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유리로 만든 창 / 김현숙

부흐고비 2019. 12. 6. 09:32

유리로 만든 창 / 김현숙
제7회 2016년 천강문학상 대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휴일오후. 나는 버스 맨 뒤 칸 창가에 앉아 그 햇살을 삼키며, 털 고르는 고양이마냥 권태를 즐겼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국도변의 추루한 풍경은 재채기를 부를 만큼 건조했고, 그곳 사람들의 기름기 없는 일상은 부서질 듯 파삭했다.

버스가 신호에 잡혔고 [건너 다방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나도 그녀의 얼굴 속에 앉아 마른 표정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 주인의 말처럼 건너 순댓국집 유리창에 내가 비쳤다. 내 가슴팍에 안겨 이 사이에 낀 점심 찌꺼기를 후비적대고 있는 중년의 남자, 그 위엔 인력소개소의 낡은 창문이 있고 그 틈으로 참말 비듬 같은 햇살이 쏟아졌다. 나도 그 남자의 입 근처에 입술을 포개놓고 혀끝을 굴려가며 점심밥 찌꺼기를 훑었다.

잘강잘강 뭔가를 씹으며 연신 두리번대던 내 앞의 여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그 짜증 섞인 얼굴이 창 안으로 쑥 들어오면서 건너 사진관 유리창에 여자의 옆얼굴이 비쳤다. 마치 물색없는 시어머니처럼, 궁색한 모양새로 가족사진 틈에 끼여 앉았다. 하지만 두 눈을 내려 깔고 한 곳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표정에는 걱정이 묻어있었다. 잘강대던 입을 꾹 다문 채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만 가지 사연이 담긴 아주머니만의 흑백사진 한 장이 사진관진열장에 새로 하나 생겼다.

버스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세로 차창 밖을 응시하고 있다. 잠시 손을 멈추고 창밖으로 눈을 돌려, 낯선 이들의 삶을 곁눈질 하고 있었다. 머리를 유리창 가까이에 대고 면밀히 살피는 모습으로, 아니면 눈길만 돌린 채 삐딱한 시선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버스 내부와 차창너머 세계가 겹쳐지는 ‘그 찰나’를 함께 나누었다. 편의점 창가에 서서 즉석복권을 긁고 있는 외국인과 이마를 맞대고 앉은 아저씨, 횟집 텅 빈 수족관 속에 한 쪽 어깨를 집어넣은 채 잠이 든 학생… 물때 낀 수족관 벽에 청춘의 고단함이 같이 들러붙어 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투명한 유리면 안에 서로의 몸을 포개고 생각을 얹어놓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겹쳐져 가는 것인가 보다. 건너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초상(肖像)과 그 상에 어른거리는 창밖의 수많은 사정들은 결코 내 삶과 별개일 수 없다는 듯, 서로에게 깃들면서 이어졌다.

지난겨울 나는 아버지를 보내드리면서 지금처럼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염습실의 안과 밖을 삶과 죽음으로 극명하게 가르고 있는 ‘유리로 만든 창’ 하나. 그 뚜렷한 차단만큼 그곳은 냉정하고 차가웠다.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듯 이생과 피안의 분리대가 되어 우리를 가로막았다.

어디가 차안(此岸)이며, 어디가 나락인지… 나와 아버지가 있는 두 세계가 바뀐 듯 보였다. 아버지는 눈부신 불빛아래 흰 명주로 몸을 감싼 채 하얀 강보가 깔린 침상에 누워있었다. 살아생전 무섭던 얼굴은 다 어디가고 한없이 평안한 모습이었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이지러졌던 당신 삶을 구김살 없이 펴놓고 계셨다. 그곳엔 근심도 눈물도 없었다.

비상구 표시등만 켜진 어두운 대기실은 슬픔과 고통으로 구겨지고 일그러져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이다. 시커먼 상복에 묻은 죄는 털어도 비벼도 떨어지지 않고 복인(服人)을 애끓게 했다. 유리벽을 두들기며 부셔버릴 듯 덤벼들어도 아버지는 아무 반응이 없다. 아버지의 주검을 쓸고 어루만지는 내 손길은 차가운 유리에 서러운 지문만 남길 뿐, 가닿지도 더는 만져 볼 수도 없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내 뜻대로 닿을 수 없는 세계, 그것이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미 약수(弱水)1 어디쯤을 건너 서천(逝川)으로 가고계실 테지. 나뭇잎도, 기러기 깃털도 그 약수 위에 떨어지면 이내 가라앉고 만다는데 아버지의 삭정이 같은 저 몸을 어쩌나. 제 아무리 오열과 통한으로 때려 봐도 내 눈물로는 그 유리벽을 깰 수 없다. 아버지를 건질 수 없다.

얇은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나는 아버지와 가슴을 포개고 있다. 당신 품속에서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아버지는 하얀 강보로 싸안고 달래셨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겹쳐져있었다.

오늘 버스 창밖으로 언뜻언뜻 보인 얼굴들은, 삶의 변곡점마다 걸음 폭을 줄이고 함께 걷는 법을 일깨워준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차창에 깃든 모습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삶은 겹쳐져 존재하는 ‘어떤 풍경’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삶과 죽음, 타인과 나, 시간과 시간 사이에 놓인 유리창은 ‘나’와 ‘나의 외부’가 만나는 공유점일지 모른다. 그것은 창 저쪽을 바라보는 나의 사적인 욕망과 공적인 의식이 같이 들어앉는 자리다. 그래서 내 존재만을 담아내고 되비추는 거울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막 내 옆을 스쳐간 어린아이를 보면서 ‘귀엽다’라고 생각했다면, 그 순간 이미 그 아이와 나는 겹쳐진 것이다.

  1. 약수(弱水); 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 속의 강. 한 번 건너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본문으로]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냇내, 그리움을 품다 / 허정진   (0) 2019.12.06
각도를 풀다 / 이혜경  (0) 2019.12.06
항아리 / 조현미  (0) 2019.12.05
거미 / 박동조   (0) 2019.12.05
바닥론(論) / 최미지(본명: 고경숙)  (0) 2019.12.0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