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습득 코너

곡목설(曲木說) / 장유

부흐고비 2008. 3. 17. 18:26

 

곡목설(曲木說)


이웃에 장씨 성을 가진 자가 살았다. 그가 집을 짓기 위하여 나무를 베려고 산에 갔는데, 우거진 숲 속의 나무들을 모두 둘러보았지만 꼬부라지고 뒤틀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산꼭대기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하였는데, 정면에서 바라보나 좌우에서 바라보나 곧았다. 장씨가 쓸 만한 재목이다 싶어 도끼를 들고 다가가 뒤쪽에서 바라보니, 형편없이 굽은 나무였다. 이에 도끼를 버리고 탄식하였다.

'아, 재목으로 쓸 나무는 보면 쉽게 드러나고, 판단하기도 쉬운 법이다. 그런데 이 나무를 내가 세 번이나 바라보고서도 재목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니 겉으로 후덕해 보이고 인정 깊은 사람일지라도 어떻게 그 본심을 알 수 있겠는가?

말을 들어보면 그럴 듯하고 얼굴을 보면 선량해 보이고 세세한 행동까지도 신중히 하므로 우선은 군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큰일이나 중대한 일에 당하여서는 그의 본색이 드러나고 만다. 국가가 망하는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가 자랄 때는 짐승들에게 짓밟히거나 도끼 따위로 해를 받는 일이 없이 오직 이슬의 덕택에 날로 무성하게 자란다. 따라서 마땅히 굽은 데 없이 곧아야 할 텐데 꼬부라지고 뒤틀려서 이처럼 쓸모없는 재목이 되고 말았다. 하물며 요즘 같은 세상살이에 있어서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물욕이 진실을 어지럽히고 이해가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천성을 굽히고 당초에 먹은 마음에서 떠나고 마는 자가 많다. 때문에 속이는 자가 많고 정직한 자가 적은 것을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장씨가 이러한 생각을 내게 전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대는 정말 잘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공자(孔子)는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자는 요행히 죽음만 모면해 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정직하지 못한 자가 죽음을 모면하고 살아가는 것 또한 요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이 세상에서 굽은 나무는 아무리 서투른 목수일지라도 가져다 쓰지 않는데,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도 버림받지 않고 쓰여 지고 있습니다. 큰 집의 구조를 살펴보십시오. 들보와 기둥, 서까래와 각목이 수없이 얽혀서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굽은 재목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면, 조정 대신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공(公)과 경(卿)과 대부(大夫) 그리고 사(士)가 예복을 갖추어 입고 궁전에 드나드는데, 그 중 정직한 도리를 간직하고 있는 자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굽은 나무는 항상 불행을 겪고, 사람은 정직하지 않은 자가 항상 행운을 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말에 '곧기가 현(絃)과 같은 자는 길거리에서 죽어 가고 굽기가 구(鉤)와 같은 자는 공후(公候)에 봉해진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굽은 나무보다 많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장유

'습득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요부(破窯賦) / 여몽정  (0) 2008.03.30
이옥설(理屋說) / 이규보  (0) 2008.03.20
매품팔이 / 성대중  (0) 2008.03.14
호민론(豪民論) / 허균  (0) 2008.03.11
유재론(遺才論) / 허균  (0) 2008.03.09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