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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3월의 눈 / 김아인

부흐고비 2019. 12. 16. 09:19

3월의 눈 / 김아인
The 수필, 2019 빛나는 수필가 60인 선정작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고 했던가. 언젠가부터 내가 사는 이 동네에도 3월 눈이 어색하지 않다. 철없는 계절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우수·경칩이 지났는데 함박눈이 내린다. 한겨울에도 좀체 구경하기 힘든 폭설이다. 겨우내 밀린 눈을 소급정산 하려는지 푸지게 퍼붓는다. 비를 머금은 눈이라고, 농가는 시설물 관리에 특별히 주의하라고, 매스컴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오던 봄이 살짝 뒷걸음친들 어떠랴. 잠재된 소녀감성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킨다. 설거지 할 일도 없는데 텔레비전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무릇 태초의 세상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위남공원은 설국이 되었다. 소담스런 눈에 눈이 시리다. 눈이 길을 지웠다. 할머니랑 나온 꼬마가 숫눈 위에다 아장아장 새 길을 만들어간다. 너무 깨끗해서 발자국 떼기가 조심스러운 나는 카메라만 누른다. 별안간 렌즈 안으로 먼 시간의 피사체 하나가 불쑥 들어온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호출을 하셨다. 아침 먹을 겨를도 없이 남편과 득달같이 달려갔다. 마구에 있어야할 소가 마당에 나와서 진을 치고 있다. 뒷다리 둘은 세우고 앞다리 둘은 반을 접은 채 일어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엉기적거리는 게 아닌가. 전날 저녁에 수의사를 불렀으나 너무 늙어서 치료 방법이 없다며 아예 손도 안 써보고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낙담하시는 어머님 얼굴에 먹장구름이 뒤덮였다.

시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부터 부렸다했으니 대충 꼽아도 30년이 넘는다. 해마다 착실하게 새끼를 낳아서 살림에 보탬을 주고 농번기엔 사람의 노동력 그 이상을 감당한다. 쟁기질과 쓰레질은 여자 혼자 힘으로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소가 몇 사람 몫을 한다고, 평소에 어머님이 많이 대견해하셨다. 당신께는 보배로운 존재다. 단순히 가축이란 이름을 뛰어넘는 가족과 같은 의미였으리라. 가장家長의 부재, 그 자리를 대신하여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준 반려동물인 것이다.

많이 아프다는 표식인가. 몰골이 영 말이 아니다. 초점 잃은 소의 눈가가 축축하고 눈곱이 덕지덕지 앉아다. 큰 눈망울을 희번덕일 때 흰자위만 보인다. 질질 흘리는 침이 고무줄처럼 늘어진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소가 맞나,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가끔 고개를 빼들고 먼 하늘을 응시하며 도리질을 한다. 잘 익은 포도 알맹이처럼 빛나던 눈동자는 어디로 갔을까. 자초지종을 들은 뒤라선지 내 눈에도 병색이 뚜렷하다. 어머님께서 장남이라고 유독 믿으시는 남편도 뾰족한 방법이 없나보다. 소의 등줄기나 하염없이 쓸어줄 뿐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다.

구경꾼에 불과한 나는 대책 없는 안타까움과 마주하기 난감하여 슬며시 자리를 떴다. 하필이면 마구간 앞에서 멈춰졌다. 휑뎅그렁한 시멘트 바닥에 실금이 뻗어있다. 소가 걸어온 행로처럼 복잡한 무늬다. 마음으로 잠시 그 길을 따라가자니 한 생명의 고단함이 읽힌다. 하릴없이 쇠죽솥에 물 한 바가지를 붓고 불을 지핀다. 마른 아카시아가 타면서 '치지직' 소리와 함께 거품을 뿜는다. 소가 흘리는 침과 비슷하다. 그때 경운기가 탈탈거리며 올라왔다. 파란색 페인트칠이 벗겨져 너덜거리는 짐칸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내렸다.

대치하듯이 일제히 소를 향하고 섰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다. 걱정 반 궁금증 반이 발동하지만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몇 걸음 뒤에서 조용히 살핀다. 이윽고 맞대었던 머리들이 흩어져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혀 예상 못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된다. 굵은 새끼줄로 소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따로 묶는다. 경운기에 싣는다. 약속이라도 한 듯 말문을 닫은 채 경건한 동작이다. '아픈 소를 왜 저러지?' 사정을 알 리 없는 나는 의아스런 광경에 얼음이 되어 물끄러미 바라본다.

일소의 운명인가. 일을 못하면 여물만 축낸다는 것, 너무 늙어서 팔지도 잡아먹지도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 충격적인 말을 소가 듣지 않기를 바랐다. 천성이랄까? 반항 한번 없이 실려 갔다. 소의 장례식, 경운기가 영구차가 된 셈이다. 평생 일만 하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호강하는 순간이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경운기 소음에 소 울음이 길게 겹칠 때 어머님이 굵은 소금 한 대접을 들고 와서 대문 바깥으로 뿌리신다. 앙다문 입술이 파리하게 떨릴 뿐 아무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염려스러운데 뜬금없이 소금 부스러기 같은 눈발이 날린다. 3월의 눈이다.

어떤 장면은 시간 흐름과 상관없이 어제 일처럼 선명할 때가 있다. 대개 웃음보다는 울음 가까이의 장면이거나 옷핀처럼 단단하게 가슴에 꽂힌 것들이 그렇다. 솔가지에 얹힌 눈이 제 무게를 못 견디고 툭, 떨어진다. 정수리에 한 방 맞고서야 나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금세 사라질 풍경이 아까워서 카메라에 담는 사이 할머니와 꼬마가 보이지 않는다. 창조된 작은 세계 하나가 그들의 족적을 말해준다. 어쩌면 유한의 모든 생명은 무한한 세상이란 페이지에 자기 몫의 발자국을 자기방식으로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생을 좌우하는 건 결코 의지나 선택의 문제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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