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습득 코너

도앵부 / 이규보

부흐고비 2008. 12. 16. 08:17

 

도앵부(陶?賦)


내가 질항아리 하나를 가졌는데 술맛이 변치 않으므로 매우 소중히 여기고 아낀다. 또 내 마음에 비유한 바가 있어 이 부(賦)를 지어 노래한다.

나에게 자그마한 항아리가 하나 있는데 쇠를 두들기거나 녹여서 만든 것이 아니라 흙을 반죽하여 불로 구워 만든 것이다. 목은 잘록하고 배는 불룩하며 주둥이는 나팔처럼 벌어졌다. 영(?)1에 비하면 귀가 없고 추(?)2에 비하면 주둥이가 크다. 닦지 않아도 마치 칠한 것처럼 검은 광채가 난다.

어찌 금으로 만든 그릇만 보배로 여기랴. 비록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추하지 않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서 한 손에 들기가 알맞으며 값도 매우 싸서 구하기가 쉬우니 깨진다 하더라도 뭐 아까울 것이 있겠는가. 술이 얼마쯤 담기느냐 하면 한 말도 들지 않는데 가득 차면 다 마시고 다 마시면 다시 붓는다.

진흙을 잘 구워서 깨끗이 만든 까닭에 변하지도 않고 새지도 않으며 공기가 잘 통해서 목이 막히지 않으므로 따라 넣기도 좋고 부어 마시기도 편리하다. 잘 부어지는 까닭에 기울어지거나 엎어지지도 않고 잘 받아들이는 까닭에 계속 술이 저장되어 있다. 한평생 동안 담은 것을 따진다면 몇 섬이나 되는지 셀 수가 없다. 마치 겸허한 군자처럼 떳떳한 덕이 조금도 간사하지 않다.

아, 재물에 도취한 저 소인들은 두소(斗?)3와 같이 좁은 국량으로써 끝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쌓기만 하고 남에게 줄줄 모르면서 오히려 부족하다 하니 자그마한 그릇은 쉽게 차서 금방 엎어진다. 나는 이 항아리를 늘 옆에 놓고 너무 가득 차면 넘치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타고난 분수 따라 한 평생을 보내면 몸도 온전하고 복도 제대로 받을 것이다.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제1권>

 

  1. 귀가 있는 병 [본문으로]
  2. 주둥이가 작은 질항아리 [본문으로]
  3. 두(斗)는 열 되, 소(?)는 대그릇 두 되들이로 모두 작은 그릇인데, 짧은 재주와 좁은 도량(度量)을 지닌 소인을 ‘두소의 사람’이라 한다. [본문으로]

'습득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룡사 구층목탑  (0) 2008.12.18
착각  (0) 2008.12.17
단란했던 옛날 / 신익상  (0) 2008.12.12
사기 술잔 / 김득신  (0) 2008.12.09
연말모임 노래방 선곡표  (0) 2008.12.08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