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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자장가 가수 / 이미영

부흐고비 2019. 11. 28. 08:25

자장가 가수 / 이미영


나의 자장가는 노동요였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려는지 뒤척이는 아기를 토닥여주며 부르는 사랑 겨운 노래가 아니었다. 늦은 밤 숨이 멎을 듯이 울어대는 아기를 들쳐업고 엉덩이를 두들겨 가며 부르던 억지 노래였다. 말이 통하기는커녕 목청만 돋우는 아기에게 짜증을 더해 불러주던 노래였다. 토막잠을 자다 깨다 하는 날이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기에 어떻게든 재워보겠다고 부르던 한숨 섞인 노래였다. 업었다가 다시 안았다가 팔이 저려서 더는 품에 둘 수 없을 때 작은 흔들의자에 태우고 발로 밀어 주었다. 새벽녘에도 잠 못 들고 빤히 쳐다볼 때면 멀미가 나도록 요동시켰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더 이상 노래가 안 나올 무렵이면 아기는 버티지 못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역정이 나서 흔들어 대는 통에 어지러워 그리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재우던 자장가는 듣지 못했다. 위로 언니 오빠에 아래로 동생이 둘이나 있었으니 엄마는 내 차지가 될 틈이 없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사이로 들리는 자장가라고는 늦둥이 막내 동생에게 불러주던 지친 읊조림 같은 것이었다. 자장 자장으로 시작해서 세상의 잠 잘 자는 온갖 아기들이 등장하는 자작곡이었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오죽했을까. 나도 그랬다. 아기를 곤히 재우려는 마음보다 하루 종일 피곤했던 몸을 어서 쉬게 하고 싶은 바람이 더 간절했던 것 같다. 아기를 재우러 가서 엄마만 잠든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겨우 20개월 남짓 터울이 지는 아들 녀석 둘을 키우자니 늘 수면 부족으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아기가 자는 시간이라야 마음 편히 집안일도 할 겨를이 생겼다. 녀석들이 제일 사랑스러워 보일 때는 대낮이라도 이불 속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려줄 때였다.

중학교 음악시간이었던가,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배우며 꿈을 꾸었다. 여리게로 시작하는 노래는 천상의 하모니처럼 아름다웠다. 선생님이 카세트테이프로 들려주던 빈소년합창단의 연주는 천사의 속삭임인 양 보드라웠다. 엄마는 왜 이렇게 곱디고운 곡조로 재워주지 않았는지 원망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꼭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불러주는 어여쁜 엄마가 되겠다고 남몰래 다짐도 했었다.

아이들이 요람을 벗어나 교복으로 갈아입은 후부터 내 노래는 자명종으로 쓰이고 있다. 아침에는 단잠을 깨우는 성가신 벨소리가 되고 아이들의 시험기간이면 졸음을 깨우는 귀찮은 모닝콜이 된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아이들을 품에 안고 흥얼거리던 따스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진다. 콧수염이 거뭇거뭇 돋아난 녀석들에게 청을 넣어본다. 둥개둥개 한번 하자고 어르듯 매달린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곧장 자기가 안아 주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남자들이 학교로 일터로 떠난 집은 싸움이 끝난 전쟁터이다. 널브러진 옷가지며 훑고 지나간 식탁이 파편처럼 어지럽다. 잔해를 수습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노래 소리에 귀가 저절로 따라갔다. 나중에 다시 찾아보니 제주민요인데 자장가 <웡이자랑>이라고 했다. 가사는 또렷이 전달되지 않았지만 내가 불렀던 자장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투박한 목소리에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투정이 담긴 노래다 싶었다. 아기가 말을 알아듣는다면 더 크게 울어버릴지도 모를 만큼 가사는 꾸지람을 하고 있는 듯했다. 가락은 느렸다가 빨라졌다가 도저히 자장가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녀석아 어서 자거라 니 녀석이 자야지 밥도 하고 빨래도 할 것 아니야. 어서 잠들라고 위협하는 노랫말 같았다. 엄마도 나도 제주도 어멍들도 다 같은 심정으로 속내를 토했던가 보다. 듣기에 아름다워야 노래가 되던가. 힘든 자신들의 사정을 허공에다 털어놓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주문 같은 노래였던 게다.

시작과 끝의 경계도 없이 부르다 자다 하던 자장가는 이제 더는 부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몇 번이나 머리를 가슴팍으로 밀어 넣었다. 한번쯤은 장난으로 그랬으려니 싶었다. 아이들이 밤늦게나 되어야 학교에서 돌아오다 보니 밤 시간이 여유롭게 느껴져 그런가 보다 하였다. 나중에는 얼토당토않다는 눈빛을 쏘았다. 어색한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에서 서운한 기색을 읽어버렸다. 돌아앉아 TV를 켜는 그를 아주 천천히 살펴보았다. 아릿한 뜨거움이 가슴에서 올라왔다. 빳빳하게 솟았던 어깨가 어느새 말캉하게 내려앉았다. 검게 반질거리던 머리칼이 희끗하게 탄력을 잃었다. 지친 내면이 푸석한 몸으로 드러나 안쓰럽게 다가왔다. 갑자기 조금 전까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패기만만했던 굳센 턱 선이 멋진 그였다. 언제 닳았던지 나긋한 모양으로 변신해 있는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좀처럼 바깥일을 내색하지 않던 그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시작했을 때 알아차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나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나 보다. 아이들이 없는 틈에 가장이라는 무게를 잠시라도 내려놓으려 했던가 보다.

이제라도 그에게 제대로 된 자장가를 불러 주고 싶다. 단발머리 소녀를 환상으로 데려다 주었던 빈 소년합창단의 연주 소리가 다시 꿈틀거리며 심장을 뛰게 한다. 단순한 아름다움이 깃든 멜로디, 쓰다듬는 듯 포근한 울림,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애정이 담긴 노랫말이 지금 막 음악실로 들어선 듯 생생하다. 아직 모차르트의 자장가를 불러보지 못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습처럼 부르지는 못할 일이다. 우리가 만나 보낸 시간을 정성스레 엮어 또 다른 자작곡을 만들어 내도 상관없다.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가며 서운했던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대문 밖 세상의 고달픔을 조금이라도 씻어줄 수 있다면 다시 목쉰 자장가 가수가 되어도 좋다. 기꺼이 한 사람을 위한 연주를 준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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