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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나를 찾습니다 / 이미영

부흐고비 2019. 11. 28. 08:28

나를 찾습니다 / 이미영


골목 전봇대에 ‘강아지를 찾습니다.’라는 광고가 붙어 있다. 요즈음 애완견을 많이 키우는 추세라 가끔 보던 건데 오늘따라 그 앞에 서서 자세히 봤다. 예쁘게 리본을 묶은 사진, 요크셔테리어 암컷 4살, 눈 옆에만 약간 갈색 털, 슬픈 눈빛에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을 안 먹습니다. 특히 ‘자식처럼 키운 강아지’라는 애절한 내용이다. ‘보상금 100만 원 꼭 드립니다.’까지 읽고 잃어버린 가족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강아지 실종에 좀 과한 호들갑이라 하겠지만, 일단 동물도 함께 살면 가족이 된다. 나도 딸아이가 강아지 ‘모모’를 데리고 와 키우겠다고 했을 때 남편이 알레르기 비염인데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반대했다. 딸아이는 우리 공간에는 절대 데리고 오지 않고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려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그 후로 약속을 깨고 모모를 데리고 내려왔고 점점 친숙해졌다. 특히 남편이 퇴근해 오면 덤덤한 인사를 나누던 다 큰 애들과 달리, 묘하게도 남편 차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알고 3층 우리 거실에서 반응을 보이지 시작했다. 설마 했는데 남편이 현관문 버튼을 누르고 들어왔다. 그때 보이는 모모의 기쁨과 환호의 상봉 세리머니에 남편도 마음이 녹았는지 점점 친해져 동물 절대사양이라던 완고함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딸아이의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따라간 모모가 가끔 보고 싶어 인터넷전화를 통해 모습을 보고 불러보기도 한다. 지난 연말 미국에 갔을 때 한참을 헤어져 있던 우리부부를 보고 얼마나 펄쩍펄쩍 뛰는지 그리고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24시간 내내 따라붙어 확실히 동물도 인간과 같은 감정의 동물임을 확인했다.

문득 내가 실종되면 우리 가족은 나를 찾는 광고를 어떻게 쓸까. 궁금했다. 아마도 남편이 가장 안타까워하겠지, 아닌가? 착각인가? 그래도 그동안의 살았던 정을 생각해서라도 신문광고를 내보기는 할 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래도 구독자가 많은 세 군데 일간지에는 낼 광고 문구를 쓸 것이다.

나이는 50대 초반이지만 좀 젊어 보이는 편임, 키는 158센티미터, 약간 통통한 편, 눈은 작고 생머리에 경상도 말씨를 쓴다. 목소리는 허스키하고 약간 팔자걸음을 걷기도 한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외모라 막상 소개하려고 보니 내가 봐도 참 개성 없는 여자였음을 새삼 확인시킨 셈이 되겠다.

강아지를 찾기 위해서도 저리 구구절절한 마음을 담는 이도 있는데, 우리 가족은 나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말을 할지 상상해본다. 남편은 늘 내게 좀 쉬라는 말을 많이 했으니까, 아마 지금까지 자신의 일을 매우 열심히 한 사람,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많이 고단한 사람이라고 할까? 또 입버릇처럼 ‘나는 당신 없이는 못 살아’라고 했으니 ‘아내가 안 돌아오면 제가 죽습니다.’ 할까? 하긴 이 말을 어느 모임에서 했더니 그냥 그렇게 믿고 살라고 빈정댔다. 딸과 아들은 자신들을 키울 때 엄격했던 엄마, 늘 바쁘게 살고 씩씩한 엄마였으니 알아서 잘 돌아올 거라 믿고 그냥 기다려보자고 할까? 아님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자식들처럼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슬퍼하며 헤매고 다닐까?

참, 사진을 찾을 건데 어떤 것으로 쓸 건지, 아마도 오래 전 쓰고 남은 여권사진이 생각났다. 사진관에 갔더니 귀가 꼭 나와야 된다며 사진사가 억지로 머릿결을 뒤로 넘겨 평소 내놓지 않던 귀를 보이게 하고 찍은 어중간한 표정의 사진, 정말 마음에 안 든다. 출입국관리소 직원 외엔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은데 걱정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보상금을 쓸 차례인데, 막막하다. 나를 찾는 비용으로 얼마를 걸지…. ‘아내를 찾아준다면 제가 가진 전부를 걸겠습니다.’라는 영화에나 나올 이야기를 떠올리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지만, 착각이라도 해보고 싶다.

강아지 광고를 보고도 나를 대입해 이리 빠져드는 걸 보면, 가을이 꽤 깊어졌나 보다. 자식처럼 키운 강아지를 찾아 서리가 내리기 전 가족상봉의 기쁨이 있길 비는 마음으로 광고에서 눈길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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