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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출가 / 박시윤

부흐고비 2019. 11. 24. 21:30

출가 / 박시윤
제3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대상


푸르스름한 새벽을 밀고 들어오는 반짝이는 햇살이 갓난아이 얼굴처럼 익살스럽다. 흐릿해져 버린 추억을 상기시키듯 애틋함이 묻어 있어 더욱 그런 것만 같다. 주울 수만 있다면 호주머니 한가득 담아두고 그리울 때마다 꺼내보고 싶다.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폐 속 깊숙이 드나드는 은은한 절간의 향내를 따라 조용히 사색을 즐긴다. 추억이 서린 듯 낯설지 않은 향기는 산책의 묘미에 한층 더 빠져들게 한다. 이슬 젖은 흙은 좀처럼 일어날 줄 모르고, 아직 깨지 않은 숲의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는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는 작은 긴장감마저 갖게 한다.

이른 아침, 불국사 공양주 보살들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내 시선이 보살들의 하얀 고무신을 따라 더 바빠지는 것은 어쩌면 낯설지 않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올 때면 오늘처럼 새벽길을 달려 탑 아래에 와 머물곤 한다. 누가 반겨줄 것도 아닌데 그저 와 있기만 해도 할머니를 마주하는 듯 마음이 푸근해지기 때문이다.

이태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불국사의 공양주 보살이셨다. 세월에 바랜 쪽진 은회색의 머리는 다보탑의 빛과 같이 눈부셨고, 넉넉한 자태는 다보탑만큼이나 후덕하였으며, 성품 또한 다보탑처럼 우직스러우셨다. 함께 기거하던 보살들이나 스님들에 의하면 할머니의 부지런함은 고무신의 뽀얀 빛깔에서 알 수 있고, 공양간의 부뚜막에서 뿜어져 나는 반지르르한 광택에서 쉽게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새벽잠이 적어 매일같이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공양간의 문을 열었다는 할머니셨다.

무작정 찾아왔다. 가을이 익어 갈 이맘때면 눈시울이 젖도록 할머니가 보고 싶다. 내가 근무하던 중환자실에서 운명을 달리했던 할머니는 병상에서도 곧잘 불국사의 탑들을 입에 올리곤 하셨다. 오래토록 한자리에 머물러도 변하지 않는 자태와 빛깔은 홀로 된 할머니의 지아비이자 피붙이와 같았다는 것이다.

오늘은 문득 새벽녘에 잠이 깨어 불국사에서 아침을 맞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달렸다. 할머니의 걸음을 재촉하였을 새벽 예불과 공양간의 집기들을 하나하나 엿보고 싶었다. 새벽잠에 빠져 있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인기척도 없이 집을 나섰다. 잠에서 깬 가족들이 하나 둘 나의 빈 이부자리를 궁금해 하겠지만, 역마살에 밤새 힘겨워하다 어느 곳에 마음을 내려놓으러 갔나, 그렇게 이해하겠거니 여겼다.

이른 아침의 불국사는 바쁜 듯 고요했다. 나무들이 일어나고, 풀들을 깨우는 바람이 무설전無說殿 툇돌에 고이 올려진 어느 스님의 고무신에 구른다. 낮게 깔리는 향내를 따라 새벽부터 시작된 스님의 염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스무 살 중반쯤으로 되어 보이는 젊은 스님들이 법당 곳곳을 지키며 끊임없는 염불을 쏟아내고 있다.

목적할 곳도 없이 발걸음을 옮기다가 어느새 나의 발은 탑 아래에 와 머문다. 고요히 떠오르는 토함산의 해가 한뎃잠에 몸을 설치고 어지럽게 흩어진 발자국들을 감싼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바라보니, 토함산이 머금은 신라의 영혼이 유유히 떠다닌다. 햇살이 들어오자 갈라진 틈 사이로 숨겨진 비밀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발자국들 아래에는 깨달음을 얻고 떠나간 중생들의 소리도 잠겨 있으리라.

