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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두부 예찬 / 최민자

부흐고비 2023. 6. 30. 06:35

두부는 순하다. 뼈다귀도, 발톱도, 간도, 쓸개도 없다. 단호한 육면 안에 방심한 뱃살을 눌러 앉히고 수더분한 매무시로 행인들을 호객한다. 시골 난장부터 대형마트까지 앉을 자리를 가리지 않지만 조심해서 받쳐 들지 않으면 금세 귀퉁이가 뭉개지고 으깨진다. 날렵하게 모서리를 세워 각 잡고 폼 잡아 봐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제국이 몸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눈치다.

생살을 갈라도 소리하지 않고 날카로운 칼금에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슴슴하면 슴슴한 대로 얼큰하면 얼큰한 대로 주연이든 조연이든 탓하지 않고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그는 어둠의 집에서 막 출소한 젊은이에게 숫눈 같은 육신을 송두리째 보시하기도 한다. 괜찮다고, 지난 일은 잊으라고 저 또한 진즉 열탕 지옥을 견디고 환골탈태로 새로 얻은 몸이라고.

무미하고 덤덤한 두부가 세 살부터 여든까지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가리지 않는 음식이 된 것은 별스럽게 튀는 맛이 없어서일 것이다. 내세울 게 없기에 군림하는 대신 겸허하게 순응하고, 껍질이 벗겨지고 온몸이 으스러지는 가혹한 담금질을 견뎌냈기에 무른 듯 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뭉개지고 튀겨지고 시뻘겋게 졸여져 물기 다 빠진 짜글이가 되어도, 캄캄한 목구멍 너머로 저항 없이 순교해 뼈다귀도 발톱도 간도 쓸개도 되어주는 두부는 성자다. 진즉 열반한 목숨을 베풀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영혼이 되어주는, 고단한 중생들의 솔(soul) 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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