인 데이지의 남편이자 개츠비의 연적인 톰 뷰캐넌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매년 여름이 더 더워진다.”는 그의 불평.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뜨거운 여름은 살인의 클라이맥스였다. 지구온난화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전인 1925년의 일이니 선경지명이 있었던가. 그래서인가. 금년 여름은 달궈진 지표보 다 더 더운 사건 사고들이 즐비했다. 무더위와 홍수로 지친 지구촌의 모습이 내 모습과 연접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학상 자판을 두드린다. 활자가 어른거린다. 나는 잠시 멈추고 눈물을 넣는다. 내 몸 여기저기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가 보다. 나이 든 증좌라고 말하기엔 왠지 서글프다. 나는 지금 끝물로 가고 있는가.

#끝물

태양의 열기가 모든 걸 녹여버릴 듯한 기세다. 어제는 영천이 최고기온 39.6도, 인천은 35도를 기록했다. 오늘도 경주는 39.2도, 경산은 40.3도 라고 한다. 한여름 경주 양동마을의 무더위를 체험했던 나로서는 그 더위 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한다. 어쨌든 폭염특보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비도 내리지 않아 옥상 정원의 식물들은 축 늘어져 있다. 물을 주어도 그때 잠시뿐, 목마름을 축이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열매는 익어가고 있다. 호박 몇 주를 심었건만 이파리를 무성하게 달 았어도 성한 열매가 없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매달렸는가 싶어 희망을 걸어보았건만 그런 내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열매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그중에 단 하나만이 경우 생명을 보존하여 머리통만 하여 그나마 정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볕더위에 화상을 입은 고추는 채 크지도 못하고 빨갛게 타들어간다.

그 옆으로 철늦은 오이 하나가 가느다란 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이미 다른 형제들은 수확이 끝난 연후다. 뒤늦게 매달린 녀석은 더위에 지친 듯 온몸을 비틀어 2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며칠이 지나도 그 모양 그대로 더 자라지도 않는다. 끝물인가 보다. 글자 그대로 끝물은 그해 맨 마지막으로 나는 것을 이른다. 한창 수확기엔 탐스럽고 탱탱하던 열매가 끝물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지고 모양도 이상해진다. 이때는 열매의 싱싱하던 식감도 사라지고 무미無味한 상태가 되어 물컹거리거나 탄력을 잃고 만다. 예전 어르신들은 이때쯤이면 “이젠 끝물이네.”라며 혀를 끌끌 찼다.

끝물에 맺힌 열매는 초라하다. 흐드러지던 절정기의 꽃은 예쁘다. 만물이 그러하듯 때를 맞추어 자신을 모두 드러낸 이는 아름답다. 생명을 바쳐 자신의 일에 몰두한 이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하지만 적당히 손을 놓아버린 끝물에 맺힌 열매는 초라하다. 그래 끝물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끝물 속에는 꽃 피고 잎이 나고 열매 맺기까지의 지난 역사의 과정이 오롯이 남아 있다. 알맞은 때에 가지치기를 해 주고 적당히 열매를 훑어 주고, 적당히 벌레를 잡아주는 등 손질을 해 주었다면 끝물도 상대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았으랴.

거울에 비친 낯선 얼굴을 들여다본다. 젊음은 어디로 가고 하얀 머리터럭이며 주름진 얼굴이 가득하다.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보다는 살아갈 날이 많은 사람의 모습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말을 누가 부인하랴. 그래 꽃이든 과일이든 아니 사람에 이르기까지 끝이 있게 마련이요, 그 가는 길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섭리인가 한다. 하여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그러니 슬퍼할 일만도 아니리라. 지금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예서 무엇을 더 바라랴. 가르치는 일에 소임을 다 했고 작가로서의 내 소명도 다하지 않았는가. 내 77권의 저서에 무엇을 더 보태랴. 그러니 이제 선택과 집중에 욕심과 거품을 거두어내고 진정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에 남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련다.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끝물은 전성기가 있어 도래한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마지막 가는 길에 처절한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음을 감지하라. 끝물도 생애의 주기인 것을…….

#에필로그

며칠 후면 말복이다. 그러면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도 조금씩 물러날 것이다. 염천의 여름도 가을에 자리를 내어주고, 가을은 곧 다가올 겨울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지 아니한가. 젊음이 영원할 수 없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열매를 맺고야마는 끝물 앞에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읽어 낼 것이다. 비록 겉모습은 초라해 보 여도 그 안엔 희생과 헌신의 발자취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되리라. 이렇게 끝물 타령을 하다 보니 나 역시 나이 든 것을 속이지는 못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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