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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빈방 / 김은주

부흐고비 2019. 10. 27. 00:11

빈방 / 김은주
2007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홍매화가 붉게 핀 길 건너 할머니집이 전에 없이 부산하다. 마당 가득 사람이 북적대고 환하게 불도 밝혀져 있다.

집 앞 텃밭에 흙이 녹아 씨를 넣어야 할 때가 다 되었는 데도 할머니는 기척이 없었다. 추운 겨울을 건너기 위해 아들네 집에라도 가셨나 싶었는데 오늘 밤 할머니는 조등(弔燈)으로 내걸려 있다. 일 년 내도록 드나드는 사람 하나 없더니 오늘 보니 식구들도 참 많다. 보이지 않는 식구들이 저리 많은데 할머니는 겨우내 빈방에 사람을 들이고 싶어 그리 안달이셨을까.

나는 베란다 창틀에 기대 할머니 집 마당을 유리병 속처럼 내려다보고 서 있다. 바둑판처럼 늘 깨끗이 정돈되어 있던 마당에는, 생전에 할머니께서 애타게 그리던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비로소 하나 가득하다. 싸늘한 봄밤인 데도 북적이는 사람들이 제법 훈기를 뿜는다. 왁자하니 살고 싶던 생전의 소원 하나를 죽음 앞에서 이룬 듯하여 씁쓸하기 짝이 없다. 대문 위쪽 작은 콘크리트 공간에 심어진 라일락이며 영산홍 몇 그루는 할머니의 부재도 깨닫지 못한 듯 새잎으로 푸르기만 하다.

생전에 할머니 집 대문 앞 전봇대에는 일 년 내도록 낡은 쪽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빈 방 있슴. 우풍 업고 방 뜨시함"

굵은 매직펜으로 꾹꾹 눌러 쓴 그 글씨의 임자를 나는 보지 않고도 누군지 알고 있었다. 겨울이 다 가도록 비에 젖었다 떨어지고 나면 새롭게 나붙어 있던 광고 사이로 언뜻 할머니의 적막한 외로움이 바람에 흔들렸다. 아무리 주야장천 광고를 붙여놔도 빈방의 주인이 선뜻 나서지 않았음을 내내 붙어있는 쪽지 하나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비어 있는 방을 그저 주다시피 하겠다는데도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방을 놓겠다는 것은 말뿐이었고 실은 늘 한 쪽이 비어 있는 할머니의 마음을 훗훗하게 데워줄 사람의 온기를 찾았던 것이 아닐까. 반양옥의 낡은 연립주택은 할머니 굽은 등허리처럼 매일 삭아가고 방은 올 겨울도 나가지 않았듯 광고는 여전히 전봇대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하체보다 상체가 훨씬 짧은 할머니의 수북한 등허리는 누가 봐도 정상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골목 안 사람들은 할머니와 이야기조차 꺼리는 듯하였다. 할머니는 늘 혼자였다.

그런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골목길 안에 푸르게 자란 푸성귀를 보고 한동안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그때 등 뒤에서 "새댁 상치 한줌 줄까"하는 소리가 들렸다. 애써 장만해 놓은 남의 살림살이를 엿본 듯한 쑥스러움에 아니라며 나는 손사래를 치고 돌아섰다.

다음날 아침 우유를 가지러 현관에 나서니 현관 손잡이에 검은 봉지 하나가 걸려 있었다. 조심스레 열어 보니 상추와 풋고추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금방 할머니가 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촉촉이 습기 머금은 푸성귀를 들고 들어와 맛있게 먹었다.

오후가 되어 막걸리 한 병을 사 들고 텃밭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어제 내가 한 것처럼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셨다. 종일 군입 한번 다실 이야기 상대도 없던 할머니는 나를 보자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쏟아 놓으셨다. 막걸리도 한잔 드셨겠다, 당신 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도 있겠다, 할머니의 수다는 가슴 밑바닥을 헹궈 밖으로 내뱉는 듯 끝이 없었다.

골목을 드나들며 쪽지가 바람에 떨어질 듯 펄럭이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손으로 꾹 눌러 다시 단단히 붙여놓고는 했다. 빈방에 사람 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할머니의 기다림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나 역시 오가며 비어있는 할머니의 한쪽 가슴에 누군가 세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쪽지가 떨어져 없어진 날이 할머니 집에 새로운 사람이 들었다는 증거일 터인데, 그 쪽지는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너덜거리며 봄을 맞았다.