귀를 열고 탑 아래 쪼그려 앉았다. 마당에 자리한 두 개의 탑은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고 언제나 맨몸으로 그렇게 서 있다. 수백 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들도 그동안 수 십 년이 흘렀지만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지금 혼자이고, 앞으로도 혼자일 것임을 알기에 누군가가 나를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나와서 맞이할 것 같지 않은 모퉁이를 미련처럼 한참이나 바라본다. 안 계신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기다려지는 건 내 마음이 아직도 할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십 년 전의 작은 내 발자국이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석가탑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탑에 기어올라 보기도 한다. 까르르 목젖 넘어가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잠시 뒤 모퉁이를 돌아 하얀 고무신의 할머니가 촘촘한 발자국을 남기며 달려온다. “아이고, 요 이쁜 내 새끼들” 얼굴을 쓸어주는 따뜻한 손길에 온몸을 파묻는다. 온화함이 가득한 지장보살 같은 할머니가 어린 나를 안고 등을 토닥이신다. 어느새 내 입에는 법당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곶감이 들어와 있고, 양손에는 단맛도 쓴맛도 아닌 밍밍한 맛의 누룽지가 한 움큼 안겨 있다.

할머니는 석가탑을 유독 좋아하셨다. 피붙이들이 오는 날에는 석가탑 아래서 먼저 기다리거나, 바쁜 일정에는 꼭 석가탑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게 하셨다. 할머니는 다보탑의 화려한 멋도 좋지만, 소박하고 우직하여 기품이 묻어나는 석가탑을 두고 청춘에 먼저 가신 할아버지 같아서 더 좋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하늘을 우러러 치솟는 뾰족한 탑의 끝이나 반듯반듯한 탑 기둥의 정교한 모서리는 날카롭고 정확한 할아버지의 청춘을 닮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할머니는 아사달을 그리워하던 아사녀처럼 다보탑이 되어 평생을 불국사에 몸을 시주하셨다.

청춘에 할아버지를 잃은 할머니였다. 홀아비였던 할아버지는 물에 빠진 할머니를 구해 주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각시가 되었다. 할아버지와의 인연도 잠시였던지 몸이 약했던 할아버지가 객사를 하셨고, 할머니는 속세의 슬픔을 가슴에 묻고는 미련 없이 출가를 하신 것이다.

탑이 붓다의 깨달음의 집이었다면 부처님을 믿는 할머니에게 석가탑은 지아비이자 고단한 육신을 잠재우는 안식의 집이었다. 석공이었던 지아비를 그리워하며 신라로 왔던 아사녀가 아사달을 그리워하며 환영에 사로잡혀 결국 영지影池에 뛰어들었다는 애틋한 사랑이야기처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잊지 못해 불국사에서 평생을 사셨다. 매일같이 석가탑을 돌고 법당을 드나들면서 그리운 지아비의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무릎과 손바닥은 부처님 앞에 시주하느라 볼품없어졌지만, 염주는 108배와 함께한 세월에 반지르르 윤이 흘렀다.

다시금 석가탑을 바라본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할머니의 지아비를 향한 해바라기 마음이 묻어 있기 때문인지 보기만 해도 낯설음보다는 친근감이 느껴진다. 지고지순한 사랑과 그림자조차 갖지 못하는 아픔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우리의 보물 중의 보물 속에 할머니의 사랑도 깊이 스며 역사로 흐르는 듯하다.

법고의 울림을, 범종의 여음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탑의 갈라진 틈 사이로 할머니의 미소처럼 햇살들이 들어와 눕는다. 지금은 바람의 사리로 나부끼고 있을 할머니의 영혼이 불국사 법당에 향처럼 타오른다.

평소 나뭇가지를 건드리는 잔바람에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며 살아온 나이지만, 오늘은 탑 앞에서 굳건하다. 탑 아래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할머니의 모습은 올곧게 균형 잡힌 무정설법과도 같이 나의 가슴에 고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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