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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요행수 / 백남일

부흐고비 2022. 7. 22. 07:44

내 신접살림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금호동 산등성이, 그것도 셋집 단칸방에 틀었다. 자고새면 물통을 들고 동네 초입 저지대에 있는 공동 수돗가로 내달아야만 했는데, 그때 턱밑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강물은 숨찬 갈증을 풀어주곤 했다. 사는 일 그렇게 고되고 몸에 부쳤어도,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풀었기에 늘 긍정의 몸짓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아귀차게 엮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만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셋째 막둥이가 태어나던 그 해, 오매불망 그리던 새집 대문간에 내 이름 석 자의 문패를 달 수 있었다. 비록 삼간 슬래브 서민 주택이었지만, 두 다리 쭉 펴고 평생소원이었던 내 명의의 주택에 몸을 눕히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여우도 편히 쉴 수 있는 감춰둔 굴이 있고, 허공을 나는 새도 내려와 앉을 둥지가 있다지 않는가.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사람살이에 집 없는 설움 같은 게 또 있을까?

요즘은 허리띠 졸라매고 죽자사자 일해도 도심에 들어가 터를 잡는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약삭빠른 투기꾼들의 극성에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니, 영세근로자의 저축으론 내 집 장만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진배없다.

근자의 토지주택공사 임직원들의 개발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 행각이 만인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 까닭은 노력 없이 떼돈을 거머쥐려는 마음보가 얄미워서일 게다.

옛사람들은 땅을 모태母胎로 생각했다. 대지는 오곡백과를 태어나게 하는 신성한 자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삶의 필수조건인 의식주의 바탕이 되는 땅은 사람이 만들어낼 수가 없는, 그래서 상품이 될 수 없는 자연이다. 오죽했으면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상품이 아닌 땅을 상품화한 부동산은 허구 상품이라고 잘라 말했을까.

현하 우리 사회는 불로소득의 회오리에 휩싸인 태풍의 눈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작년 말 경실련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3년 동안 아파트 값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액을 493조로 추정했다.

과거 70년대의 압축성장과 개발경제, 그리고 외환위기 등의 여파로 축적된 경제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그 결과 자산 소득이 근로 소득을 앞지르는 불건전 경제구조가 형성되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근대사회는 노동과 능력의 가치 위에 세워진 건전한 사회풍조였다. 그래서 노동의 신성함과 인간 본연의 근면성을 고무시켜 밝은 미래상을 기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급한 일확천금의 꿈은 투기열풍으로 변질되어 노동의 가치를 외면하고 말았다. 국부론을 제창한 아담 스미드조차도 불로소득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세금으로 환수하여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데에 선용해야 된다고 역설하지 않았던가.

한국의 주거공간은 단독주택에서 공동 주거공간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핵가족화의 추세에 의해 단독이 침체된 반면, 우후죽순 격으로 고층 아파트 단지가 난립하여 이제는 그 비율이 60%를 상회하고 있다. 1인 가구 수 또한 32%로 과거 대가족 제도의 흥성임은 까마득한 날의 전설 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초고층 아파트의 날갯짓이 물경 30억 대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주택 청약부금에 가입한 월세 살이 신혼부부가 억 소리를 내지르며 주저앉고 마는 기막힌 현실이다. 그래서 이들은 복권과 주식, 그리고 비트코인과 같은 투기성 가상화폐에 몰입하고 있다.

맹자직문盲者直門이란 말이 있다. 장님이 어쩌다 문 안으로 바로 들어갔다는 비유인데, 요행수僥倖數의 허상을 쫓는 허튼 마음을 경계하라는 의미렷다. 우리가 일하지 않고도 많은 재화를 얻는 횡재橫財가 있다면, 그 이면에는 피땀 흘려 일하고도 빈손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허탈에 빠진 군상이 있음을 유념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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