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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두루미 / 안병태

부흐고비 2023. 6. 30. 06:20

나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좋아한다. 목직하고 도톰하여 돈다운 맛도 맛이려니와, 그보다는 동전의 뒷면에 나를 닮은 두루미 한 마리가 창공을 날고 있기 때문이다. 푸른 숲 노송 위에 한 다리를 접고 서서 사색에 잠긴 두루미, 그 고고한 자태에다 나를 비교한다는 것이 가당찮은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그의 가냘픈 육신을 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외모만큼은 내가 그를 닮았거나 그가 나를 닮았거나 둘 중 하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저울에 올라가 본다. 바늘이 반 바퀴를 겨우 돌아가 멈춘다. 구십 근인가? 옷, 구두까지 몽땅 합쳐도 백 근이 못 되는 체중이다. 사반세기 전 인사기록카드에 기록했던 몸무게가 지금껏 변함이 없다. 허리띠를 새로 사면 삼분의 일쯤 잘라낸다. 그냥 두르면 두 바퀴나 돌아가기 때문이다. 시계 끈 역시 서너 구멍 더 뚫어야 망정이지 그냥 차고 다니다간 분실하기 십상이다. 먹는 것이 어디로 새는지, 더 이상 빠질 살이 없는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클라크 게이블이 비비언 리를 안고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는 장면을 보며 한숨을 쉰 적이 있다. 다행히 우리 집엔 그런 계단이 없다. 좀 무리를 하면 우리 집 '비비언 권'을 들어 올리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가까스로 들어 올렸다손 치더라도 문지방을 못 넘어가 떨어뜨리고 말 것이다.

나는 여름이 싫다. 모기도 밉고 더위도 귀찮지만 그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짧은 옷을 입어 나의 야윈 골격을 천하에 드러내기가 창피한 까닭이다. 당연히 해수욕장 가기도 꺼린다. 부득이 꼭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모시옷을 입고 간다. 풀대님 바람으로 바닷가를 거닐다가 다행히 인적 드문 바위 언덕이라도 만나면 거기 앉아서 멀리 수평선과 눈씨름이나 하다가 일행과 합류해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다. 내가 스스로 바다를 찾아가는 날은 폭풍경보가 발효된 날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바다, 거대한 멍석말이로 굴러와 해안을 때리고 부서지는 파도, 그 위용을 보기 위함이요, 대자연의 웅대함을 가슴에 담아오기 위함이다. 부실한 육신을 속살로나마 채워 보려는 눈물겨운 안간힘이 아니랴.

나도 총각 시절 한때는 살을 찌워 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간식을 즐겨라', '취침 전에 포식을 해 보아라' 주위에서 일러주는 비법대로 꾸역꾸역 먹어 보려 했으나 이미 어릴 적 보릿고개에 길들여진 소화기관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일찌감치 그 짓을 포기하고 말았다. 가친께서는 당신이 무능하여 제대로 못 먹여 키운 탓에 자식들 모조리 북어쾌를 만들어 놓았다고 자책을 하며 안쓰러워하신다. 엄마의 젖과 정이 일찍 끊겨 그리되었으면 되었지 어찌 젊어 홀로되신 그분만의 탓이랴.

어떤 자리에서 나보다 더 야윈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유유상종인가. 동포애가 발동하여 금방 서로 친해지고 만다. '마른 장작이 화력도 좋다', '야윈 학이 천 년을 산다' 이런 말은 풍신 좋은 사람이 야윈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거나, 야윈 사람들 스스로가 구차스럽게 지어낸 자위의 말이다. 화력이 약해도 상관없고, 천년까지 살 생각도 없으니 남들 보기에 아담할 만큼만 살이 좀 올랐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설마 나에게 클라크 게이블의 흉내를 내 보라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내도 처음엔 나의 풍채를 보기 좋게 만들어 볼 작정으로 불철주야 공을 들였었다. 그러나 내리 수 삼 년을 거두어 먹여도 별무효과라, '이젠 살이 찌려거든 찌고, 말려거든 말고, 마음대로 하려무나.'하고 두 손을 들어버렸다. 요지부동인 내 몸무게에 대하여 야속하다 못해 측은하게까지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 역시 그를 실망시켜 면목이 없고 무럭무럭 살찌지 않는 나의 신체 구조에 대하여 짜증이 난다. 그러나 온갖 괴상망측한 요리들과, 섭생에 대한 줄기찬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을 어디에 비기랴.

먹는 만큼 살이 불어난다고 그 좋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 크림 한 스푼이 겁나 깡커피를 마시는가 하면, 심지어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고 엄살을 떠는 사람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를 할래야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번은 어느 건물 삼 층에 '체중조절 상담 대환영'이라고 써 붙인 현수막이 보이길래 나도 체중을 좀 조절해 볼 작정으로 거기에 올라갔다가 망신만 당하고 쫓겨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거기는 체중 감량만 전문으로 상담하는 곳이었다. 과격한 율동으로 마룻바닥을 울리던 여인들, 갖가지 운동기구에 올라앉아 몸부림을 치고 있던 뭇 여인들은 나의 몸매가 신기한 듯 아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드디어 탈출구가 보인다!' '다이어트 완결편!' '비만이여 안녕~!' 이런 따위의 광고는 나를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여 매우 불쾌하다.

