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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죽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들

부흐고비 2009. 2. 18. 18:19

 

죽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던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눈을 감았다. 이를 두고 선종(善終)이라 했지만 외신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의미하는 'die'나 'pass away' 정도로 표현했을 뿐이다. 반면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는 선종처럼 죽음을 이르는 말이 무척 다양하다. 죽은 사람의 종교나 신분 등에 따라 다르게 쓴다.

선종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타난 문헌은 장자(莊子) 내편(內篇)의 대종사(大宗師) 부문이다. 중국 고대의 대사상가였던 장자는 대지가 지닌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늙게 함으로써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죽음으로써 우리를 쉬게 한다. 그런 까닭으로 자기 삶을 잘 사는 일이 곧 죽음을 잘 맞는 길이다”(故善吾生者, 乃所以善吾死也)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선종과 의미가 비슷한 ‘선사(善死)’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역시 장자에 나오는 부분으로 선종을 의미한 말에 이어 “일찍 죽는 일에도 잘 대처하고 늙는 일에도 잘 대처하며, 시작하는 일에도 잘 대처하고 끝맺는 일에도 잘 대처하면(善始善終) 사람들이 그를 본받게 된다”고 했다. 문맥상 선종이 죽음과 연관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누가,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말이 동아시아 천주교에서 널리 쓰이게 됐다.

윤회를 믿는 불교에서는 죽음을 뜻하는 말이 한결 다양하다. 반니원(般泥洹)과 반열반(般涅槃)을 줄인 말인 니원(泥洹)과 열반(涅槃), 입적(入寂), 원적(圓寂), 멸도(滅度) 또는 멸(滅), 적멸(寂滅) 등이 모두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성직자나 교인의 죽음을 두고 기독교에서는 소천(召天), 선(仙)을 추구하는 도교에서는 선화(仙化)나 승선(昇仙), 등선(登仙), 시해(尸解) 등으로 표현한다.

역사상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죽음을 뜻하는 말도 많았다. 중국 고대 의례를 모은 예기(禮記)의 곡례(曲禮)편에 따르면 천자는 ‘붕(崩)’, 제후는 ‘훙(薨)’, 대부(大夫)는 ‘졸'(卒)’, 사(士)는 ‘불록(不祿)’이라 하고 일반 백성은 ‘사(死)’라 했다. TV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임금의 ‘붕어(崩御)’도 이에 유래한 말이다. 상빈(上賓) 또는 안가(晏駕), 승하(昇遐)도 임금의 죽음을 나타낸 말이다.

예전에만 이처럼 많은 말로 죽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자주 보이는 별세(別世)와 타계(他界)부터 영면(永眠), 영서(永逝), 서거(逝去), 작고(作故), 잠매(潛寐) 등에 이르기까지 요즈음에도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들은 여럿이다.

2009.2.18. 매일신문 채정민기자


 

 

     <故 김수환 추기경 추모사> 최영수 요한 대주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일생 믿고 소망하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 15)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김 추기경은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지혜이셨고, 그 분의 존재 자체는 온 국민에게 언제나 생명과 희망의 표징이셨습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진 격동의 현대사가 어떠했던가를 아는 이들은 김수환이라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회의 정의를 위해 그 분은 그 길이 아무리 고난의 길이라 해도 진리와 정의, 그리고 양심 편에 서셨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정의 편에 서시는 고난의 길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민주화라는 말만 들어도 이 땅의 사람들은 김수환 추기경을 생각 속에 떠올립니다.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 핍박받는 이들과 소외된 이들의 생존권과 권익을 되찾아주기 위해 그 분은 일생을 고스란히 주님께 바쳤습니다. 빗나간 권력과 불의 앞에 결코 눈을 감거나 입을 다물지 않으셨던 이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이셨습니다.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경축 미사에서 하신 강론 말씀 한 대목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국 교회는 방부제 역할은 하고 있지만, 빛과 소금의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라고 꼬집었던 어떤 교우 분의 말씀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하셨습니다. 추기경께서는 자신의 일생을 통하여 교회는 자기들만의 잔치에 도취되는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참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참으로 김수환 추기경은 이 시대, 이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이셨습니다.

또한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는 그 분께서 일깨워주신 자긍심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200주년을 맞아 김 추기경께서는 한국 교회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주심으로써, 인류 공동체가 지닌 세상 복음화 사업에 당당히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200주년 경축 행사 때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모시고 103위 성인성녀께서 탄생하는 영광을 이 땅에 안겨주시는 주역을 맡으셨습니다. 교황 성하께 103위 이 땅의 순교자들을 성인 품에 올려주시기를 청원하시던 김 추기경의 모습은 천상에서도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일생은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고귀하고 가치 있음을 우리들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이 민족의 횃불이셨고, 한국 가톨릭 교회의 영적 아버지이셨습니다. 그 분은 참으로 주님의 충직하고 겸손한 종이셨고, 가련한 우리들의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그 분은 이제 주님의 나라로 승천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이 땅에 남긴 삶의 혜안과 양심의 소리는 오래오래 이 민족 안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참으로 장한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그 분을 주님의 품으로 떠나보내 드립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당신을 존경하며 사랑합니다. 당신을 선하신 목자로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주님, 스테파노 주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2009년 2월 17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최영수 요한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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