골목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빈방의 안부는 고사하고 할머니가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조차 몰랐던 것 같다. 도시 사람들의 단절된 생활상이 새삼 내 가슴을 치게 한다. 나 역시 눈만 뜨면 그 길을 오갔지만 할머니에게는 무심한 한 자락 바람 같은 이웃이었던 것이다. 집까지 지닌 할머니가 어디 먹을 것이 궁했을까? 생전에 늘 사람이 고파 허덕이던 모습이 붉은 조등 아래 선연하다.

매화 잎도 금방 바람에 날려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임종을 지켜본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떠나는 할머니. 비어 있던 가슴 한 구석을 끝내 채우지 못하고 빈방인 채로 황천길로 가셨다. 천지가 꽃 몸살을 앓고 있는데 광고 이면지에 나붙어 있던 빈방의 광고는 주인을 잃고서 저 홀로 애처롭다.

아무래도 삶이란 겪는 사람의 것이지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것은 분명 아닌 듯싶다. 뒤늦은 줄 알면서도 할머니의 비어 있을 방에 내 마음을 세 들여 본다.



[심사평 / 손광성, 수필가]
518편의 응모작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이 자기 체험을 단순히 기술하는 데 그쳤다는 아쉬움이었다. 체험은 소재일 뿐 그 자체가 문학이 되지 못한다. 문학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체험을 예술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데 성공해야 한다. 기술(記述)이 아닌 표현(表現)을 얻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기준에 의한 예심 결과 '빈방' '춤' '겨울산' '등' '아버지,꿈을 꾸셔요' '문을 바를 때' '그릇 이야기' 등 7편을 뽑았다.

'그릇 이야기'는 '규중칠우쟁론기'에서 '규중칠우' 대신 수저 밥그릇 등 '주방칠우'를 대입시킨 점이 재미있었으나 결미 부분은 사족이었다.
'문을 바를 때'는 문을 바르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간 점은 좋았으나 전통적 소재를 다룬 글이 대개 그렇듯 참신성이 없는 점이 아쉬움이었다.
'등'과 '아버지, 꿈을 꾸셔요'는 육친애를 다루었지만 '등'은 감동적인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에서 의미부에 무리수를 둔 점이 오히려 앞에서 받은 감동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아버지, 꿈을 꾸셔요'는 결미가 조급하게 끝나는 바람에 주제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지나친 것도 흠이지만 모자라는 것도 또한 흠이 된다. '춤'과 '겨울산'은 지적인 면이 관심을 끌었으나 논리적 비약이 적지 않아 결국 제외되고 말았다.

김은주씨의 '빈방'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거노인 문제를 다룬 것으로, 소재의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감상에 빠지지 않고 따스했으며 어조가 들뜨지 않고 차분했고 어휘 선택과 그 구사에 무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주제의 형상화에 성공한 결과 문학적 향기가 높은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동참할 수 없는 한계를 "삶이란 겪는 사람의 것이지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것은 분명 아닌 듯싶다"고 일갈(一喝)한 점은 글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결구로서 아주 적절했다.

김은주씨의 '빈방'을 수필 부문 당선작으로 추천한다.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그의 눈부신 발전을 기대하면서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당선소감 / 김은주]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잔디 인형의 몸에 이슬이 맺힌다. 그간 제법 머리가 자랐다. 마른 듯 보였으나 이끼로 뭉쳐진 몸속에서는 끝없이 발아가 진행되고 있었나 보다.

몸속을 채우고 있던 씨앗들이 전신을 뚫고 나온다. 수분을 머금었다 뱉으면서 제 몸을 키운 잔디 인형은 딸아이가 내게 준 생일선물이다. 퇴고를 반복하며 인형에게 물 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쓴다는 일은 제 마음속 씨앗에게 물 주는 일과 진배없다. 종일 접시에 발을 담그고 그냥 서 있는 듯 보이나 인형은 끝없이 무릎으로 물을 길어 올려 생명을 잉태한 것이다. 햇살에 대한 갈증이 인형의 머리를 자꾸만 창쪽으로 휘게 한다. 수시로 치우친 머릿결의 방향을 돌려놓으며 겨울을 기다렸다.

문학이란 씨앗이 내 마음으로 날아들어 몇 해가 지났다.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서는 동안 발아의 시간이 공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나 보다. 이제 막 싹을 틔웠으니 제대로 가꾸는 일에 신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문학이라는 곳으로 휘어져 있던 내 목의 중심을 새로 고쳐 잡으며 평상심 위에 마음을 올려놓아 본다. 미흡함이 많은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문학의 길을 같이 걸어온 수필사랑 도반들과 홍 교수님께 이 기쁨을 함께 전한다.

◇ 1963년 경북 경산 출생, 대구 수필창작대학 수료, 수필사랑 회원, 현재 논술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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