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률 시인 1958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90년 《한길문학》에 시를, 《동양문학》에 희곡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진도아리랑』, 『하늘산 땅골 이야기』, 『배고픈 웃음』, 『꽃동냥치』, 『국가 공인 미남』,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 등과 동화, 소설, 희곡집, 산문집 등 다수가 있다. 소설 『봄바람』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소설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은 고등학교 국어와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1996년 불교문학상, 2018년 아름다운 작가상을 수상했다. 택배 상자 속의 어머니 / 박상률 서울 과낙구 실님이동. 소리 나는 대로 꼬불꼬불 적힌 아들네 주소. 칠순 어머니 글씨다. 용케도 택배 상자는 꼬불꼬불 옆길로 새지 않고 남도 그 먼..
신발은 두 짝이 있어야 한다. 한 짝은 외롭다. 부부도 함께 있어야 아름답다. 헌신짝 버리듯 헤어지는 부모들의 결정으로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은 많이 아프다. 아이가 울고 있었다. 사흘 전 장날 엄마가 사다주신 리본 달린 꽃고무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 돌아간 복도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온 선생님은 딱했는지 학년마다 교실 앞 복도에 놓여있는 신발장을 같이 돌며 찾아보았다. 꽃고무신은 보이지 않고 닳고 닳아 찢어진 검정고무신 한 켤레가 남아 있었다. 새 고무신을 신으면 뒤꿈치를 깨물어서 살갗이 부풀고 벗겨져서 피가 났다. 그래도 참고 신었다. 밴드나 반창고도 귀했던 시절이었다. 뒤꿈치에 헝겊쪼가리나 종이를 접어서 대고 절뚝거리면서 걷거나, 신발 뒤를 꺾어 신고 며칠 다니다 보면 딱지가 앉았다..
봄빛이 고향집 화단에 피어있던 산매를 보내왔다. 연분홍빛 볼을 청 초히 숙이고서 부끄러운 듯 슬픈 듯 흔들리던 매화. 겹고광나무라고도 하고 산옥매라고도 한다는데 어쨌거나 나는 고향집 산매화가 참 좋았다. 요즘은 때를 혼동한 진달래 철쭉 벚꽃 산수유 튤립 장미 등이 시도 때도 없이 앞 다투어 피어난다. 달력이 제 구실을 못한다는 말을 듣다가 김수영 시인의 팽이( 中)가 떠올랐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는 시 구절. 몇 천 년 된 달력. 그 몇 천 년 사이 달과 지구 궤도에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꿈과 희망과 인류문명을 가능케 했던 달이 조금씩 조금씩 지구로부터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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