내가 자라 이 세상을 크게 밝히라고 조부님은 내 이름을 '명태(明泰)'라고 지었다. 그러나 지어 놓고 불러 보니 발음상 하자가 많다 싶었던지 본래의 뜻을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혹을 두 개 더 붙여 '병태(炳泰)'로 고쳤다. 그러나 노심초사 고친 보람도 없이 동무들은 나를 부를 때 그 혹을 떼고 '명태야!' '동태야!'하고 불렀다. 복모음 발음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조모님은 엉뚱한 곳에서 점 두 개를 빼버리고는 노상 '빙태야! 빙태야!'했고, 앞집 옆집 할머니들은 아예 점 같은 건 신경도 안 쓴 채 '벵태야! 벵태야!', ‘벙태야! 벙태야’ 하고 자기들 편한 대로 불렀다. 심지어, 왜국에서 태어나 늘그막에 건너온 아랫마을 ‘닙뽕 아제’는 왜인의 말투 그대로 “변태야! 변태야!”하고 남의 장래를 망칠 작정을 해 나는 그 양반이 우리 집에 오면 돌아갈 때까지 그 앞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저번 택배회사 배달원이 사무실 문을 열고 “안경태 씨 계십니까?”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그때부터 직원 사이에 안경태로 통하고 있거니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숙맥 같은 배역의 이름은 십중팔구 내 이름을 차용해 쓴다. ‘병태와 영자’가 공전의 히트를 치자 연이어 ‘병태시리즈‘가 쏟아져 영화계를 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그들은 돈방석에 앉았지만 나는 그 시절 내내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 유명세는 식을 줄 몰라 요즘 TV 드라마에도 어설픈 역할은 여전히 내 이름이 도맡는다.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내 이름만 들먹여도 우리 집 아이들은 나를 돌아보며 저희들끼리 키득키득한다. 세상을 크게 밝히기는커녕 이름부터 이 모양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으니 몸인들 온전하랴.

대중탕 욕조에 앉아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노라면 갑자기 코로 물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배수량이 많은 사람에게는 추가 요금을 징수하던지, 아니면 나의 요금을 할인해 주어야 공정한 거래 질서가 확립될 것이다.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장차 목욕 요금도 배수량을 기준으로 책정할 날이 오고 말 것이다.

버스를 타고 가노라면 모두 내 옆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편안히 갈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 명이 앉도록 설계된 뒷자리에 나 같은 사람은 일곱 명이 앉아도 자리가 남는다. 승객 모두가 나를 닮을 양이면 차량의 부속품도 덜 망가질 것이요, 정원도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요, 교통지옥도 많이 완화될 것이요, 그러다 보노라면 요금을 내리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요, 옷값 음식값도 내릴 것이요, 지구도 가벼워질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나처럼 야위었다간 문을 닫고 망하는 사업이 엄청 생겨날 것이다.

총각 시절 맞선을 적잖이 보았으나 대체로 저쪽 반응들이 시큰둥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나의 가냘픈 체격 탓이 아니었나 싶어 씁쓸할 때가 있다. 매파들의 말로는, 정작 당사자들은 나에게 적극 호감을 보이는 반면 오히려 그 어머니들이 기를 쓰고 반대를 하더라는 것이다. 하기야 딸의 팔자를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그들의 우려를 떨쳐버리고 나는 무사히 장가를 들어 이남 일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 병원의 침대에 누워 본 일 없고, 방위병일망정 국방의 의무를 필하였고, 봉급쟁이 삼십 년에 결근 하루 없었다. 불행히 팔자가 기박하게 풀린 딸이라도 있다면 그 모친은 두고두고 원망을 들을 것이다. 원망을 들어도 싸다.

'체격'과 '체력'을 구분 못하는 친구가 있다. 나만 보면 "체력은 국력인데, 어쩌고…" 중얼거리며 나의 체격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척, 동정을 하는 척하면서 은연중 제 하마 같은 부피를 뽐내어 나의 비위를 뒤집어 놓곤 한다. 하고 다니는 짓을 보면 저나 나나 국력에 별로 도움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내 두 벌 지어 입을 옷감을 한 벌에 거덜 내는가 하면, 내가 세 끼니 먹고도 남을 양식을 한 끼에 먹어치우며, 그 육중한 몸통을 눕히자면 침대의 면적은 또 얼마나 넓어야 하는가.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태어났거든 의식주 한결같이 국력 소모가 막심한 저의 체격을 돌아보고 부끄러운 줄을 좀 알아야지, 도무지 염치라곤 모르는 친구이다.

1992년 여름, 지구를 열광시킨 바로셀로나의 한국인, 올림픽의 꽃이라는 그 꽃을 조국에 바친 위대한 한국인은 나와 체격이 비슷한 젊은이였다. 나는 그런 동포들을 보는 맛에 산다. 사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사람들 중엔 왜소한 거인들이 많다. 야윈 것이 자랑거리는 못 되지만 그리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 듯하다. 미관말직 주제에 감히 쌍학흉배를 붙인 당상관 관복을 딱 하루 입어본 적이 있었다. 두루미 떼를 거느리고 초례청에 들어서던 날, 청실홍실 저편에서 원삼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볼을 붉히던 새색시, 족두리가 얹혔던 그 머리엔 어느새 흰 터럭이 솟고 있다.

야윈 두루미에다 억지로 살을 붙인다고 봉황이 되랴. 거추장스러운 군살을 더 붙여 떡부엉이가 되느니 차라리 타고난 모습 이대로 두루미의 친구로 남아 있고 싶다. 야위었으되 비굴하지 않으며, 배고프면 들판에 내려가 우렁이나 두어 개 주워 먹으면 그만인 두루미, 외모로나 천성으로나 나를 닮은 그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들과 어울려 창공을 비상하지 못하는 나는 푸르른 초원에 누워 오백 원짜리 동전이나 매만지며, 그들이 창공에 수놓고 있는 군학도群鶴圖를 바라보면 될 것이다. 내세가 있어 이 세상에 다시 올 기회가 주어진다면 녹음 짙은 골짜기에서 순백의 두루미로 태어나 그들과 어울려 한 천년 살아도 보고 싶다.

오백 원짜리 동전의 뒤 그림을 바꾸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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