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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합궤(合櫃) / 노정희

부흐고비 2020. 1. 19. 10:10

합궤(合櫃) / 노정희


그 귀한 꽃이 지천이다. 한 대궁이 여러 마디로 갈라져 나팔꽃모양의 작고 길쭉한 꽃자루를 달았다. 연보랏빛이 출렁이는 거대한 꽃밭이다.

예전 우리 담배 밭에는 곁가지로 나온 담배순은커녕 담배꽃 역시 보기 힘들었다. 담배 잎으로 가야할 영양분을 나눠줄 수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지론이셨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한쪽 모서리에 몇 대궁의 담배꽃만이 아버지 손길을 기다렸다. 담배꽃 한 가지 꺾어 달라고 부탁해도 끈적이는 진이 묻어서 안 된다며 거절하셨다. 철철이 산에 가면 진달래 산딸기를 꺾어 내 손에 쥐여 주셨던 아버지, 그러나 담배꽃만은 신성시 여기어 함부로 다루지 않으셨다. 한참동안 발길을 잡아두는 담배꽃에서 아버지 냄새가 난다.

합꼬 박사, 이웃은 아버지를 그렇게 불렀다. 아버지는 기역자로 만든 나무판 두 개를 합쳐서 네모난 틀을 만들었다.

어른들이 사 온 풀빵은 돌가루 종이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김이 빠져 찌그러들긴 했어도 똑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어떻게 일률적인 모양을 만들 수 있는지 그 솜씨가 부러웠다. 어느 날 시골 오일장에서 발견한 풀빵 틀을 마주하면서 나의 경이驚異는 산산이 부서졌다.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틀에서 찍어낸다는 사실에 신비로움이 사라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솜씨는 차원이 달랐다.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틀이 아니라 일일이 손을 거쳐 심혈을 기울이는 ‘담배 합궤’, 어린 날에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운을 따서 ‘합꼬’라고 불렀다. 나의 아버지는 ‘담배 합꼬’ 박사였다.

설을 쇠고 나면 아버지의 한 해 농사가 시작된다. 좁쌀보다도 더 작은 알갱이, 짙은 갈색의 담배 씨앗을 물에 담갔다가 정성스럽게 무명 헝겊에 싸셨다. 무명실 가닥 가닥을 꼬아서 헝겊에 싼 담배 씨앗을 묶어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다. 그 목걸이는 보통의 목걸이가 아니었다. 수시로 살펴보면서 물을 품어 주고 당신의 가슴 안쪽에 넣어 체온으로 감싸주는 소중한 씨앗 주머니였다. 한 해 농사의 시초인 담배씨앗은 아버지 가슴에서, 아버지의 체온으로 발아되었다.

불볕더위가 기승인 한 여름이 되면 건조작업이 시작된다. 새끼줄에 잎담배를 엮어 황초굴에 상하 좌우로 매어다는 작업을 마치면 모두들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늘어졌다. 황초굴에 불을 지피는 과정도 까다로웠다. 담배 잎의 습기를 살펴가며 장작과 무연탄으로 화력을 조절했다. 잎담배의 색깔은 불 조절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아버지는 밤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다.

구운 감자와 옥수수가 먹고 싶어 집 뒤란으로 돌아가면,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황초굴 아궁 앞에 앉아계시는 아버지. 어둠속에서 활활 번져오는 화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얼굴은 숭고한 모습이었다. 선뜻 아버지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기척에 돌아보는 아버지의 부름을 기다려야했다. 숯검정 껍질을 벗겨 파삭한 분이 나는 감자를 후후 입김으로 식혀주시던 아버지, 내 유년은 하얀 감자속살처럼 익어갔다.

부모님은 낮이나 밤이나 손을 쉴 사이가 없었다. 어둑한 황초굴에 백열등을 밝히고 엽연초의 맵시를 내는 ‘매’를 감으셨다. 일명 담배조리라고 하였다. 상품을 선별해서 색깔과 크기별로 나누어 담배조리를 마치면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합궤’작업이 시작된다. 기역자 나무판 두 개를 맞물려 밧줄로 팽팽하게 묶으면 네모 틀이 완성된다. 담배조리를 최종적으로 포장하는 마무리 작업이었다. 틀 안에 펼쳐진 포대에 가지런히 정리한 담배조리를 넣고 힘 센 사람이 합궤에 들어가서 꾹꾹 밟아야 한다. 한 줌의 공기도 허용하지 않는, 담배조리가 겹겹이 쌓일 때마다 밟는 사람의 힘도 더 세어져야 한다. 합궤에서 마무리 된 무더기는 반듯했고 각진 모서리는 물에 떠 나니는 목선모양으로 날렵하고 단단했다.

