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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서(山家序)
대저 어려서 배우고 장년이 되어 행하는 것은 옛 사람의 도이다. 이런 까닭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배우지 않는 이가 없다. 저 속세에 초연하며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몸을 깨끗이 하고 인륜을 저버림 같은 것이야 어찌 군자의 하고자 하는 일일 것이랴.
그러나 세상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이미 있었은즉 안자(顔子)와 같은 이는 누추한 거리에서 스스로 즐기기도 하였고, 혹시 때가 맞지 않으면 태공(太公)과 같이 바닷가에서 숨어 살기도 하였으니 그러므로 고기를 낚건 밭을 갈건 어찌 그것을 나무랄 수야 있을 것이랴.
내가 지정 연간(至正年間:1341~1367)에 여기다 집을 지었더니 이제 십여 년이 지났는데, 속세의 손님은 오지 아니하고 세속의 소식도 들리지 않으니 나와 벗하는 이는 산승(山僧)뿐이요, 나를 알아주는 것은 물새뿐이로다.
명예에서 오는 영화로움과 이익을 위하는 수고로움은 모두 다 잊어버리고 고을의 태수(太守)조차 있건 없건 알 필요도 없이 피곤해지면 낮잠 자고 즐거우면 시를 읊고, 다만 해와 달이 오고 가고 시냇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만 볼 따름이다.
벗이 있어 찾아오면 평상(平床) 위의 먼지를 쓸고 맞아들이고 대수롭지 않은 사람[庸人=凡人]이 문을 두드리면 곧 침상에서 내려가 맞이하니 가히 군자의 화평(和平)하면서도 속류(俗流)에 물들지 않은 기상을 볼 수 있으리라.
많은 암혈(巖穴)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고 뭇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으며, 기암괴석(奇巖怪石)과 소리만 들리고 보이지 않는 새[幽鳥]와 이상하게 생긴 짐승들, 솔바람이며 덩굴 사이로 바라보이는 달[蘿月]을 바라보면서, 학이며 잔나비가 울음 울고, 산일(山日)이 차가워지면서 가을이 다가오고, 달빛조차 맑은 저녁이 되려 할 제, 그럴 때면 냉철한 마음과 맑은 뜻[寒心爽志]으로, 저 거룩한 우왕(禹王)이 높은 산에 제사지내던 공력(功力)을 그려본다.
강바람은 불지 않고 파도조차 일지 않아 아득하고 멀고 넓고 넓은데, 흰 갈매기와 싱싱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지나가고 장삿배들 서로 바라보며 어부 노래 화답할 제, 그럴 때면 머리를 끄덕이며 멋대로 시 읊으며, 저 거룩한 우왕(禹王)의 홍수 다스린 공로를 그려 본다.
샘물은 출렁출렁 갈증을 달래고 강물은 넘실넘실 갓 끈을 씻을만한데, 술 있으면 거르고 술 없으면 사 와서, 혼자서 따라서 혼자서 마시고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춤을 추니, 산새들은 내 노래의 벗이요, 처마 밑 제비들은 내 춤의 짝이 되었도다.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 공자(孔子)가 태산(泰山)에 올랐을 적 기상을 그려보고, 물가에 이르러 시를 지으며 공자가 강가에서 탄식한 것을 배운다.
회오리바람 일지 않으니 단칸방도 편안한데, 밝은 달이 뜰에 내리면 천천히 혼자 거닐고 주룩주룩 비라도 내리면 이따금 목침(木枕)을 높이 베고 시름 잊는 꿈을 꾸고, 산골짜기에 펄펄 눈이라도 날리면 가끔 가다 차라도 끓여 혼자 마신다.
봄날이 따사하고 고우면 뭇 새들 서로 화답하여 지저귀며, 풀숲은 우거져 흰 산쑥 나물 천천히 캐며, 버들개지 날리고 복숭아꽃 살구꽃 피어나면 친구 한 두엇 데리고서 물 찾아 목욕하고 언덕에 올라 바람 쐬며, 이따금 푸른 매며 사나운 개를 데리고 흰말 타고 금빛 화살 쏘며 사냥하고, 또 때로는 술개미1에 좋은 안주 있거드면 청려장(靑藜杖)2을 짚고 막대를 끌면서 꽃밭과 대나무 숲을 찾아들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여름날의 찌는 듯한 더위가 사람들을 괴롭힐 때면 높은 돛을 단 배를 타고 강호(江湖)로 찾아들어 땅거미지고 서늘해짐을 즐기고, 성긴 빗발이 실오리처럼 흩뿌리면 쟁기 끌고 호미 메고 전원으로 돌아간다.
건들장마 갓 개게 되면 혹서(酷暑)도 풀리면서 온갖 곡식 다 익어가고, 농어들이 살 오르면 고깃배에 비스듬히 앉아 낚싯줄 드리운 채 물결 따라 내려가기도 하고 거슬러 올라오기도 한다. 갈꽃은 버석버석, 줄풀에 부는 바람은 살랑살랑, 안개비는 오락가락,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은 늠실늠실 호탕하게 만리를 달리니 그 누가 능히 막을 수 있으랴.
또다시 눈보라가 창을 때리고 겨울 기운 매워지면 혹은 화로를 끌어안고 앉아 술독을 열어젖히고, 또는 책을 펴고서는 마음[天君]을 다독이며, 우뚝하여 끝없는 천지에 스스로 조용히 즐기는 것이 어찌 은자(隱者)의 즐기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즐거움이 어찌 이런 데 있는 것뿐이랴. 그러한 즐거움이란, 어허! 보잘것없는 것이로다. (후략)
- 길재(吉再, 1353~1419) <야은집(冶隱集)> 《야은선생언행습유 권상(冶隱先生言行拾遺卷上) 선생유문(先生遺文)》
[해 설] - 이웅재 선생님
길재(吉再, 1353~1419)는 여말 선초의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해평,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여말의 삼은(三隱)으로 불린다.
이색, 정몽주, 권근에게 배웠다. 우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창왕 때 문하주서(門下注書)가 되었으나, 고려가 쇠망할 기운을 보이자,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한다는 구실로 사직하고 귀향(歸鄕)했다. 조선이 건국된 후, 정종 2년에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세자 이방원이 그에게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 하여 거절하고 고향인 선산(善山)에서 후배 양성에 힘쓰며 일생을 마쳤다.
「산가서(山家序)」는 『야은집(冶隱集)』중 야은선생언행습유 권상(冶隱先生言行拾遺卷上)의 선생유문(先生遺文)에 실려 있다. 벼슬길에 나가기 전인 30세 전후에 쓴 글로서 그 분위기가 밝다. 특히 눈발이 날릴 때 차(茶)를 끓여 혼자 마신다는 대목이 있어 다도(茶道)를 즐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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