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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리에 덮인 눈을 보고


계미년(영조 33년, 1762) 12월 22일에 나는 누른 말을 타고 충주(忠州)를 가려고 아침에 이부(利富) 고개를 넘었다. 그 때 마침 찬 구름은 하늘에 꽉 차 있고 눈이 펑평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눈송이가 비껴나는 모양이 마치 베틀 위의 씨줄과 같았다. 어여쁜 눈송이가 조용히 귀밑에 떨어져 은근한 뜻이 있는 듯하기에, 나는 이를 사랑하여 하늘을 우러러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산간의 가느다란 길이 제일 먼저 희어지고 멀리 보이는 소나무는 검푸른데, 푸른 빛깔이 흰 빛으로 물들려 하니 이것은 가까운 소나무임을 알겠다. 말라버린 수수대가 밭 가운데 서 있는데, 눈은 바람을 끼고 사냥하듯 몰아치니 쏴쏴 부르짖어 휘파람을 분다. 수수대의 빨간 껍질이 눈 위에 거꾸로 끌리니 저절로 초서(草書)가 된다. 나무가 여러 그루 섞여 있는데 암수 짝 지은 까치떼 예닐곱 마리가 한가로이 앉아 있다. 그것들은 부리를 가슴에 파묻어 눈을 반쯤 감고 자는 듯도 하고 자지 않은 듯도 하며, 혹은 조금 떨어져 또 부리를 갈기도 하며 목을 돌리고 발톱을 들어 눈을 긁기도 하고, 다리를 들어 옆에 있는 짝의 날개깃을 긁어 주기도 하며, 눈이 정수리에 쌓이면 흔들어 털고는 눈동자를 바로 하여 눈 날리는 모양을 보기도 한다.

가파른 언덕으로 말을 달리니(원문 누락) 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비스듬한 소나무가 어깨를 스치기에 손을 들어 다섯 닢(원문 누락) 씹어보니 향기가 맑았으며, 눈 위에 침을 뱉으니 흰 눈이 벽옥같이 푸르러졌다. 눈이 품 안에 쌓여 턱까지 차는데도 차마 아까워서 털지 않았다. 말머리로 오는 사람은 볼이 붉고 주름도 없는데, 왼쪽 수염은 그을음과 같고 오른쪽 수염은(원문 1자 누락) 눈썹도 또한 이와 같았다. 나는 크게 웃어 갓끈이 끊어지려 할 정도였다. 품 안에 쌓인 눈을 털어 말갈기에 쓸고는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원문 누락) 눈이 서쪽을 향하여 날기 때문에 눈은 오른쪽 눈썹 위에만 쌓였는데, 수염도 눈썹과 같으니 사람이 늙어서 흰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나는 수염이 없으므로 눈을 움직여 나의 눈썹을 치켜 보니 왼쪽 눈썹만 희다. 또 한 번 크게 웃다가 거의 떨어질 뻔하였다. 눈이 앞에서 불어오는데 앞으로 가니, 눈썹이 쉽게 희어졌다.

나무들이 우거진 곳에 쭈그린 암석이 곱사등이처럼 구부리고 있는데, 이마에는 흰 눈이 덮였지만 우묵하게 들어간 배에는 눈이 없어 살짝 거무스름한 것이 찡그리는 듯하니, 그 모양은 귀신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때로는 호랑이와 흡사하다. 이 때문에 말이 코를 불고 앞으로 가지 않는다. 마부가 소리를 내지르자 그제야 겨우 걸어갔다.

유연히 말 가는 대로 행한 것이 대략 70리로 두메가 아니면 들이었다. 나무를 찍는 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지는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 땅이 맞붙은 듯 어슴푸레한 것이 수묵(水墨)으로 넓고 출렁거리는 강물을 그려 놓은 듯하니, 뉘라서 이렇게 농말(濃洙)을 만들었을까.

평원(平遠)한 경색을 바라보니, 황혼의 강(暮江)과 안개 낀 물가의 모습이 홀연 두메와 들 사이에 펼쳐져 나로 하여금 의심하게 한다. 돛대가 은은하게 때로는 연기 끝에 나타나기도 하며,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쓴 노인이 고기를 메고 낚싯대를 끄는 듯, 은은히 비치는 마을 어귀에는 청둥오리가 울면서 빙 돌아 날아서 숲으로 모여든다. 저 멀리 능수버들 숲에는 햇볕에 말리는 어망(漁綱)이 흔들거린다.

나는 의아함을 견디지 못하여 마부에게 물었지만 마부도 나와 같았다. 다시 나그네에게 물었더니 나그네는 마부와 같이 빙긋이 웃는다. 이에 말을 채찍질하여 동쪽으로 나아가니, 눈앞에 펼쳐지는 앞서 있었던 강과 물가의 경관은 다름 아닌 황혼이 점점 어둠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또 돛대가 은은하게 보였던 것은, 허물어진 집이 장마를 겪어 기둥만 서 있는데 백성이 가난하여 지붕을 이지 못한 것이었다. 또한 노인이 도롱이와 삿갓을 차리고 낚싯대를 끌었던 것은 그가 두메에서 나오는 사냥꾼으로 물고기는 꿩이고 낚싯대는 지팡이며, 청둥오리는 오리가 아니라 검은 갈가마귀였고, 촌에 사는 백성이 짜 놓은 울타리가 종횡으로 되어 있어서 어망과 비슷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그네는 내가 잘못 본 것을 비웃어 웃었던 것이다.

이덕무(李德戀, 1741~1793)1

 

  1. 자가 무관(懋官)이요, 호가 형암(炯庵) ·아정 (雅亭) ·청장관(靑莊館) · 동방일사(東方一士) 등이다. 박학다재하고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서출이기 때문에 크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저서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가 있다. 이 글의 원제는 칠십리설기 (七十里雪記)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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