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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천초묵 / 김미향

부흐고비 2019. 10. 27. 20:55

천초묵1 / 김미향
2016년 등대문학상 최우수상


저물녘 노점의 풍경은 애상에 젖게 한다. 두 볼이 오므라진 노인의 얼굴보다 팔고 있는 천초묵에 더 시선이 간다. 떨이를 외쳐도 사람들은 발길을 돌리고 노인은 되똑하니 앉아 시간만 보낸다. 도시의 소음 대신 파도 소리만이 간간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의 냄새가, 바다의 냄새가 질펀하게 배어있는 천초묵이 오늘따라 그리워진다.

파도가 거세게 이는 날이면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다로 나갔다. 달이 없는 한밤에도 바닷가를 서성거리는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날 선 파도가 옆구리를 후려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천초 하나라도 더 줍기 위해 사나운 물결을 헤치며 억척을 떠는 모습은 천생 바다 여자였다. 천초는 바닷속 모래나 바위에 붙어살아 주로 해녀가 캐내지만, 물속의 세찬 흐름에 뿌리째 뽑히면 뭍으로 떠밀려 나온다. 이때를 놓칠세라 제철인 오뉴월만 되면 마을 사람들은 매 같은 눈으로 바다를 노려보곤 한다.

시골집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땡볕에 얼마나 있었는지 윗도리가 축축하다. 자리를 깔고 앉아 마른 천초에 들러붙은 티끌을 떼어내느라 두어 번 불러도 대답이 없다. 한 번 더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든다. “연락도 없이 웬일이고? 배 고프제. 쪼매만 기다리래이. 얼른 묵 만들어 줄께.”하시며 더 바삐 움직인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언제나 배고픈 줄 안다. 먹고 돌아서는데도 금방 또 다른 것을 내어 놓는다. 없던 시절에 제대로 먹이지 못했던 그 마음 때문인지 먹으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둘둘 감은 흰 천에 핏물이 배어난 어머니의 발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 바닷가에서 생긴 상처이리라. 신발이라도 신고 다니면 좋으련만 짠물에 절은 신은 오래가지 못한다며 늘 맨발로 나선다. 지난날, 천초를 줍다가 유리에 발바닥을 베인 소녀가 절룩거리며 나타난다.

바닷가에 널브러져 있는 해초들이 어린 눈엔 다 천초로 보였다. 죄다 그러모아 놓고 보니 해조류보다 검불이 더 많았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앉아 쓸 만한 것을 골라냈다. 곁에서 여물지 않은 손으로 천초를 쪼작거렸다. 조몰락조몰락하니 어머니는 저리 가서 놀라는 턱짓을 보냈다.

모래사장에 신발을 벗어둔 채 누비고 다녔다. 작은 눈망울은 또다시 천초를 찾느라 반짝거렸다.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뭔가가 내 발바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붉은 피가 보였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에 놀란 어머니는 얼른 바닷물에 발을 씻기고 머릿수건으로 상처를 감싼 뒤 꼭 눌러 주었다. 그 날 나는 오리걸음을 걸으며 어머니 옆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 틈에 벌써 어머니가 천초묵을 만들고 있다. 천초는 뜨거운 불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바다를 머금었던 제 몸을 스르르 내어준다. 이제는 줍지도 만들지도 말라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놀면 뭐하노. 너희들이 좀 잘 먹어야 말이제.” 하시며 묵묵히 불 앞을 지킨다.

천초묵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잘 알고 있다. 뙤약볕에 널어 바래기를 여러 날, 비를 맞히고 땡볕에 말리고 또 비를 맞히고 불볕에 말리기를 거듭해야 검붉은 천초가 허옇게 변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천초를 물과 함께 삶으면 풀어질 대로 풀어져 마침내 끈끈한 액체가 된다. 이것을 체에 내려 굳힌 게 바로 투명한 천초묵이다.

푹 고아진 그것을 어머니가 체에 거른다. 단단해지라고 선풍기까지 돌린다. 한번 우려낸 것에 처음보다 적은 양의 물을 붓고 다시 끓인다. 없던 힘도 생기는 것일까. 주걱으로 휘휘 젖는 팔뚝의 근육이 살아 꿈틀거린다. 고아지면 체에 내리고 또 고고, 그렇게 세 번을 우려내니 더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멀겋기만 하다. 어머니가 천초를 우려내듯 자식도 어머니를 한없이 우려먹으며 자랐을 것이다. 이제 더 우려낼 것도 없는 희멀건 어머니를 나는 하염없이 바라본다.

묵이 제법 탄력을 띤다. 어머니는 소금으로 밑간한 고소한 콩물에 얇게 채 썬 묵을 말아 내게 건넨다. 시원한 한 그릇에 담긴 동해, 어린 시절 허기를 달래주던 그 맛이 되살아난다. 한때 어머니는 이렇게 만든 묵을 오일장에 내놓기도 했다. 아무리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놓아도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만들었다. 하루치의 몫이 얼마나 팔리고 남았는지는 시장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의 낯빛으로 알 수 있었다. 결국 팔지 못한 것은 자식들에게 돌아왔다.

그 옛날 천초묵은 가난한 해변 사람들에게 든든한 한 끼가 되어 주었다. 천초로 묵을 해먹었고 그 힘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 어쩌면 천초묵이 그들의 삶을 더 강인하게 만든 지도 모른다. 여리고 보드라운 그 묵에 설움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어머니가 해지기 전에 길을 나서라며 묵 몇 덩이를 싸준다. 이젠 이 음식을 허기로 먹지 않으리라. 그리움으로 먹고 추억으로 먹으리라. 이유 없이 지칠 때, 그럴 때 천초묵을 꺼내 놓고 고향의 어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가지고 온 묵 덩이를 펼쳐놓는다. 매끄러운 표면은 바닷물처럼 찰랑거리고, 손을 갖다 대자 날개를 접었던 바닷새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귀 기울이니 파도에 구르는 자갈 소리가 들리고, 한입 베어 무니 바닷물이 흘러나온다. 옹골진 바다를 통째로 품은 천초묵은 또 다른 동해였다.

노인은 여전히 찬거리를 사러 나온 여인들에게 눈길 주기 바쁘다. 어스름이 허무한 표정만큼이나 깊게 내려앉는다. 선뜻 한 모를 샀다. 저녁에 먹을 것도 아니다. 그것에서 나는 어머니를 불러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귀가 잘 안 들린다며 요즘 들어 부쩍 동문서답을 하는 어머니, 당신이 안 계시면 누구에게서 천초묵을 얻어먹을까. 갑자기 가슴속에서 거센 풍랑이 휘몰아친다.

사온 천초묵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형광등을 끈다. 어둠 속에서 바다가 숙성되는 시간이다. 베갯머리에 바다가 누워 있고 바닷물이 몸에 와 감긴다. 내일 아침엔 응축된 표면을 뚫고 동해의 붉은 해가 솟아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1. 천초묵 : 우뭇가사리묵을 동해안 지방에서 부르는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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