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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신이 강건한 것도 아니다. 농기구 중에서 가장 왜소하고, 인물로 따지면 꾀죄죄한 것이 어디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게 없다. 성품마저 온순하니 창고 속에 있을 때는 있는 줄 모르게 구석에 처박힌다. 남들이 자리 다 차지한 뒤 겨우 궁둥이 붙일 곳을 찾아 숨어든다. 욕심이란 말도 모르고 그냥 차분할 뿐이다. 옆 친구의 큰 키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에 만족하며 더 이상의 중책을 꿈꾸지 않는다. 허접스러운 일만이 자신의 몫이라 해서 투덜거리거나 원망하는 법도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주 미천하다는 것을 알기에 늘 자족하며 살아간다.
그는 대장장이의 뜨거운 담금질 속에서 태어났다.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화덕 속에서 견딜 때는 왜 그리 뜨겁던지. 풀무가 숨을 내쉴 때마다 치솟던 열기에 가슴속 정열은 다 타버렸다. 모루 위로 끌려 나와 끝없는 메질도 당하였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숱하게 얻어맞다 실신하면 찬물 속에 집어던져 깨우는 물고문도 받았다. 이와 같이 갖은 고통을 감내했으니 어디 제 성미가 남아 있겠는가. 겨우 남은 성깔은 슴베로 감추고 자루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도 죽은 듯이 입 다물고 사는 데는 그만의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호미는 희원하는 바도 없다. 진즉 포기하고 땅만을 바라보며 일만 한다. 그것이 모루 위에서 얻어터지며 터득한 세상살이의 지혜다. 굳이 낯을 낼 수 있는 일이라 하여 넘보는 경우도 없다. 허접스럽더라도 일만 있으면 그게 자신의 복이려니 여긴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잊는 방법으로 늘 손에 일을 달고 산다.
옆의 친구들이 시원하게 큰일을 한다 하여 속상해 할 일이 아니다. 자신은 한 줌의 흙을 움직이기 위해 몇 번을 꼼지락거리더라도 삽과 곡괭이의 능력을 시기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복이고, 자신이 가진 복은 오로지 작은 것뿐임을 잘 안다. 다른 친구들처럼 뻗댈 줄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한 번도 허리를 세워 서 본 적이 없다. 늘 낮은 자세로 차분히 세상과 마주한다.
그의 이런 태도는 주위에 이미 알려진 바라서 누구든 그와 정담이라도 나누려면 앉아야 한다. 키가 큰 친구가 왔다 하여 일어서는 법이 없다. 또 앉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성품을 알기에 같이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게 한다. 아무리 나대던 사람이라 해도 그의 곁에 오면 온순해지고 차분하게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역마살이 낀 친구라 해도 그를 만난 뒤로는 궁둥이를 땅에 붙이고 만다. 투정부림이 없이 차분히 앉아 잔일부터 시작한다. 옆에서 그를 바라보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한다. 자그마해도 큰 행복이 됨을 그는 익히 알기에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지혜로움을 알기에 지구상의 모든 농기구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꼽는다. 풀을 뽑을 때나 깊이 박힌 돌을 제킬 때에도 요긴하다. 비록 작아도 치워야 할 것들을 만나면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는지…. 남다른 재주가 있다. 이 큰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활용한다. 호미는 자신이 놓인 처지를 받침목으로 하여 세상을 들어 올린다.
이처럼 주변의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니 제 몸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세상을 다 내려놓았다 하여 욕망까지 송두리째 없는 것은 아니다. 의지로 자루 속에 꽁꽁 묶어서 박아 놓은 것이다. 허구한 날 참다보니 속에서는 불이 난다. 아무리 슴베에 녹이 슬어도 뾰족함은 남아 있다. 늘 인내하려 노력하지만, 지나치면 덮고 있던 자루도 제키고 주위를 놀라게 한다.
아내는 오늘도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간다. 나야 삽이나 곡괭이를 들고 골을 치고 두둑을 만들고 작물을 심지만, 아내는 언제나 제초는 자기 몫이라며 퍼질러 앉아 호미를 놓지 않는다. 잡초를 뽑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하는 작업이 성과는 없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오금팽이가 저려오고, 심하면 등때기가 말린다. 제발 그만 두라 해도 뿌리치며 괜찮다만 되뇐다. 한 수 더 떠 잡초를 뽑으면서 결실의 열매를 헤아리는 아내. 양에 따라 나누어줄 곳이 늘어난다. 아들네, 딸네, 시누이네, 시동생네, 교우집, 이웃집…. 내 손으로 가꾼 채소를 자식들은 물론 형제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일념은 아무리 호미를 빼앗으려 해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무릎관절은 진즉에 탈이 났지만, 수술 기회를 최대한 늦추는 게 좋다는 정보를 철저히 신봉하며 호미를 쥐고 있다. 수술은 늦추더라도 심한 일은 삼가야 했는데 전혀 아니다. 집안의 대소사가 자신 없이는 안 되는 듯이 앞서 나간다. 결국 두 해 전에는 난데없이 회전근개가 파열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어깨 수술을 먼저 하고, 다음 해엔 무릎 관절 수술을 하였다. 두 번에 걸친 수술은 지난하고 힘든 것이었으나 번번이 아내는 병상에서 빨리 일어섰다.
오늘도 아내는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선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밭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피곤하여 누워 있다가도 몸이 땅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며 호미를 잡는 여자. 그게 아내다. 아프다 내색 한 번 없이 밭으로 나서지만 저녁마다 잠꼬대처럼 신음하는 아내를 지켜본 사람은 안다.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일 욕심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욕심이 그녀에겐 행복이란 것을 알기에 차마 더 이상 막지를 못한다.
아내와 호미는 언제나 한 몸이다. 아내가 그토록 호미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동병상련 같은 것은 아닐까. 모루 위에서 두들겨 맞으며 태어나 일만 하며 살아가는 호미나 천덕꾸러기처럼 홀로 크고,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갈무리하던 여자. 인고의 세월이 이 둘을 꽁꽁 묶어놓은 것은 아닐까. 거기에 가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한 스푼 얹어진 것일 테지.
비를 피해 헛간 시렁에 몸을 걸치고 있는 호미를 바라본다.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은 불만과 욕심을 슴베에 끼워 숨긴 채 조용하기만 하다. 저렇게 다소곳이 있어도 밖에서 일만 있다 하면 맨 먼저 뛰쳐나올 호미. 그 호미가 오늘따라 애처롭게 내 시선을 잡는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이것이 자신이 갈 길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굳게 믿고 있는 호미.
누군가 호밋자루를 쥐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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