아버지의 솜씨는 소문이 자자했다. 담배 농사에 대해 자문을 구하러 오는 사람도 많았고 합궤 작업하러 이웃동네까지 원정을 다니셨다. 며칠 만에 오시는 아버지 품에 안기면 매캐한 담배 냄새가 눈을 따갑게 했다.

“우리 꼬마, 밥 많이 먹어라.”

아버지가 수저에 올려주는 반찬은 더 맛있었다. 이웃들이 아버지한테 베푸는 성의는 어린 눈에도 과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너무나 크고 대우받는 사람이셨다. 담배농사에는 모르는 것이 없었고, 타동네까지 이름을 떨치는 ‘합꼬 박사’였으니까.

소위 담배농사를 일컬어 ‘뼛골 빠지는’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힘이 드는 만큼 환금작물換金作物로 목돈을 만질 수 있었다. 빈손으로 월남하신 아버지는 식구들을 위해 달리 다른 농사를 선택할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바쁜 일손이 숨을 고르면 아버지의 가슴에 달린 이산離散이라는 명찰은 술집을 찾게 했다. 고향 떠난 외로움을 술로 달래셨다. 술병에 어리는 북쪽의 함흥, 동해의 출렁이는 물결을 술잔 가득가득 부어 마셨다.

담배 모종이 조금은 이른 시기일까, 아침에 걸려온 전화는 나를 혼절케했다. 심장마비로 운명하셨다는 아버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한마디 예고도 없이 떠나실 수 있을까. 며칠만이라도 자리 보존하셨으면 자식들 효도라도 받으셨을 텐데. 자식들과 평생을 같이 하실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주무시다 떠나실 줄은 몰랐다.

어머니는 담담하셨다.

“너그 아버지가 일생을 살면서 가장 잘 한 일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일이다.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병 없이 가시니 이 또한 다행이구나.”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 막내의 손으로 습을 하겠다고 염장이 아저씨한테 부탁을 드렸다. 차디찬 몸을 닦아드렸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통곡은 이어졌다.

“너무 울지 말거라. 아버지 뒤 돌아보시느라 발걸음 떼기 힘드실 게다.”

두 번 다시 뵐 수 없는 아버지,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버지는 새 집으로 떠나셨다. 꽃상여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와 상두꾼의 방울소리는 가슴을 에웠다. 황토를 파서 지은 집은 합궤처럼 반듯했다.

“어허~어허이~, 어허~ 어허이~”

동네의 장정들은 황토방에 올라가 온 힘을 다해 아버지를 밟았다. 담배 조리를 합궤에 넣어 공기 한줌 없이 밟으셔야 한다던 아버지. 황토 이불 한 자락 펄럭이면 실향의 아픔이 밟히고, 또 한 자락 펄럭이면 몸서리치던 외로움이 밟히고. 밟고, 또 밟고. 꼭꼭 밟아버린 아버지의 합궤에는 공기 한 줌 들어갈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그렇게 삶의 마무리 매를 지으셨다. 아픈 빛깔의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고, 산허리를 친친 감고 있는 통곡만이 아버지의 집 앞에서 똬리를 틀었다.

삶의 방식은 둥글어야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삶은 반듯함을 추구하는 네모이기도 하다. 세상에 올 때 사각의 방에서 태어나고, 생을 떠날 때는 사각의 방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처음부터 반듯하게 자리한 사각상자가 있었을까. 아니, 그저 분리된 하나의 나무판에 불과하거늘. 각기 분리된 나무판이 서로 맞물렸을 때 하나의 틀이 만들어지듯이 부족한 부분을 ‘합’해서 ‘합궤’가 탄생된다. 위아래가 뚫려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합궤지만, 담고자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에 의해서 단단한 사각모양의 형태가 재탄생되는 것이다.

평생 흙 냄새, 흙 빛깔의 전설을 퍼 올리다가 떠나신 아버지는 삶의 지침을 자식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자식들은 한 해 농사를 위해 정성을 다 쏟으시는 모습, 반듯한 합궤 작업 중에 흘리는 아버지의 땀방울을 보았을 뿐이다. 담배 잎의 끈끈한 진액 같은 사랑과 삼베 적삼에 절여진 시큼한 땀 냄새를 남기셨을 뿐이다.

내 기억의 중심에 얼룩무늬처럼 배여 있는 아버지의 합궤가 몹시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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