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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구름 속에 머문 기억 / 조헌

부흐고비 2023. 6. 30. 06:06

'공(空)에 대해 많이 알아서 법명(法名)이 지공(知空)이냐’는 나의 물음에 미소 띤 얼굴을 붉히며 “아는 바가 너무 없어 지공이에요.” 샘가에 앉아 저녁 설거지를 하던 스무 살 남짓 비구니 스님은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했다.

반듯한 이마에 그린 듯 고운 눈썹은 정갈했고 파랗게 깎은 머리와 맑은 눈, 그리고 단정한 입 매무새는 수행자의 모습이 역력했지만 발그레한 두 뺨은 아직도 앳된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 학교 도서관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던 나는 무심코 집어 든 낡은 잡지 속에서 진귀한 사찰 하나를 찾아냈다.

<천불천탑(千佛千塔)의 가람 - 화순 운주사!>란 제목의 특집기사엔 사진도 여러 장 실렸었는데, 여기저기 늘어선 석불과 석탑의 모습은 놀라웠고 특히 산 중턱에 자리 잡고 누운 한 쌍의 거대한 와불(臥佛)에선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맺은 이 절과의 인연은 바로 그날로 배낭을 꾸리게 했고 다음 날 아침 첫 기차를 타도록 내 등을 떠다밀었다.

현재는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유명 관광지가 되어 있어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삼십여 년 전 내가 처음 찾아갔을 때 만해도 한낱 지방 오지(奧地)의 보잘것없는 작은 사찰에 불과했다.

운주사(雲住寺) - 구름 속에 머문 절은 과연 멀었다. 전라도 광주(光州)에 도착해서도 다시 서너 시간을 기다린 끝에 하루에 겨우 두 번 있는 운주사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너덧 명 승객을 싣고 완행버스는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흙길을 달렸다.

“여기가 ‘중장터’요, 예서 한 오리(五里)는 족히 걸어야 할 텐데. 아무튼 잘 가요.” 덩치가 남산만 한 운전기사는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때 중의 장이 섰을 정도로 번다했을 이곳은 지명(地名)과는 달리 집 몇 채의 작은 시골 동네였다. 저녁 해를 등에 지고 절을 향해 가는 내 발걸음은 갈수록 점점 더 무거웠다.

길가에 서 있는 대부분의 석불은 훼손이 너무 심해 머리가 없는 것이 태반이고 여기저기 흩어진 석탑의 부재(部材)들은 논둑과 담장에 쓰였거나 그저 무너진 채 사방을 굴러다녔다. 더더욱 당혹스러웠던 것은 부처님의 깨진 어깨나 잘린 무릎이 뒷간의 섬돌로 쓰이는 것을 보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안타까움은 절에 도착해서도 나지지 않았다. 낡긴 했어도 법당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는 일자(一字) 건물은 10도 이상 기울어져 위험한 상태였다.

추레하기 짝이 없는 이 절집엔 아흔이 넘은 노스님과 주지인 법진(法眞)스님, 그리고 어린 지공 등 비구니 세 분만 살고 있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퇴락한 절 형편을 걱정하는 나에게 주지 스님은 말했다.

“남 탓할 것 있나요? 모두 우리네 잘못이지. 천하에 무작스런 것들이 절 땅을 다 팔아먹었으니 부처님이 쓰러지고 탑이 무너진들 손써볼 방도가 있어야지요. 이곳도 요샌 평당 오천 원이나 해요. 젤 급한 것이 땅을 되사는 일인데 그게 만만치 않네요.” 법진 스님은 오십 초반의 여장부였다. 오랜 수행 탓인지 감정표현에도 여법(如法)한 절도가 있고 목소리도 우렁우렁 씩씩했다. 어떻게든 절을 복원해보고자 서울과 광주를 수없이 오가며 구걸하다시피 애는 쓰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스님! 여행 중이라 여윳돈이 많지 않네요. 겨우 땅 세 평 값이에요. 하지만 개울이 모여 큰 강이 된다잖아요. 부디 스님께서 맘먹은 일 꼭 이루시길 바랄게요.” 나는 서울 갈 여비만을 남기고 가진 돈 전부를 시주했다. 도착해서부터 줄곧 나를 짓누르던 참담한 마음이 주저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산속인데도 여름밤은 무더웠다. 난 꽤 늦도록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더위를 식혔다. “달빛이 대낮 같네요. 주지 스님께서 많이 고마워하세요.” 과일 쟁반을 들고나온 지공스님은 푸른 달빛에 젖어 흰옷을 입은 듯 눈부셨고 은은한 솔잎 향이 풍겼다. 깊은 산 풀숲에 핀 초롱꽃이 저리 아름다울까? 평상 끝에 앉아 다소곳이 과일을 깎는 스님의 모습은 잘 빚은 조각 같았다. 대체 어떤 연유로 저 고운 모습에 잿빛 옷을 입었으며 또 무슨 사연이 있어 저 나이에 이곳에서 사는 걸까? 쓸데없고 속된 내 궁금증은 뇌리 끝에 매달려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데 산사의 밤은 마냥 깊어 가고 별들은 쏟아져 내릴 듯 무수히 반짝였다.

이튿날은 아침부터 푹푹 쪘다. 식사를 마치고 떠날 채비를 하는데 큰절(송광사)에서 사람이 왔다. “구산(九山) 스님 법어집 스물 세 권이에요. 맞나 확인해 봐요.” 주지 스님은 일일이 세어보고 책을 받았다. 나는 구산 스님을 평소 잘 알고 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한 권 얻어갈 요량으로 조심스레 뜻을 비치자, 여유분이 없어 줄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스님은 잘라 말했다. 책 한 권 정도는 얻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가 오히려 더 무연했으나 도리 없는 일이었다.

나는 차 시간에 맞춰 절을 나섰다. 땡볕에 오리 길은 팍팍했다. 한참을 걸어 거의 다 왔을 무렵, 부르는 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뜻밖에 지공 스님이 숨을 헐떡이며 좇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책 드리고 싶어서요. 제 몫이에요. 우리 스님 그리 야박한 분은 아닌데 워낙 정확하셔서 그래요. 죄송해요.” 아직도 숨을 채 고르지 못한 스님의 얼굴은 진홍빛이었다. 책을 건넨 스님은 작은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곤 말없이 돌아서 절을 향해 걸었다. 무슨 일인지 한 번도 돌아보지 않는 스님의 모습이 길 끝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내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텅 빈 길 위로 하얀 햇살이 빗살처럼 쏟아져 내렸다. 불현듯 눈물이 핑 돌았다.

《석사자(石獅子)》- 운주사 비구니 지공 스님이 내게 준 법어집 제목이다. 난 30년도 넘은 이 책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며 종종 꺼내 본다. 읽어도 또 읽어도 꿈쩍 않는 돌사자는 아무 말이 없는데 언제나 그 책에선 결 고운 지공의 애틋한 마음씨와 내 무망(無望)한 그리움이 너울처럼 밀려 나온다.

‘그리움은 인간이 가진 숙명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데 다행스럽게도 나는 구름 속에 머문 기억 하나를 아직도 이렇듯 그리워한다. 그리고 가끔은 형편없이 낡은 운주사를 배경으로 지공을 만나기도 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내 젊은 시절처럼 아스라이 멀어진 추억의 저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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