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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큰둥한 첫 만남이다. 왕방울 눈을 지닌 감실부처를 건성으로 일별하고 돌아 나오는 뒤통수가 간지럽다. 향토 사학자 수준으로 설명하는 친구의 유식에 주눅 들어 딴청 부린 것이 부끄러워 발길을 멈춘다. 뒤돌아서 두 손을 모은다. 감실 안을 비추는 햇빛에 반사된 희미한 미소가 찌뿌둥한 마음 근육을 풀어준다. 민망한 여운이 오래 머문다.

​ 절 마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전각 안쪽을 삐끔삐끔 들여다보고는 뜨락만 어슬렁거렸다. 찰나를 견디지 못하는 삿된 생각이 들락거리니 낯부끄러운 염치에 법당 주위만 맴돌았다. 남의 손에 이끌려 까치발로 들어가서도 지은 업의 무게에 눌려 조아린 육신을 일으킬 힘이 없음을 핑계 삼았다. 불교 경전에는 문외한이라 석가모니는 고사하고 나무아미타불의 뜻도 관심 밖이었으니 부처님 앞자리는 늘 좌불안석이었다.

​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때가 있었다. 보증 서준 친구의 부도에 삶이 통째로 휘청거렸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나라의 부도가 겹치며 기어이 가정까지 주저앉혔다. 암담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가슴속에 원망과 분노만 이글거렸다. 사람 좋아하는 성격 탓에 늘 소란스럽던 주위는 적막이 감돌고, 말을 걸 사람도 걸어주는 사람도 없어졌다.

​ 외로움이 사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가족을 볼 낯이 없어 밖으로 돌아다니며 몸부림칠수록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세상과 단절된 아찔한 고립감과 사나워진 마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고난과 결핍을 삶의 축복으로 바꾸는 역설을 증명하고 말겠다는 오기도 일었다. 무릇 몰락한 폐허에서도 희망은 싹튼다고 하지 않았던가. 코를 찌르는 인간의 악취를 걷어내고, 매분 매초 천변만화하는 현실에 방치된 자식의 삶을 역성들고 순환시켜야 한다는 구실을 찾아냈다.

​ 도시락을 싸달라는 부탁에 꼬치꼬치 캐물으며 불길한 기색을 보이던 아내가 문화재 답사기 책을 보더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밥과 술로는 채워지지 않는 심한 허기를 메우고 싶었다. 첫 번째로 선택한 곳이 경주 남산 불곡의 감실부처이다. 고립무원의 터에서 고개를 내민 오래전 여운이 머릿속 얼룩을 닦아내 주리라는 희망을 안고 길을 나섰다. 1천 년을 넘게 바위 속에 갇힌 모습에서 동질의 안도감을 얻어 위안 삼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허세만 부리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처지를 하소연하며 위로를 동냥하기 위해 기웃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제행무상(諸行無常)하다 설파하고는 당신은 오랜 세월 상(常)으로 앉아 있는지를 따져 볼 심통도 이기죽거렸으리라.

​ 후세 사람들이 붙였다는 부처 골이라는 명성에 비하면 길은 소박하고 정겹다. 사천왕처럼 호위하는 조릿대 사이로 오목하게 조성된 노천 법당에 들어선다. 부처님을 둘러싼 댓잎에 서걱이는 비바람도 시시각각 변하고, 감실 안의 희미한 여명도 조금 전 밝은 기운이 아니다. 언제나 푸르게 보이는 주위의 소나무도 철 따라 잎은 피고 진다. 누군가 빗속에 놓아둔 과일 차반이 처연해도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수더분한 표정은 한결같다. 그 새로운 슬픔에서 지난 슬픔을 위로받고, 영광의 순간도 영원하지 않다는 깨달음과 고통의 시간 또한 지속되지 않을 거란 믿음을 얻는다.

​ 서산을 등진 바위에 자리 잡은 것을 보면 아미타불이라 짐작해 보지만, 자신은 없다. 왼쪽 발치에 용케도 자리 잡은 두 구의 백골을 품고 있는 넉넉함이 극락정토란 추측에 힘을 보탠다. 뒤편 언덕에도 여러 주검에 자리를 내어준 것은 소멸도 삶의 일부라는 설법인가. 범부의 궁금증에도 모르쇠 하며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수인으로 부처님을 알아보는 얕은 지식도 쓸모없다는 듯 소매 속으로 손을 숨겨 버렸으니 아미타불이란 상상이 머쓱하다.

​ 구전에 따르면 감실부처의 후덕한 모습이 선덕여왕과 닮았다고 전해진다. ‘선덕’은 불교에서 도리천을 주재하는 천신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후사가 없는 여왕은 왕권을 지키기 위한 결속과 의지처를 불교에서 찾았을까. 일찍이 자신을 도리천에 장사 지내라는 지기삼사로 신하들을 다스리고, 자신이 묻힐 낭산이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감실부처를 조성하여 사후에는 아미타불에게 귀의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임을 이미 깨닫고 풍화를 견뎌내는 바위에 영원불멸의 염원을 담아 남긴 것은 아닐까. 여왕 시절에 자장율사가 엮은 아미타경소가 아미타불 신앙의 시발점이 된 것도 마냥 우연일까.

​ 선덕여왕의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지귀 설화는 감실부처가 여왕을 닮았다는 구전에 무게를 더해준다. 여왕을 사모하는 미천한 신분의 지귀에게 금팔찌를 빼주며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아량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왕의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란 순환의 이치를 알아차린 예지이리라. 계급을 떠나 인간의 진정성을 대접해 주고 사랑의 유토피아를 이루려 했음이다.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지귀의 애타는 심사가 가슴에 사무치고, 너그러운 표정의 감실부처가 마음을 쓰다듬는다. 이런 여왕의 심성이 투영된 것이라면 앞으로도 언제나 지귀의 애정 행렬에 동참하여 염치없이 서방정토를 넘볼 참이다.

​ 깊이를 알 수 없는 바위에 자리 잡아, 도굴꾼들의 겁탈을 피했다. 덕분에 남산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할매부처’라고 불리지만, 밤에 보면 처녀처럼 젊게 보인다며 선덕여왕이 자신을 새긴 부처라는 전설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 마음을 다스리는 목전의 필요에 급급해 나선 길에서, 남루해진 심신을 일으켜 세운 제행무상이라는 원숙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영원한 행도, 불행도 없는 법. 감실부처의 한결같은 미소가 제행무상의 역설(逆說)이라는 촌철 같은 법문으로 파고든다.

​ *감실부처-정식 명칭은 ‘경주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이다.
// 제13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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